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신용등급
미국 워싱턴 D.C.의 한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국가부채 시계’. 미국인 1인당 나랏빚이 10만 달러가 넘는다고 표시돼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워싱턴 D.C.의 한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국가부채 시계’. 미국인 1인당 나랏빚이 10만 달러가 넘는다고 표시돼 있다. /AFP연합뉴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무디스가 지난달 16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끌어내렸다. 1917년 최고 등급인 Aaa를 부여한 후 108년 만의 강등이다. 무디스는 재작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해 하향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이번에 실제로 등급을 낮추면서 등급 전망은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했다.‘5경원’ 美 국가부채에 경고장국가신용등급은 한 나라의 외채 상환능력을 측정하는 지표로, 대외신인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통한다. 외환보유액, 외채구조 등 대외 부문 건전성이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지만 거시경제 여건, 재정 건전성, 안보 위험, 금융과 기업의 경쟁력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국가신용등급은 민간 신용평가회사들이 매기는데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같은 나라여도 세 회사가 매긴 등급이 다를 수 있다. 앞서 S&P가 2011년, 피치가 2023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내린 바 있다. 이로써 미국은 3대 신용평가회사 모두로부터 최고 등급 지위를 ‘박탈’당하게 됐다.

무디스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린 핵심 원인으로 나랏빚을 지목했다. Aaa 등급을 받은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미국의 정부부채 비율, 재정지출에서 이자 지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높다는 것이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이 나라 국가부채는 36조2200억 달러(약 5경원)에 이른다. 20년 새 다섯 배 가까이 급증했으며 경제 규모(국내총생산, GDP)의 1.23배다. 미국 정부는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아 2001년 이후 해마다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1년치 재정적자는 1조8300억 달러(약 2500조원)에 달했다.

문제는 미국이 당장 재정적자를 줄이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감세를 약속하고 있는데, 나라 곳간에는 부담이 되는 정책이다. 무디스는 국채 이자비용을 포함한 의무적 지출이 미국의 총재정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73%에서 2035년 78%로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월 스트리트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은 재정적자를 미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규정해왔다. ‘월가의 구루(guru, 스승)’로 불리는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캐피털 회장은 “미국은 한도가 무제한이고 청구서도 안 오는 신용카드를 가진 사람처럼 행동한다”며 “언젠가 청구서가 온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한도 없는 신용카드 펑펑 쓰듯 행동”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14년 전 S&P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당시에는 국제 금융시장이 큰 충격에 휩싸였다. 무디스의 이번 하향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는 점에서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관세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시장 불안감이 커진 상황인 만큼 단기적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무디스 Aa2, S&P AA, 피치 AA-로 매겨져 있다. 무디스와 S&P에선 위에서 세 번째, 피치에선 네 번째로 높은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