의료수가는 일종의 가격상한제
원가보다 싸면 공급보다 수요↑
환자 많은 필수 의료 적자투성이

가격 제한 없고 업무 강도 낮은
피부과·성형외과로 의사 몰리고
내과·외과·산부인과 등은 인력난
[경제야 놀자] 응급실 뺑뺑이…문제는 '의료시장 가격상한제'
구급차에 실린 응급 환자가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가 반복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응급 환자가 현장에서 출발한 후 병원 도착까지 1시간 이상 걸린 사례가 2만7218건이었다. 3시간 이상 지연된 건수만 551건이었다. 응급실 뺑뺑이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라 불리는 필수 의료과목 붕괴 현상의 한 단면이다. 일부에선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소위 인기과로 몰리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의사들에게 돈을 밝힌다고 비난만 할 수 있을까. 의료 분야도 돈이 오고 가는 경제 원리가 작동하는 시장이다. 감기 진료비가 10만원이라면?필수 의료 붕괴의 배경을 살펴보려면 의료수가 얘기부터 해야 한다. 의료수가는 의사(병원)가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받는 돈이다. 한마디로 의료서비스의 가격이다.

의료수가는 일반적인 재화·서비스 가격과 달리 정부가 정한다. 항생제 주사는 1만원, 소독약 처방은 5000원 하는 식으로 정해진다. 의료수가 제도는 일종의 가격상한제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환자를 잘 보는 의사도, 명성이 자자한 병원도 의료수가를 초과하는 돈을 받을 수 없다.

정부가 의료수가를 통제하는 근거는 간단하다. 의료서비스는 전 국민에게 필요할 뿐만 아니라 판매자(의사)와 구매자(환자) 간 정보 비대칭이 크다는 것이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요즘 환절기라 감기 환자가 몰려서 진료비가 올랐다”며 10만원을 내라고 한다면 어떨까.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의료수가로 감기 진료비를 묶어 놓는다. 환자가 많으면 병원은 망한다의료시장도 시장이다. 여느 시장과 비슷하게 가격상한제의 부작용이 발생한다. 가격 상한이 시장 균형 가격보다 낮으면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줄어든다. 즉 의료수가가 너무 낮으면 의료서비스 공급(의사와 병원)이 수요를 못 따라가 환자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

의료서비스의 시장 균형 가격을 추정하기는 어렵다. 여러 연구와 통계를 보면 의료수가의 원가 보전율은 평균 50~80% 수준이다. 필수 의료의 원가 보전율은 더 낮다고 의료계는 주장한다. 소아청소년과는 원가 보전율이 30%대라는 통계도 있다.

그러니 필수 의료는 환자를 보면 볼수록 적자가 난다.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 등 ‘빅5 병원’은 지난해 2266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응급실 운영에서만 20억~30억 원 적자를 내는 병원도 있다.

이러니 병원들은 적자투성이 ‘내외산소’ 과목을 구조조정하고 응급실 문을 닫고 있다. 의대생은 필수 의료 과목을 외면하고 성형 등 인기과로 몰린다. 인기과로 가면 의료수가가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로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고, 업무 강도는 낮다. 의료 사고로 처벌받을 위험도 작다. 필수 의료 전공의 충원율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새 인력이 충원되지 않으니 기존 인력은 더욱 격무에 시달린다. 대도시 중심가 신축 빌딩은 피부과 성형외과로 가득 차고, 응급 환자를 실은 구급차는 갈 곳이 없어 길을 헤매는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다. 싸다고 좋은 건 아니다균형 가격보다 낮은 가격 상한은 초과 수요를 만들어낸다. 응급의료기관을 방문하는 환자 중 ‘경증’으로 분류되는 환자가 절반을 넘는다. 의료 현장에서는 ‘감기 환자를 보는 사이 심정지 환자가 죽어 간다’는 말이 나온다. 구급차 이용을 유료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필수 의료 공백의 대책으로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이 종종 거론된다. 그러나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늘어난 의사들이 필수 의료로 갈지는 미지수다. 의사가 많아져 인기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필수 의료를 지원하는 의사가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나 기대할 수 있는 결과다.

이 때문에 의료수가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의료수가 인상은 건보 재정 악화와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의료수가가 문제의 전부도 아니다.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의료서비스를 시장 원리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그러나 시장 원리를 도외시한 채 날로 심각해지는 필수 의료 붕괴의 해결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NIE 포인트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1. 필수 의료가 붕괴되면 어떻게 될까?

2. 의료시장에서 가격상한제의 부작용은?

3. 의료수가 인상 문제를 놓고 친구들과 토론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