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의 세계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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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인텔에 50억달러(약 7조원)를 투자해 개인용 컴퓨터(PC)·데이터센터용 칩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미국 정부의 ‘인텔 살리기’ 행보로 해석된다.

-2025년 9월 20일자 한국경제신 -

시가총액이 무려 4조3000억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 엔비디아가 한때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였지만 최근 경영난에 빠진 인텔의 구원 투수로 나섰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컴퓨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인텔은 중앙처리장치(CPU)의 강자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요.

얼핏 보면 그저 한 기업이 다른 기업에 투자하는 단순한 소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경제는 두 기업의 협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설계하는 팹리스인 엔비디아가 인텔과 차세대 반도체 설계를 함께하는 것을 넘어 개발한 칩 생산을 인텔의 파운드리에 맡긴다면 업계의 판도를 뒤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팹리스’와 ‘파운드리’ 같은 단어가 다소 생소하지요. 세계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반도체 산업 기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산업의 생태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반도체는 전기가 흐르기도 하고 차단되기도 하는 성질을 지닌 물질입니다. 이 특성을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거나 계산하고 처리하는 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뿐 아니라 자동차와 비행기, 공장과 발전소, 데이터센터까지 전기로 움직이는 모든 것에 반도체가 들어갑니다.

반도체 산업은 워낙 방대하고, 분야마다 요구하는 기술과 전문성이 달라 산업이 세분화돼 있습니다.

팹리스(Fabless)는 공장을 갖추지 않고 반도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입니다. 반도체 업계에선 공장을 팹(Fab)이라고 부릅니다. 팹은 제조를 뜻하는 영어 ‘Fabrication’의 약자입니다.

생성형 AI, 암호화폐 경제 구현의 핵심 원료로 떠오른 GPU로 명실상부 세계 최강 기업이 된 엔비디아와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AP 시장 부동의 1위 퀄컴이 대표적 팹리스 기업입니다.

파운드리(Foundry)는 팹리스 기업이 설계한 칩을 대신 생산해주는 회사입니다. 흔히 ‘설계를 다 해주는데 생산이 뭐가 어려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도체 세계에선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늘날 첨단 반도체는 미세도가 2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수준까지 내려왔습니다. 먼지보다 작은 수준의 정교한 생산을 위해 갖춰야 할 장비만 공장 하나에 수천 개, 비용은 최소 10조원이 넘지요. 생산과정 중 조금의 오류만 생겨도 수백수천억대 손실로 이어집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에 반도체 팹리스는 수천 개지만 파운드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파운드리 업계 1위는 대만의 TSMC로 무려 전체 시장의 70.2%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2위는 삼성전자(7.3%), 3위는 중국 SMIC(5.1%)로 상위 3개 업체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후공정(OSAT) 기업 역시 반도체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축입니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기는 ‘전 공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반면 후 공정은 이렇게 완성된 웨이퍼를 잘라 각각의 ‘칩’으로 만들고, 이를 기판에 붙여 실제 기기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마무리하는 단계입니다. 전 공정과는 필요한 기술과 장비가 달라 미국 앰코, 대만 ASE 등 고도로 전문화된 기업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전부 하는 기업이 존재하는데,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설계부터 제조, 조립과 검사까지 전체 과정을 한 회사 안에서 해결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텔이 대표적인 IDM입니다.

왜 한국의 반도체 ‘투 톱’은 IDM의 길을 택했을까요. 메모리는 CPU나 GPU 같은 시스템 반도체와 달리 제품 구조가 비교적 단순해 대량생산을 통한 원가절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IDM은 설계와 생산을 한 곳에서 해 개발 속도를 높이고, 주문받은 제품을 지체 없이 적시에 대량 공급할 수 있어 시장점유율을 가져오는 데 최적화된 시스템이었지요. 이를 통해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일본·미국 기업을 제치고 세계 메모리 1·2위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은 전 세계 여러 나라의 기술과 생산 역량이 퍼즐처럼 맞물려 돌아가기에 한 나라, 한 기업만 빠져도 공급망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가장 큰 ‘병목’은 파운드리 시장의 70%를 가진 TSMC에 있습니다. TSMC가 차질을 빚으면 미국이 자랑하는 엔비디아와 퀄컴의 칩이 생산되지 못할 지경이지요.

미국 정부가 최근 경영난에 빠진 인텔의 후방 지원에 나선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이 사실상 실패하면서 미국 반도체 산업에서 파운드리만 빈칸으로 남은 상황입니다. 세계 최강의 팹리스를 보유한 미국이지만, 생산은 해외 기업에 맡겨야 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런 이유로 엔비디아의 인텔 지원은 단순한 기업 간 협력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NIE 포인트
[수능에 나오는 경제·금융] 엔비디아가 인텔에 투자한 이유는?
1. 팹리스와 파운드리, OSAT의 차이는 무엇일까?

2. 한국 기업들이 IDM 방식을 택한 이유를 알아보자.

3. 미국 정부가 ‘인텔 살리기’에 나선 배경을 분석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