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중독
가을 문턱에 들어서도, 여전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이어지는 덥고 습한 날씨는 식중독균이 쉽게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때문에, 음식 섭취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 번의 식중독 경험이 단순 배앓이로 끝나지 않고, 음식에 대한 평생 공포로 이어질 수 있다.

식중독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 원인은 살모넬라균이다. 닭, 달걀 등에서 발견되는 살모넬라균은 체내에 들어오면 위에서 사멸하지 않고 장까지 도달해 장 점막 상피세포에 붙어 세포 내로 침투한다. 이 과정에서 분비되는 독소가 세포 내 신호전달을 교란하고, 장 점막에 염증을 유발한다. 그 결과 면역반응이 활성화되며 발열과 복통, 설사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살모넬라균 외에 장염비브리오, 황색포도상구균 등도 식중독의 원인이다. 세균 외에 노로바이러스, 로타바이러스 등 바이러스도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바이러스는 극소량으로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어 집단 발생으로 번지기 쉽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식중독 발생 위험이 높은 음식을 주의해야 하고, 어느 때보다 음식을 충분히 가열 조리한 뒤 섭취해야 한다.
흔히 식중독을 유발하는 음식으로 달걀, 채소, 조개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처럼 냉동 보관된 차가운 음식도 한번 녹았다면 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낮은 온도에서도 생존 가능한 리스테리아균이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스테리아균은 목초나 살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소젖 등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냉장 온도인 4℃에서도 증식할 수 있다. 영하의 온도에서는 식품에 소량 남아 있을 수 있으나 증식하지 못한다. 다만 음식이 유통과정 등에서 잠시 녹으면 그사이에 급격히 번식할 수 있다. 산소가 없어도 증식할 수 있어 진공포장 식품 내에서도 자랄 수 있다. 녹았던 아이스크림, 밀크셰이크 등을 다시 먹으면 감염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녹았다 얼면서 모양이 변형된 아이스크림이나 제조 일자가 오래된 식품은 아무리 영하에서 보관했더라도 피하는 게 좋다.
한편 연구에 따르면, 식중독은 단순한 배앓이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팀은 식중독을 앓고 난 뒤 뇌에 ‘특정 음식에 대한 혐오’가 강렬하게 남아 평생 그 음식을 피하는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밝혔다. 뇌는 특정 음식과 관련한 부정적 경험을 기억 속에 ‘태그’해두고, 이후 그 음식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불쾌한 감정이나 질병과 연관 짓도록 만든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이 현상은 ‘장-뇌 축(gut-brain axis)’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장-뇌 축은 장과 뇌가 신경, 호르몬 등의 신호를 통해 긴밀히 상호작용하는 생리적 연결망이다. 이에 따라 장에서 발생한 질병 신호가 신경 경로를 타고 뇌에 전달되면, 특정 음식이나 상황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한여름 김밥 한 줄이 평생의 음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가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연구팀은 쥐 실험을 통해 이 메커니즘을 확인했다. 한 무리의 쥐에게 특정 맛의 음료를 먹인 직후 식중독 증상을 모방하는 염화리튬을 주사했다. 며칠 후 쥐는 같은 음료를 강하게 피했다. 염화리튬을 주사하지 않은 쥐는 같은 음료에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타이드(CGRP) 뉴런이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식중독을 겪으면 장에서 발생한 고통 신호가 CGRP 뉴런을 통해 뇌로 전달되며, 이때 CGRP 뉴런이 감정 처리를 담당하는 편도체를 자극한다. 그 결과 편도체가 활성화되면서 불안감이나 메스꺼움 같은 부정적 감정이 유발되는 것이다.
연구팀이 식중독이 걸린 적 없는 쥐의 CGRP 뉴런을 인위적으로 자극하자, 특정 음료에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반대로 CGRP 뉴런을 비활성화한 쥐는 식중독을 겪고도 특정 음료에 불편감을 느끼지 않았다. 장에서 출발한 신경 신호가 뇌에서 혐오감을 학습하고 형성하는 데 CGRP 뉴런이 필수적임이 확인된 것이다.
식중독은 단순한 소화기 감염을 넘어 장과 뇌를 잇는 신경 회로를 통해 행동과 기억에까지 영향을 준다. 질병 경험이 평생의 식습관이나 음식 선택을 바꿀 수 있는 만큼, 일상 속 철저한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억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