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중독
가을 문턱에 들어서도, 여전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이어지는 덥고 습한 날씨는 식중독균이 쉽게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때문에, 음식 섭취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 번의 식중독 경험이 단순 배앓이로 끝나지 않고, 음식에 대한 평생 공포로 이어질 수 있다.
냉동식품이 녹았을 때 세균이 번식할 수 있어, 녹았다 다시 얼린 음식을 먹을 때도 주의해야 한다. /pixabay
냉동식품이 녹았을 때 세균이 번식할 수 있어, 녹았다 다시 얼린 음식을 먹을 때도 주의해야 한다. /pixabay
식중독은 기온이 높은 여름에 많이 발생한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한여름 같은 더위가 늦가을까지 지속되며 계절에 상관없이 음식 섭취에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식중독 사례는 총 204건, 환자 수는 7788명에 달한다. 7~9월에만 환자 4542명이 발생했는데, 이는 전체의 52% 수준이다.

식중독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 원인은 살모넬라균이다. 닭, 달걀 등에서 발견되는 살모넬라균은 체내에 들어오면 위에서 사멸하지 않고 장까지 도달해 장 점막 상피세포에 붙어 세포 내로 침투한다. 이 과정에서 분비되는 독소가 세포 내 신호전달을 교란하고, 장 점막에 염증을 유발한다. 그 결과 면역반응이 활성화되며 발열과 복통, 설사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살모넬라균 외에 장염비브리오, 황색포도상구균 등도 식중독의 원인이다. 세균 외에 노로바이러스, 로타바이러스 등 바이러스도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바이러스는 극소량으로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어 집단 발생으로 번지기 쉽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식중독 발생 위험이 높은 음식을 주의해야 하고, 어느 때보다 음식을 충분히 가열 조리한 뒤 섭취해야 한다.

흔히 식중독을 유발하는 음식으로 달걀, 채소, 조개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처럼 냉동 보관된 차가운 음식도 한번 녹았다면 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낮은 온도에서도 생존 가능한 리스테리아균이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스테리아균은 목초나 살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소젖 등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냉장 온도인 4℃에서도 증식할 수 있다. 영하의 온도에서는 식품에 소량 남아 있을 수 있으나 증식하지 못한다. 다만 음식이 유통과정 등에서 잠시 녹으면 그사이에 급격히 번식할 수 있다. 산소가 없어도 증식할 수 있어 진공포장 식품 내에서도 자랄 수 있다. 녹았던 아이스크림, 밀크셰이크 등을 다시 먹으면 감염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녹았다 얼면서 모양이 변형된 아이스크림이나 제조 일자가 오래된 식품은 아무리 영하에서 보관했더라도 피하는 게 좋다.

한편 연구에 따르면, 식중독은 단순한 배앓이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팀은 식중독을 앓고 난 뒤 뇌에 ‘특정 음식에 대한 혐오’가 강렬하게 남아 평생 그 음식을 피하는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밝혔다. 뇌는 특정 음식과 관련한 부정적 경험을 기억 속에 ‘태그’해두고, 이후 그 음식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불쾌한 감정이나 질병과 연관 짓도록 만든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이 현상은 ‘장-뇌 축(gut-brain axis)’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장-뇌 축은 장과 뇌가 신경, 호르몬 등의 신호를 통해 긴밀히 상호작용하는 생리적 연결망이다. 이에 따라 장에서 발생한 질병 신호가 신경 경로를 타고 뇌에 전달되면, 특정 음식이나 상황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한여름 김밥 한 줄이 평생의 음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가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연구팀은 쥐 실험을 통해 이 메커니즘을 확인했다. 한 무리의 쥐에게 특정 맛의 음료를 먹인 직후 식중독 증상을 모방하는 염화리튬을 주사했다. 며칠 후 쥐는 같은 음료를 강하게 피했다. 염화리튬을 주사하지 않은 쥐는 같은 음료에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타이드(CGRP) 뉴런이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식중독을 겪으면 장에서 발생한 고통 신호가 CGRP 뉴런을 통해 뇌로 전달되며, 이때 CGRP 뉴런이 감정 처리를 담당하는 편도체를 자극한다. 그 결과 편도체가 활성화되면서 불안감이나 메스꺼움 같은 부정적 감정이 유발되는 것이다.

연구팀이 식중독이 걸린 적 없는 쥐의 CGRP 뉴런을 인위적으로 자극하자, 특정 음료에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반대로 CGRP 뉴런을 비활성화한 쥐는 식중독을 겪고도 특정 음료에 불편감을 느끼지 않았다. 장에서 출발한 신경 신호가 뇌에서 혐오감을 학습하고 형성하는 데 CGRP 뉴런이 필수적임이 확인된 것이다.

식중독은 단순한 소화기 감염을 넘어 장과 뇌를 잇는 신경 회로를 통해 행동과 기억에까지 영향을 준다. 질병 경험이 평생의 식습관이나 음식 선택을 바꿀 수 있는 만큼, 일상 속 철저한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억해주세요
조혜인
과학칼럼니스트
조혜인 과학칼럼니스트
‘장-뇌 축’은 장과 뇌가 신경, 호르몬 등의 신호를 통해 긴밀히 상호작용하는 생리적 연결망이다. 최근 동물실험을 거쳐 식중독으로 유발된 장의 이상 신호가 펩타이드(CGRP) 뉴런을 통해 뇌로 전달되면서 특정 음식에 대한 강한 혐오 기억이 형성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식중독이 단순한 증상에 그치지 않고, 평생 특정 음식을 회피하게 만드는 뇌 기억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