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오리가미
종이접기는 종이를 손으로 접어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드는 놀이다. 학, 꽃, 개구리 등 한 장의 종이를 정교하게 접으면 멋진 예술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재밌는 종이접기 놀이가 과학에서 사람을 살리는 기술로 쓰이고 있다. 바로 ‘DNA 오리가미’다. 오리가미는 일본어로 종이접기를 뜻하는데, 이제는 종이가 아닌 DNA를 접어 미래의 의학과 과학을 바꾸는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환경에 따라 접었다 펼 수 있는 DNA 구조체. 짧은 DNA 가닥을 이어 붙여 테두리만 있는 구조체 형태를 만든다. 종이를 미리 접어놓은 것과 같다. 이후 원하는 모양대로 접거나, 특정 환경의 자극에 따라 자유롭게 접혔다 펼쳐지기도 한다. 서울대학교 제공
환경에 따라 접었다 펼 수 있는 DNA 구조체. 짧은 DNA 가닥을 이어 붙여 테두리만 있는 구조체 형태를 만든다. 종이를 미리 접어놓은 것과 같다. 이후 원하는 모양대로 접거나, 특정 환경의 자극에 따라 자유롭게 접혔다 펼쳐지기도 한다. 서울대학교 제공
DNA 오리가미는 2006년 미국의 폴 로데문드 교수가 처음 제안한 방법이다. 종이접기하듯 DNA를 접어 2D 또는 3D 형태의 입체 구조로 변화시키는 기술을 말한다. 이 기술은 DNA를 구성하고 있는 염기들이 서로 짝을 이루는 성질을 활용했다. DNA를 이루는 염기는 총 네 가지(A, T, C, G) 인데, 이 중 A는 T와, C는 G와 짝꿍이다. 서로 꼭 맞는 퍼즐처럼 결합한다. 즉 DNA에서 접고 싶은 부분에 짝꿍인 염기를 배열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DNA 오리가미로 만든 구조물이 약을 전달하는 ‘나노 로봇’ 역할을 할 수 있다. KIST 제공
DNA 오리가미로 만든 구조물이 약을 전달하는 ‘나노 로봇’ 역할을 할 수 있다. KIST 제공
최근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한범수 교수가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DNA 오리가미를 활용해 췌장암 세포를 구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DNA 오리가미 기술로 다양한 크기의 원통과 타일 모양 구조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구조물 안에 형광빛을 내는 물질과 췌장암 세포에만 반응하는 센서를 함께 넣었다. 이 구조물은 췌장까지 다가간 뒤, 암세포가 있으면 달라붙는다. 이후 연구자들이 췌장을 관찰했을 때 형광빛을 통해 암세포가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암세포가 아닌 정상 세포에는 반응하지 않게 설계했다.

연구진은 먼저 실험실에서 췌장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실험했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실제 장기와 비슷하게 배양한 미니 장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구조물은 정상 세포에는 붙지 않고 췌장암 세포에만 달라붙었다. 이어서 사람의 췌장암 조직을 이식한 실험용 쥐에도 동일하게 실험했고,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정상 조직과 암세포를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술이 실제로 적용된다면,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형광물질 대신 항암제를 담으면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약물을 전달하는 치료법이 만들어질 수 있다.

DNA는 머리카락보다 훨씬 더 작은 크기를 가지고 있어 세포 안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수 있다. 게다가 DNA는 원래 우리 몸에 존재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독성이 거의 없고, 인체에 안전하다. 이런 장점 덕분에 DNA 오리가미는 특히 의학 분야에서 크게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DNA 오리가미 구조체’도 있다. 서울대학교 김도년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DNA 와이어프레임 종이’가 주인공이다.

연구팀은 기존 DNA 오리가미는 한번 접으면 모양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DNA 구조물이 몸속에서 임무를 더 잘 수행하려면, 환경에 따라 자유롭게 바뀔 수 있는 형태가 훨씬 유리하다. 이를 위해 DNA를 여러 가닥으로 나눈 뒤, 이어 붙여 격자 모양의 구조체를 만들었다.

완성된 구조체는 색종이 한 장을 가로 접기와 세로 접기를 해놓은 모양이다. 색종이에 미리 한 번 접어두는 것과 같은 원리다. 연구진은 이 구조체에 ‘DNA 와이어프레임 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 그대로 테두리만 있는 구조로, 매우 가볍고 어떤 모양이든 만들 수 있다. 가로로 한 번 접으면 직사각형, 삼각으로 접으면 삼각형이 되고, 그 외에 다양한 형태로 바뀔 수 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구조물이 환경에 따라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빛이나 pH, 특정 분자를 만나는 등 자극을 가하면 접히거나 펼쳐진다. 이 성질은 의학적으로 매우 유용하다. 예를 들어 약을 담아놓은 DNA 구조물이 몸에 들어간다고 상상해보자. 약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구조물이 닫혀 있어 약물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한 신호를 감지하면 구조물이 스스로 열리면서 약을 정확히 필요한 곳에 전달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효과를 높이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으로 보인다. √ 기억해주세요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
종이접기는 오랫동안 단순한 놀이로 여겨졌지만, 그 속에는 수학과 과학의 원리가 숨어 있다. 이제 DNA 오리가미는 종이접기의 개념을 넘어, 인류의 건강과 기술 발전을 이끄는 새로운 도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