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
경제적 내용 가득…282개 법 조항 구성
거짓증언 절도 은닉에 처벌규정 상세
상거래 상속 임대료 등 사법적 문제도 다뤄
경범죄도 사형…형벌 조항 두드러져
'계약'의 중요성 곳곳에
결혼할 때도 부인과 계약 체결 요구까지
증인·계약서 없이 물건 거래하면 인정 안 해
사적 보복 금지하고 공적 응징으로 질서 세워
상업·국제교역 장려 위해 '카룸' 설치까지
경제적 내용 가득…282개 법 조항 구성
거짓증언 절도 은닉에 처벌규정 상세
상거래 상속 임대료 등 사법적 문제도 다뤄
경범죄도 사형…형벌 조항 두드러져
'계약'의 중요성 곳곳에
결혼할 때도 부인과 계약 체결 요구까지
증인·계약서 없이 물건 거래하면 인정 안 해
사적 보복 금지하고 공적 응징으로 질서 세워
상업·국제교역 장려 위해 '카룸' 설치까지

고대 바빌로니아의 6대 왕인 함무라비(BC 1792~1750)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재통일한 군주다. 그의 시대에 조성한 건축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쐐기문자 텍스트를 통해 당대의 모습이 상세하고 생생하게 전해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an eye for an eye, a tooth for a tooth·lex talionis)”라는 문구로 널리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은 함무라비가 새로 건설한 왕국의 통합을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여 년 전 우르 왕국이 몰락한 뒤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던 여러 도시 국가를 하나로 통합하는 수단으로 새로운 법규범을 도입한 것은 대단히 중요했다.
2.35m 높이의 검은색 섬록암에 아카드어로 새긴 함무라비 법전의 작성 연대는 기원전 1772년경까지 올라간다. 1901년 프랑스 고고학자 자크 드모르강이 이끄는 탐험대가 발견한 이 법전은 당시의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282개 법 조항으로 구성된다. 텍스트 첫 줄에서부터 함무라비는 모든 백성을 공평하게 대하는 ‘정의로운 왕’으로 소개한다.
법전에는 경제적 내용이 가득하다. 거짓 증언과 절도, 은닉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고, 노동·재산·상거래·결혼·이혼·상속·입양·농업·급여·임대료에 관한 사법적 문제도 다루고 있다. 바빌로니아와 외국에서 노예를 사고파는 것도 주요한 주제다.
법이 정한 처벌 규정은 현대인의 시선에서 보면 엄하기 이를 데 없다. 32개 조항에서 사형을 규정하고 있고, 귀나 팔다리 등의 신체 자르기를 언급한 곳도 수두룩하다. 역사학자들은 이 법전에서 형벌 조항이 두드러지게 많고, 이전까지 단순한 배상의 대상이던 경범죄에 대해 사형으로 벌한다는 데서 “치안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길 정도로 아직 안정되지 않은 사회였다”는 사회상을 추론하곤 한다.
법전에는 또 국내 상업과 국제 교역을 장려하기 위한 ‘카룸(karum)’이라는 곳을 두고 ‘상인들의 감독(와킬 탐카리, wakil tamkari)’이 조직을 대표하도록 했다. 이는 당시 상업이 상당히 발달했다는 증거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형벌의 특징으로 보복주의를 꼽을 수 있다. “한 귀족이 다른 귀족의 눈을 상하게 하면, 그의 눈을 상하게 한다. 한 귀족이 다른 귀족의 뼈를 부러뜨리면 그의 뼈를 부러뜨린다”라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동등한 신분인 사람의 이를 부러뜨릴 경우, 부러뜨린 사람의 이를 부러뜨린다”라는 구절까지 합쳐져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물론 불평등 사회인 당시 현실 그대로 보복도 불평등하게 이뤄졌다. 귀족이 평민의 눈을 상하게 만들거나 뼈를 부러뜨리면 1미나의 은을 지불해야 했지만, 피해자가 노예인 경우엔 배상액이 절반으로 줄었다.
또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면 한 손을 자른다”라거나 “임산부를 때려 유산하면 5세겔의 돈을 갚고, 임산부까지 죽으면 때린 사람의 딸을 죽인다” 같은 법규도 있다고 한다. 유산한 여인의 신분이 귀족·지도층 인사냐 노예냐, 아니면 중간층 사람이냐에 따라 갚을 돈이 2, 5, 10세겔로 차이가 나기도 했다. “아이를 잘못 돌본 여인의 가슴을 자른다”라거나 “수술 후 귀족이 죽거나 눈을 잃으면 수술한 의사의 손목을 자른다”는 식으로 오늘날의 시선에서 보자면 야만스러운 느낌이 드는 구절도 적지 않다. 같은 이유로 잘못 지은 집이 무너져 사람이 죽으면 그 집을 지은 석공이 목숨을 내놔야 했다.
현대인이 봐도 깜짝 놀랄 만큼 합리적인 구절도 적지 않다. 특히 ‘계약’의 중요성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어떤 사람이 한 여자를 부인으로 취하되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이 여인은 그 사람의 부인이 아니다”라며 ‘혼인신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여자의 잘못된 행동 탓이 아니라 단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면 여자 측에게 결혼 당시 가져온 지참금을 돌려주도록 했다. “증인이나 계약서 없이 다른 사람의 아들이나 노예에게서 금, 은, 노예, 소, 양, 노새 등을 구매하거나 넘겨받은 자는 도둑으로 간주해 사형에 처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증인이나 계약서 없이’ 거래했다는 점을 증명하는 방식도 ‘과학적’이었다. 원래 재산 소유자가 특정 물건이 그의 재산이었음을 말해줄 증인이 있다고 주장하고, 물건 구매자도 정당한 거래였다는 점을 뒷받침할 증인이 있다고 맞서면 증인을 데려올 때까지 6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구매자가 판 사람과 증인을 데려오지 못하고 원소유자가 믿을 만한 증인을 데려오면 구매자가 도둑으로 판정돼 사형당했다. 반대의 경우엔 잃어버렸다는 주장이 무고죄가 내려져 사형에 처한다. 양쪽에서 증인을 데려오고 증언이 모두 신빙성이 있으면, 물건을 판 상인이 도둑으로 판정돼 사형 판결이 내려졌다.
![[김동욱의 세계를 바꾼 순간들] 함무라비 법전이 뿌린 '신뢰'…상업 발전 싹 틔우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503/AA.39964777.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