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켈트의 여명>
존 던컨의 ‘고분의 기수들’. 켈트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투어허 데 다넌’을 표현했다.   위키피디아 제공
존 던컨의 ‘고분의 기수들’. 켈트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투어허 데 다넌’을 표현했다. 위키피디아 제공
요정은 과연 실재하는 걸까? <켈트의 여명>에서 예이츠는 함께 간 소녀가 요정과 대화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표현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중요한 시인으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전 세계를 대표한 시인이다.

192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예이츠는 아일랜드의 문예부흥을 이끌던 인물로, 특히 아일랜드의 민간전승에 심혈을 기울여 여러 저서를 남겼다. 예이츠는 <켈트의 여명> 서문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아름답고 즐겁고 의미 있는 것들에서 자그마한 어떤 세계를 창조해내고자 했다”며 “아일랜드의 일면을 비전 속에서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책에는 ‘신화와 민담과 판타지’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문자가 없어 역사를 기록할 수 없었을 때도 사람들은 신화를 이야기했다. 활기차고 화려한 켈트족의 문명은 글로 쓴 문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일랜드 문학이 꽃을 피우기 이전 시대의 켈트 문화는 로마인들의 기록과 조각이나 동전에 새겨진 글을 통해 의미를 추적해나가는 정도였다.

예이츠는 <켈트의 여명>을 집필할 때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그대로 받아썼고, 논평을 가하지도 않았으며, 상상한 것도 전혀 없다”고 전제했다. ‘유령, 도깨비, 요정’을 그린 <켈트의 여명>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한 초자연적인 체험이 집결된 자료로 민속학적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를 받는다. 명랑하고 아름다운 요정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아일랜드인의 삶을 바탕으로 한 초자연적 체험
<켈트의 여명> 속 40개의 이야기에서 예이츠가 가장 많이 거론하는 것은 요정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요정을 “요사스러운 정령”, “서양 전설이나 동화에 많이 나오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불가사의한 마력을 지닌 초자연적 존재”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작고 귀여운 인물’을 “요정 같다”고 말하는데 <켈트의 여명>도 요정을 대단히 귀엽게 묘사했다.

‘행복한 신학자와 불행한 신학자’ 편에 등장하는 메이요 출신 부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요정들이나 본 적이 있는 요정들은 “명랑하고 아름답다”면서 “우리와 모습이 비슷하지만 훨씬 더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레지나, 레지나 피그메오룸, 베니’ 편에서 예이츠는 요정을 보는 능력이 있다는 소녀와 요정족이 자주 나타나기로 유명한 곳에 동행한다. “깨어 있으면서 동시에 신들린 상태로 몰입해 들어가던” 소녀는 “다양한 빛깔의 옷을 입은 수많은 난쟁이를 보았는데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이 가장 많고, 가락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고 말한다.

예이츠가 소녀에게 난쟁이들의 여왕을 불러달라고 부탁하자, 잠시 후 동굴 밖으로 아름다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예이츠는 “당신들 중에 누군가가 인간 세상에 태어난 적이 있나요. 태어나기 전에 요정이었던 사람들을 내가 알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요정 여왕은 “그렇다”고 답한 뒤 “누군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요정 여왕을 만나는 장면을 두고 예이츠는 “존재하지 않는 실재라고 부르는 것이 권위적인 실재로 변화하기 시작한 상태에 빠져서 금빛 장식의 희미한 빛, 그늘 어린 꽃과 같은 빛나는 머리카락을 볼 수 있었다”고 표현한다. 과연 예이츠가 요정 여왕을 직접 만났는지, 아니면 상상인지는 책을 읽고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켈트인을 그린 꿈의 산물‘지치지 않는 이들’ 편에서 예이츠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 하나는 순수한 감정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라고 전제한 뒤 “우리가 만약 요정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증오한다면 그들처럼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1893년에 발간한 <켈트의 여명> 초판을 “일부가 작가의 일지이며, 일부가 정신적 자서전이며, 일부가 구전 문화와 초자연적 세계를 향한 보편적 믿음이 통하던 산업사회 이전으로의 회귀에 대한 탄원”이라고 평한다. 민속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을 때 예이츠는 구김 없는 구전 이야기꾼들의 목소리를 왜곡해 분류하는 민속학자들의 의견에 반대했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켈트의 여명>에 등장하는 요정이 실재하는지보다 예이츠가 ‘아일랜드 농부들이 실제로 믿고 있는 구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켈트인의 이야기 세계를 펼쳐 보이고자 한 꿈의 산물’이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 책이 출간된 지 132년이 지난 지금,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도 켈트인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켈트의 여명>을 통해 초자연적 세계를 접하며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날아가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