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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최근 한국경제신문은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이 전기가 모자라 AI 연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AI 연구엔 대규모 전력이 필요한데, 한전의 설비 부족과 복잡한 행정절차 때문에 전기 공급이 어렵다는 겁니다. 첨단산업의 심장부에 전기를 공급하는 과제도 송전선로나 송전탑 건설과 관련한 지역 주민과의 갈등에 가로막히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울진 등 동해안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 공장에 보내기 위한 초고압 직류송전 사업은 경기 하남시의 반대로 계획보다 6년 7개월째 지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때 ‘IT(정보기술) 강국’이었는데, ‘AI 강국’ 반열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위의 얘기 속에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AI 강국’으로 우뚝 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려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등을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AI 기술리더십이 지속가능 발전 보장해
'AI 인재양성 → 기술진보 → 경제성장' 주목

한국은행 “AI가 생산성 3% 높여”
먼저,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이 됩니다. AI는 반복적이고 표준화한 업무의 자동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물류 최적화, 맞춤형 마케팅 등으로 생산성을 높여주죠. 한국은행에 따르면 AI의 도입은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1.1~3.2% 향상시킵니다. 국내총생산(GDP)은 4.2~12.6% 높아질 수 있어요. 고령화 등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와 성장 둔화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해줄 겁니다. 다음으로 AI는 기계·설비·건물·제조공정 등에 내재화돼 스스로 판단하고 작동하는 자율화로 나아갑니다. 이게 공장 자동화(스마트 팩토리)로 나타나고, 경제 인프라도 더욱 스마트하게 만듭니다. 세 번째는 인간과의 협업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노동력 증강’을 가능하게 합니다. 네 번째는 신산업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듭니다. 예를 들어, 금융에선 AI 기반 신용평가 및 사기 탐지, 의료에선 AI 영상 분석과 신약 개발, 농업에서는 스마트 팜과 자율주행 트랙터 등이 나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AI 기술을 적극 도입한 지역은 외국인투자(FDI) 유치, 첨단산업 클러스터링, 고임금 일자리 창출 등에서 유리합니다.
경제뿐이 아닙니다. AI 기술은 의료·복지·교통·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고, 국민 생활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습니다.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AI 기반의 정보 분석, 위협 탐지, 자동화된 대응 시스템은 현대 안보의 필수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또 AI 기술 패권은 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증대시켜줍니다. AI 기술력과 생태계를 잘 갖추면 AI 기술 표준화와 AI 윤리, 법률적 규제 등 글로벌 의제 설정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지요. 이른바 ‘글로벌 AI 리더십’입니다. AI 강국이 되느냐 여부는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국민의 미래 복지에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AI가 싱귤래리티 가져올까
이젠 AI 기술의 영향을 경제 이론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경제성장의 비밀을 푸는 경제성장 이론에는 전통적으로 신고전학파의 ‘솔로(로버트 솔로 박사) 모형’이 있습니다. 이 모형은 각 나라의 경제성장은 물질적 자본축적에 의해 이뤄지고,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기술 진보가 중요하다고 짚었습니다. 그리고 기술 진보는 과학적 요인에 따라 외생적으로 주어진다고 봤죠. 하지만 1980년대에 등장한 ‘내생적 성장 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은 기술 진보를 경제모형 내부의 변수인 ‘지식’, 지식 축적의 열쇠인 ‘인적자본’이 결정한다고 봅니다. 경제성장을 이루려면 이런 요소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교육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AI 기술 개발은 내생적 성장 이론이 지닌 함의를 주목하게 만듭니다.
다음으로 빠른 속도의 기술 변화가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시점을 뜻하는 싱귤래리티(Singularity, 특이점)와 AI의 관련성입니다. 2005년에 저서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를 통해 싱귤래리티란 용어를 유행시킨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AI가 초지능으로 진화하며 GDP를 10년 내 100~300% 증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MIT 교수는 이런 주장에 회의적입니다. 그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 ‘AI 거시경제학 개요(The Simple Macroeconomics of AI)’에서 AI 기술의 효과는 점진적이며, 이에 따른 생산성 증가가 연간 0.5% 미만에 그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AI는 허위 정보 확산 등 온라인 알고리즘의 문제를 확대하는 등 사회에 해악을 끼쳐 그 경제적 효과가 반감된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논의들을 종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NIE 포인트1. ‘AI 강국’ 진입이 왜 중요한지 정리한 뒤, 학습 동아리 등에서 발표해보자.
2. 중국의 AI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는지 알아보자.
3. 싱귤래리티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해 좀 더 공부해보자."美·中과 겨룰 확실한 AI 3강 올라서야"
혁신전략에 민간의 대규모 투자 유도를

한국 AI 투자, 미국의 60분의 1
세계 6위권이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만족할 수준은 아닙니다. 최상위 국가, 즉 미국·중국과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1위 미국의 총점을 100점 기준 삼았을 때, 2위 중국은 53.9점, 우리나라는 27.3점이었습니다. 3위 싱가포르(32.3점)부터 10위 인도(23.8점)까지는 AI 경쟁력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요. 미국은 AI 연구, 투자, 모델 개발, 상업화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압도적 1위입니다. 2013~2024년 누적 AI 투자 규모의 경우, 미국이 4709억 달러이고 중국(1193억 달러), 영국(282억 달러), 캐나다(153억 달러), 이스라엘(150억 달러) 순입니다. 한국은 73억 달러로 9위권입니다. 중국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와 정책, 방대한 데이터 활용, 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 등 정보기술(IT) 대기업의 활약을 바탕으로 AI 특허, 상업화, 응용 기술 부문에서 강세를 보입니다. 현실이 이런데, ‘AI 세계 3강’이라는 목표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인재·인프라·전략 모두 부족
우리나라는 한때 ‘IT 강국’으로 통하고, 세계 빅테크 기업들의 기술 실험장(테스트베드)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AI 분야에선 선도국과 이렇게 격차가 벌어졌을까요?
AI 산업은 기술력만으로 판가름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보통신기술 인프라, 반도체 제조, 높은 교육열 등 강점이 많지만, 인재·데이터·투자·정부 정책 등에서 두각을 니타내지 못하며 AI 산업의 글로벌 주도권을 놓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선 AI 관련 학과의 정원 규제, 산업계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교육 등으로 AI 우수 인재의 절대적 수치가 부족합니다. 해외에 비해 낮은 기업 봉급 수준, 연구에 전념하기 힘든 환경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면 다들 미국 등 해외로 나가려고 합니다. 인재 유출 문제가 심각하지요.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와 인수합병도 활발하지 않아요. 혁신을 표방한 스타트업이 기득권을 가진 전통산업의 반대에 가로막히는 문제는 AI 분야에서도 일어납니다.
경쟁력 높은 AI 분야로 특화를
이런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까요? 과거 IT 강국을 일군 역사에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추진 체계를 신속히 갖춰야 합니다. 장기적 전략하에서 혁신 기업이 고사되지 않는 생태계를 만들려면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출발점이자 필수 요소입니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가 경제 공약 가운데 AI 산업 육성을 가장 강조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다음으로,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실행할 수 있도록 여러 규제를 풀어주고 세제 지원책도 획기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벌 특혜’와 같은 프레임에 갇혀선 세계 AI 대전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AI는 결국 ‘자금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규모 AI 시스템을 뒷받침할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가 부족합니다. 여기에 대대적 투자가 이뤄져야 합니다.
또 하나,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지닌 분야로 AI 산업을 특화하는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제조·의료·국방·온디바이스 분야를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온디바이스 AI란 인터넷 연결 없이도 스마트폰, 자동차, 사물인터넷(IoT) 기기 자체에서 AI 기능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AI 데이터센터, 송전선로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민의 반대를 극복해내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AI 산업에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 연결까지 완결돼야 AI 강국의 꿈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NIE 포인트1. ‘글로벌 AI 지수’가 어떻게 산출되는지 알아보자.
2. AI 강국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3. 대기업 지원을 ‘재벌 특혜’로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점을 파악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