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패턴
미국 아마존이 도심 건물 외벽을 이용해 유료 멤버십 ‘아마존 프라임’을 홍보하는 모습. /한경DB
미국 아마존이 도심 건물 외벽을 이용해 유료 멤버십 ‘아마존 프라임’을 홍보하는 모습. /한경DB
세계에서 가장 큰 인터넷 쇼핑 기업인 미국 아마존이 경쟁 당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거금 25억 달러(약 3조5000억원)를 쓰게 됐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2023년 아마존이 유료 멤버십의 가입은 쉽게, 탈퇴는 어렵게 만들어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지난달 25일 아마존은 25억 달러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FTC와 전격 합의했다. 민사 벌금으로 10억 달러를 내고, 피해를 본 소비자에게 15억 달러를 돌려주기로 했다.취소 버튼 숨기고, 충동구매 부추기고아마존은 2005년 선보인 ‘아마존 프라임’이라는 유료 멤버십을 통해 세계 2억 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연회비로 139달러(약 19만5000원)를 내면 무료 배송, 영상 스트리밍 등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상품이다. FTC는 이 회사가 아마존 프라임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다크패턴(dark pattern)’을 활용했다고 봤다. 소비자가 자신도 모르게 가입 버튼을 누르는 일이 적지 않았고, 취소 절차가 복잡해 원하는 때 해지하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는 것이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아마존은 결제와 관련한 세부 정보를 명확하고 눈에 띄게 고지해야 한다. 요금을 청구하기 전 소비자의 명시적 동의를 받고, 간편하게 가입을 취소할 수 있는 방법도 마련할 예정이다. 다만 로이터통신은 “이번 합의는 소비자와 FTC에게는 승리지만 아마존에는 가벼운 타격”이라고 지적했다.

다크패턴이란 소비자가 의도치 않게 물건을 사거나 이용료를 결제하게끔 유도할 목적으로 홈페이지나 앱의 디자인을 교묘하게 짜놓는 것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눈속임 설계’라고 한다. 무료 체험 기간이 끝나면 별다른 고지 없이 자동결제로 전환하거나, 상품 소개 화면에서는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가 결제 단계에서 추가 비용을 끼워 넣는 방식 등은 전형적인 다크패턴이다. 마치 파격적 혜택을 주는 것처럼 충동구매를 부추기는 행위도 다크패턴에 해당할 수 있다.

이는 아마존뿐 아니라 국내 쇼핑몰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한국소비자원 분석에 따르면 인터넷 쇼핑몰 한 곳당 평균 5.6개의 다크패턴을 사용하고 있었다.공정위, 소비자 보호 규제 강화키로우리나라의 경쟁 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런 ‘논란의 상술’에 철퇴를 가하고 나섰다. 공정위가 최근 국내 온라인 플랫폼을 대상으로 다크패턴 의심 사례를 점검한 결과, 36개 사업자에서 45건이 발견돼 업체들이 자진 시정하거나 시정 계획을 제출했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공정위는 다크패턴을 근절하기 위해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 지침’ 개정안을 만들고 있다. 이 방안에 따르면 “탈퇴를 다시 한번 생각해달라”고 만류하는 단계를 두 번 이상 반복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구매 과정에서 별도로 붙곤 하는 배송비, 설치비, 봉사료, 수수료 등은 총금액에 넣어 표시해야 한다. 취소·탈퇴 버튼도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위치에 두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