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 가입자의 국적이 다양해지고 있다. 내국인 신규 가입자는 2020년 29만4000여 명에서 지난해 26만2000여 명으로 감소했다. 저출생의 영향이다. 반면 외국인 가입자들은 꾸준히 느는 추세다. 같은 기간 중국인은 3만여 명에서 5만6000여 명으로, 베트남인은 1만3000여 명에서 5만9000여 명으로 증가했다. 일각에선 외국인 가입자가 늘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해 ‘건강보험 상호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한국인에게 자국의 건강보험 문호를 열어주는 국가에서 온 외국인에게만 건보 가입 자격을 주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한국인을 홀대하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에게 건보 혜택을 줄 이유가 있느냐는 취지다. 외국인에겐 내국인보다 높은 보험료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찬성] 중국인 적자 지속…부정수급도 급증
재정 '빨간불'…기준 차별화 불가피
건강보험은 전 국민이 가입할 수 있는 공적 보험이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같은 증상으로 여러 병원을 방문하는 ‘의료 쇼핑’이 문제가 될 정도로, 소비자의 의료비 부담이 작다. 공적 보험이 없어 매년 수백만 명이 의료채무로 파산하는 미국과 천양지차다.

한국의 자랑인 건보가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들어온 보험료는 83조9520억원이었지만, 빠져나간 급여비는 95조2529억원에 달했다. 11조원이 넘는 적자를 정부가 세금으로 메웠다. 건보 적자 폭은 향후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병원에 갈 일이 잦은 노인 인구 비중이 늘고 있어서다. 늘어나는 외국인 가입자도 건보의 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는 불안 요소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외국인 대상 '건강보험 상호주의' 도입해야 하나
얼핏 보기에 외국인 건보 재정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최근 통계인 2023년 데이터를 보면 외국인 건보 수지는 7400억원 흑자다. 예외는 27억원 적자가 난 중국인 가입자다. 2017년 1108억원보다는 크게 개선됐지만, 적자 기조는 그대로다.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인 대다수는 식당 등 요식업종에서 종사하는 중장년층 여성이다. 한국에 거주한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평균 연령도 높은 편이다. 본인이 병원에 가는 일이 잦고, 건보에 피부양자로 올린 가족도 많다. 건보 재정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큰 조건들이다.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 다른 나라 출신 근로자들도 중국인과 비슷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체류 인원과 기간이 늘어나면 고령자의 비중과 피부양자로 등록 사례가 증가하는 게 당연하다. 외국인 건보 부정수급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23년 1만4630명이던 적발 인원이 지난해 1만7087명으로 16.8% 증가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앞으로도 계속 많아질 것이다. 외국인 고용과 이들의 건보 가입이 불가피하다면, 자격 기준 조정과 부정수급 방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반대] 건보는 외국인 인재 유치의 수단
상호주의 땐 국제사회 반감 살 수도
저출생,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은 한국이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2023년 3596만 명에 달한 생산가능인구는 2028년 3419만 명, 2033년 3235만 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매년 30만~40만 명의 일손이 사라지고 있으니, 구직난이 구인난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일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는 젊은 국내 인력의 공백을 메울 대안이다. 양질의 외국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 노동력 부족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앞으로 외국인 인력은 ‘귀한 몸’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급보다 수요가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서다. 일본 등 대다수 선진국이 저출생, 고령화에 따른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에 주목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건강보험은 외국인 근로자 쟁탈전에 뛰어든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강점 중 하나다. 다치더라도 치료비가 부족해 곤경에 처하는 일은 없다는 믿음이 한국이란 일터의 매력을 높이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보 상호주의, 외국인 보험료 차등 같은 정책을 펴는 것은 소탐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건보 재정 적자보다 외국인 인력 부족 심화가 한국의 경제에 훨씬 더 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주요 국가 중 건보 상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만 이런 정책을 편다면 국제 사회의 반감을 살 개연성이 크다.

외국인이 건보 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주장 역시 과장된 측면이 있다. 당초 건강보험공단은 2023년 중국인 건보 적자를 640억으로 발표했다가 뒤늦게 27억원으로 수정했다. 국가 코드를 분류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빚어졌다는 게 건보공단의 해명이었다. 27억원은 건보의 덩치를 감안할 때 문제 삼기 힘든 미미한 금액이다. √ 생각하기 - 과다 진료자 줄이는 게 우선…외국인 관리도 개선해야
[시사이슈 찬반토론] 외국인 대상 '건강보험 상호주의' 도입해야 하나
건강보험 적자는 한국 사회의 골칫거리 중 하나다. 늘어나는 노인 인구로 해마다 적자 폭이 늘고 있다. 보험료를 대폭 늘어나는 외국인 근로자도 건보 재정과 관련해 논란이 되는 문제긴 하지만 핵심 이슈로 보기는 힘들다. 매년 수십 번씩 병원을 찾는 과대 외래진료자를 줄이고, 필요 이상으로 넓은 의료보험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한 과제다. 건보 상호주의나 외국인 근로자 보험료 차등 등의 조치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본 후 도입을 검토해도 늦지 않다. 다만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 가입자를 관리하는 시스템의 고도화는 서두를 필요가 있다. 적어도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지신의 부모와 형제자매를 피부양자로 등록하고, 의료 서비스가 필요할 때 한국에 초청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농어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지역가입자 관리체계도 정비가 필요하다. 이들은 체류 기간이 1년 미만으로 짧고, 소득도 불분명해 보험료를 정확히 부과하기가 힘들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