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 내 유명 대학들이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주의에 오염됐다고 봅니다. PC주의는 종교, 인종, 성적 취향 등을 차별 없이 존중하자는 운동입니다. 크리스마스 때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닌 ‘해피 홀리데이즈’라고 인사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트럼프는 그러나 백인 개신교도가 세운 나라에서 이러는 것은 문제라고 여깁니다. PC주의의 뿌리는 미국 대학 사회에 있고, 명문대의 경우 20%가 넘는 외국 유학생들 때문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반대하는 하버드대 학생들을 ‘반(反)유대주의’로 몰아가며 학교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끊으려 합니다.
세계 최강국의 흥망성쇠에는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회의 개방성과 인재의 유입은 중요한 조건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현대의 강대국들 역시 오랫동안 전 세계 인재들이 모여드는 ‘인재 허브’ 역할을 했습니다. 그 첨병인 대학 사회를 공격하고, 미국 발전의 초석을 제공한 세계 인재들을 내친다면 미국이 지금처럼 건재할 수 있을까요? 이는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이 아닙니다. 고급인재 유출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4·5면에서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세계 최강국의 조건 '개방과 포용'
폐쇄·군사팽창 땐 경제부터 몰락

포용적이냐 착취적이냐
다음으로 경제력이나 군사력보다 사회와 국가의 제도가 포용적이냐, 착취적이냐에 따라 국가의 성패가 갈린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 MIT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죠. 즉 사유재산권 보장, 공정한 경쟁 등 포용적 제도를 가진 나라는 소수 엘리트에 권력과 경제력이 집중되는 착취적 제도를 가진 나라보다 훨씬 강대해졌다는 겁니다. 단적으로 우리나라와 북한이 대표 사례로 언급됩니다. 중국 칭화대의 후안강 교수는 기술혁신이 제도나 경제력을 뛰어넘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영국의 산업혁명, 미국의 첨단기술 주도권이 세계 최강국 지위를 보장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기술혁신 자체가 포용적 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다른 학자의 설명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공지능(AI)이나 바이오 등 신기술 패권 경쟁이 미래의 강대국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개방성이냐 폐쇄성이냐
강대국의 몰락은 군사적 과잉팽창, 경제적 균형 상실, 정치적 부패, 외교전략과 지정학 요인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개방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과거 최강국에 속하던 중국 명나라와 오스만제국이 폐쇄적 정책으로 일관하며 유럽의 상업과 기술 발전을 견제하지 못했고, 유럽에 추월당했습니다. 따라서 아제모을루 교수의 제도와 관련한 주장을 개방성과 폐쇄성이라는 개념으로 치환해 역사에서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개방성의 성공 사례는 바로 로마제국입니다. 로마는 피정복민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며 다문화 포용정책을 펼쳤습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역사 속 사도 바울은 비록 유대인이었지만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 로마제국이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포용정책으로 다양한 인재가 로마의 행정·군사 시스템에 통합되며 세계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대항해시대 서유럽도 주목할 만합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등은 해양에서 개방정책을 폈고, 신대륙 발견과 진출, 무역로 확보에 성공했죠.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20세기 전반기까지 뉴욕 앞 앨리스섬에서 이민 수속을 밟은 미국 이민자들은 미국의 부와 국력을 키운 근간이 됐습니다. 이민자와 유학생, 연구자들이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하버드·MIT 등에서 혁신을 이끌었고, 이는 국가경쟁력의 핵심 동력이 됐습니다.
폐쇄성 때문에 쇠퇴한 사례에는 스페인도 있습니다. 특히 종교적 배타성이 문제였습니다. 16세기 스페인은 세계 최강국이었습니다. 당시 종교개혁 열풍이 유럽 대륙을 강타할 때, 스페인은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했죠. 지배권을 갖고 있던 네덜란드 지역 개신교도를 탄압하고 영국 국교회와도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와중에 프랑스 개신교도인 위그노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과 네덜란드로 대거 이주해 갔고, 위그노의 기술과 자본, 네트워크는 이들 나라의 산업 발전과 국력 신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엔 4만~5만 명의 위그노가 정착해 실크 직조, 시계·보석·은세공, 제지, 무기 제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첨단기술과 장인 정신을 전파했습니다. 이것이 산업혁명의 기초가 됐습니다. 위그노들은 영국은행(Bank of England)도 설립했습니다. 반대로 스페인은 군사적·경제적으로 점점 쇠락해갔죠.NIE 포인트1.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을 개략적으로 읽어보자.
2. ‘포용적인 사회냐, 아니냐’가 나라 발전을 좌우한다는 아제모을루 교수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3. 프랑스 위그노의 이동이 유럽 경제에 몰고 온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고급인재가 경제성장률 크게 끌어올려
인재유입 막으면 나라의 쇠락 불 보듯

인재 유입(brain gain)의 중요성
인재 유입(brain gain)은 단순한 노동력 증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지식·기술·문화 역량을 비약적으로 키우고, 총요소생산성도 직접적으로 끌어올려 경제 전반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죠. 미국에선 2022~2024년 이민 증가로 인한 소비와 투자의 확대가 같은 기간의 국내총생산(GDP)을 연평균 0.4%포인트씩 높였다는 미국 의회예산처(CBO)의 분석이 있습니다. 2021년 2.5%의 실질성장률이 2024년 3.6%가 된 겁니다.
인재의 집적은 반도체·바이오·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과 핵심 산업이 발전하는 토대가 됩니다. 미국의 경우, 이민 연구개발자가 전체 연구자 중 16%에 불과하지만, 미국 특허 실적과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의 36%를 담당한다는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구 결과도 있어요. 구글·마이크로소프트·테슬라 등 미국 빅테크의 창업자와 최고경영자(CEO) 상당수는 이민자 출신으로, 이들의 혁신적 창업과 경영은 미국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다양한 배경과 전문성을 지닌 인재가 모이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적 해법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런던, 싱가포르 등 글로벌 혁신 클러스터의 성공은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인재의 융합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인재가 모여들려면 자유롭게 연구하고 도전하는 문화, 법적·제도적 지원, 영어 사용 등 환경이 잘 갖춰져야 합니다. 선진국들은 인재 유입을 위해 비자·이민제도 완화, 정착 지원, 연구·창업 지원, 다문화 포용 정책 등 다양한 제도적 뒷받침을 하고 있어요.
인적자본이 이끄는 경제성장
고급 인재는 곧 수준 높은 인적자본(human capital)을 뜻합니다. 인적자본은 나라의 경제성장에 핵심적인 부분으로, 근래 들어 더욱 조명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고전학파의 경제성장 이론인 솔로 모형에선 기술 진보를 그냥 외부에서 주어지는 변수로 인식합니다. 인적자본이 기술 진보를 가져오는 내생적 과정을 설명하지 못하죠. 이를 새고전학파 경제학에선 로머·루카스 모형을 통해 교육과 훈련 투자를 통한 인적자본 축적이 기술혁신을 가져오고 경제성장에 기여한다고 설명합니다. 생글생글에서도 여러 번 다룬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입니다. 쉽게 말해, 교육 수준이 높은 근로자는 단위시간당 생산량을 크게 증대시킵니다. 연구개발 투자는 기술혁신에 41% 정도 기여하고, 인적자본 투자는 34%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2010년 교육투자를 연평균 1%포인트씩, 같은 기간 기술 진보율은 연평균 0.8%포인트씩 높아졌습니다.
세계로 확산된 미국의 가치
미국 내 외국인 유학생은 1950년대 이전 유럽·남미 중심에서 1950~1980년대 한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국가, 1990년대 이후론 중국과 인도 유학생 중심으로 바뀝니다. 지금은 인도 유학생이 33만1602명으로 1위, 중국은 27만7398여 명으로 2위, 한국은 4만3149명으로 3위에 올라 있습니다.
미국 유학을 경험한 고급 인재들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뒤 미국식 제도와 사회시스템을 받아들이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투명한 리더십과 시장경제는 물론 인권과 소수자 보호, 시민사회 활성화 등 미국의 가치가 세계에 수출·전파되는 효과를 낳은 것이죠. 20세기 세계 정치 지도자 가운데에선 우리나라의 이승만 대통령,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총리, 싱가포르의 리셴룽 총리와 고촉통 총리,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 포르투갈 총리와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을 지낸 조제 마누엘 두랑 바호주 등이 미국 유학파입니다. 이런 것들을 미국이 왜 포기하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NIE 포인트1. 미국 빅테크 경영자 가운데 이민자 출신이 누구인지, 어떤 배경으로 성장했는지 알아보자.
2. 외국인 유학생이나 이민자를 규제하면 미국 국익에 과연 도움이 될까?
3. 미국의 유학비자 심사 강화 등으로 어떤 나라가 반사이익을 얻을까?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