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사람엔 '향기' 천한 신분엔 '악취' 꼬리표
옷으로 겉모습 감춰도 몸에 밴 '냄새' 드러나
인간은 후각으로 4000여 가지 향 구별
기억이 냄새와 얽히면 '각인 효과'로 증폭
지배계급 '좋은 향' 유지하는 데 많은 공 들여
유럽 귀족 여성, 오물 냄새 피하려 향수 사용
옷으로 겉모습 감춰도 몸에 밴 '냄새' 드러나
인간은 후각으로 4000여 가지 향 구별
기억이 냄새와 얽히면 '각인 효과'로 증폭
지배계급 '좋은 향' 유지하는 데 많은 공 들여
유럽 귀족 여성, 오물 냄새 피하려 향수 사용

바보 온달의 노모는 자기 아들을 찾아온 평강공주가 범상치 않은 신분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챘다. 온달의 허름한 거처를 찾아온 평강공주의 고귀한 신분을 가장 먼저 드러내는 것은 화려한 의복도, 몸을 치장한 장식품도, 품격 있는 언어도 아닌 공주에게서 풍기는 ‘향기(냄새)’였다.
전근대사회에서 신분을 가르는 기준으로 다름 아닌 냄새가 첫손에 꼽혔다. 화려한 의복으로 겉모습을 바꾸고 감출 수는 있어도 오랜 기간 몸에 밴 ‘냄새’는 쉽사리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고귀한 신분에게는 ‘향기’라는 수식어가, 천한 것들에게는 ‘악취’라는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이처럼 신분의 높고 낮은 기준으로 냄새를 고른 데는 동서양에 차이가 없었다. 낮은 사람, 비천한 이를 표현할 때 “냄새나는 것”은 가장 먼저 입에 오르는 표현이었다. 냄새로 신분을 구분하는 일은 다른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러시아에서 농노를 뜻하는 스메르디(смердъ)에서 유래한 러시아어 단어 스메르데티(смердеть)는 ‘냄새를 맡다’와 ‘악취를 풍기는 사람’이라는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반면 건륭제 시기 청나라에 병합된 위구르족의 한(恨)을 담은 전설적인 고귀한 인물인 ‘향비(香妃)’는 몸에서 향기가 나는 인물로 그려졌다.
이처럼 인간의 인식에서 ‘후각’이 오감(五感) 중 두드러지는 역할을 맡은 것은 많은 부분 생물학적 특성에 기인한다. 포유류는 기본적으로 후각이 발달했다. 적잖은 포유류는 색맹으로 시각의 역할은 부차적이다. 그에 따라 개나 고양이, 소, 양 같은 동물은 대상을 파악하는 데 일단 코부터 들이민다. 인간도 다른 포유류에 비해서는 후각이 퇴화했지만, 시각이나 촉각보다 후각으로 가려낼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기능이 약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인간은 최소 4000여 가지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
후각의 강렬한 인상은 인간 뇌 구조의 특성으로 인해 사람의 기억에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코의 후각수용체가 접한 냄새 정보는 뇌의 시상(視床)에 전달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편도체로도 전송된다. 짜릿한 사건의 기억은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4000여 가지 냄새라는 정서와 함께 뇌리에 깊이 새겨진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기억은 냄새와 얽히면서 강한 증폭작용을 한다.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일을 전하는 기준으로 냄새가 거론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냄새는 다른 무엇보다 강력한 각인 효과를 나타냈다.
대표적 사례로 부족한 지면을 아끼고 아껴가며 압축적으로 기록을 남긴 고대 사서(史書)를 꼽을 수 있다. 자원이 한정됐음에도 냄새나 향기가 중요한 사건을 묘사하는 데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삼국사기>에 ‘향기’를 언급한 기록은 총 16건인데, 대다수는 지배층과 연관돼 등장했다. ‘유례이사금의 즉위(왕이 태어난 날 저녁에 신비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다)’처럼 왕의 탄생이나 즉위, 불교의 도입과 연결되거나 진골 귀족 가옥에서의 침향(沈香) 허용 여부에 거론되는 식이었다. 향기는 철저하게 신분제 중 지배층과 얽힌 단어였다.
반면 ‘냄새’는 더럽고, 위험하고, 외부의 적과 연동되기 쉬웠다. 음험하고 불결한 외부의 위협은 ‘냄새’라는 표상으로 구체화됐다. <고려사>에는 몽골에 사신으로 다녀온 왕창(王淐)이 원종(元宗)에게 “신(臣)이 오래도록 비리고 누린 냄새에 물들었으니 하룻밤 지나고 나아가 뵙기를 청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원종은 “이미 아무 탈 없이 돌아왔는데, 어찌 밖에서 묵는단 말인가? 그대가 입고 온 옷은 모두 태워버리고 옷을 갈아입는 즉시 오도록 하라”고 답변한다. 고국을 짓밟은 외적을 상징하는 것은 다름 아닌 ‘누린 냄새’다.
상류층은 향기로 신분을 구별 짓는 작업에 많은 노력도 기울였다. 꽃향기 외에는 평생 각종 생활 악취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일반인과 달리 지배계급은 좋은 향을 유지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근대도시의 생활 오물에서 나는 냄새를 피하고자 유럽 귀족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고, 향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 향수는 지배층, 특히 서구 여성 상류층의 ‘자존심’을 지키는 핵심 도구 역할을 했다. 제정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는 향수를 푼 물에 발을 담근 뒤 공작 깃털 부채로 말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치아가 모두 망가진 탓에 발생한 구취를 향수 뿌린 손수건으로 감췄다.
냄새는 개인이나 집단을 구별 짓는 수준을 넘어 지역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기도 했다. 고대 이래 각종 ‘향료’는 대표적 사치품이자, 주요 교역품이었다. 그리고 주요 향료의 산지라는 이미지는 다른 무엇보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오랜 생명을 지녔다. 중동이 좋은 사례다. 오랜 기간 중동은 귀중한 향료의 산지로 유명했고, 사람들은 냄새와 결부해 중동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런 역사의 기억은 문학작품 속에도 녹아들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이런 냄새와 향기의 종합판이라고 할 만하다. “여전히 피 냄새가 진동하는구나. 아라비아의 모든 향수를 쏟아부어도 조그만 손에 밴 냄새를 지우지 못하는구나…”라는 <맥베스> 5막 1장에 나오는 맥베스 부인의 대사는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김동욱의 세계를 바꾼 순간들] 전근대사회 신분 구분의 첫 기준은 '냄새'](https://img.hankyung.com/photo/202505/01.40051726.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