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우체국에서 한 시민이 미국행 소포를 접수하고 있다. /한경DB
미국 정부가 소액 소포 면세(de minimis exemption) 제도를 폐지하면서 세계 각국이 혼란에 빠졌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은 지난달 29일 0시 1분부터 미국에 국제우편 소포로 반입되는 수입 물건에 예외 없이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1938년부터 우편물로 반입되는 물건의 가치가 일정 금액에 미달하면 관세를 면제해주는 정책을 펴왔고, 2015년에는 면세 기준선을 800달러(약 111만원)로 상향했다.美, 소액 소포 면세 폐지 … 세계 각국 대혼란오랫동안 유지해온 이 제도를 뒤집은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미국은 지난 5월 2일부터 중국과 홍콩에서 발송한 소액 소포의 면세를 중단했으며, 이날부터 모든 국가로 확대 적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액 소포 면세 제도가 외국 기업들이 미국의 관세를 피하는 ‘구멍’이 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쉬인, 테무 등 중국 온라인 쇼핑몰이 이 제도를 활용해 소비자에게 물건을 싼값에 팔고 있어 미국 소매업체에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또 펜타닐과 같이 수입이 금지된 마약류와 밀수품이 감시를 피해 우편물로 반입된다고 보고 있다.
만성적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관세 수입을 늘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CBP가 중국과 홍콩에 대한 소액 소포 면세를 폐지한 이후 추가 관세 수입으로 4억9200만달러(약 6840억원)를 벌어들였다.
세계 각국의 우편 기관들은 미국이 행선지인 우편물과 소포의 발송을 줄줄이 중단했다. 지금의 국제 우편망 체계로는 모든 물품을 신고하고 관세를 계산해 납부하기 어려워서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독일 DHL을 포함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스웨덴, 프랑스, 벨기에 등 상당수 유럽 국가에서 미국행 소포·우편물 접수를 중단했다. 멕시코, 인도, 태국,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도 대부분의 미국행 물품 발송을 멈췄다. 뉴욕타임스는 우편물을 보내지 못해 낭패를 겪은 이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세상이 멸망할 일은 아니지만 짜증 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앞으로 해외 우편 서비스 제공자들은 미국행 소포를 보낼 때 정식으로 세관 신고서를 작성하고 국가별 관세율을 적용해 요금을 징수해야 한다. 다만 계도 기간인 6개월 동안은 소포 한 건당 80~200달러의 정액 관세를 내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상호 관세 15%가 적용되어 건당 80달러를 내면 된다. 그러나 UPS, 페덱스, DHL 등의 민간 물류 기업은 이런 우회로를 이용할 수 없고 정식으로 관세를 납부해야 한다.트럼프 “중국 저가품·마약류 반입에 악용”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우리나라 우체국도 선박, 항공, 국제특급우편서비스(EMS)를 통한 미국행 소포 접수를 잠정 중단했다. 서류는 예전처럼 발송할 수 있고, 다른 물품을 부치려면 UPS와 제휴해 운영하는 ‘EMS 프리미엄’ 상품을 이용해야 한다. 다만 민간 업체의 경우 김치나 고가 물품은 잘 받아주지 않는 문제가 있다. 우체국은 “미국으로 우편물을 보낼 때는 물품 가액과 용도를 정확히 기재하고 인보이스 등의 서류를 잘 준비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