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버의 댐
지난 2월, 체코에서 비버가 댐을 건설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댐 건설 프로젝트가 중단된 지역이어서 더욱 반가운 소식이었다. 심지어 비버의 댐 건설로 절약한 비용은 무려 18억 원이었다. 또한 비버가 만든 댐은 단순한 서식지를 넘어 생태계 유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학자들은 비버가 만든 댐이 생태계 유지 외에 홍수를 막고 탄소 흡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평가한다.
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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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비지 애즈 어 비버(busy as a beaver)”라는 관용어가 있다. 비버가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동물로 알려져 ‘바쁘게 일하는 사람’ 또는 ‘정말 바쁜 상태’를 묘사할 때 쓰는 표현이다. 비버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서식지인 댐을 만들어내는 동물이다. 게다가 한번 댐을 만들고 난 뒤에도 끊임없이 서식지를 보수공사 하며 살아간다.

최근 체코에서 비버가 열심히 움직인 덕분에 고민거리로 남아 있던 프로젝트를 해결하고 경제적·환경적 이득까지 얻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7년 전 체코 정부는 프라하 남서쪽 브르디 지역 클라라바강에 댐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습지를 조성해 강의 산성수와 오염수를 방지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가재 등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였다. 100만 달러(약 15억) 이상의 자금도 확보했다. 그러나 과거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한 토지라는 이유로 건축 허가를 받지 못해 프로젝트는 무기한 지연되었으며, 강은 수년째 방치된 채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지난 1월, 댐이 건설돼 있었다. 댐을 건설한 숨은 엔지니어는 비버 8마리였다. 체코 자연보호청의 보후밀 피셰르에 따르면, 비버의 댐 건설로 약 3000만 체코 코루나(약 18억 원)가 절약됐다. 통상 댐을 건설하는 데 수년이 걸린다. 게다가 건설뿐 아니라 유지, 보수 등의 관리에 수많은 인력을 지속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반면 비버가 댐을 만들면 비용이 들지 않고 수일 만에 완성된다. 보수와 관리도 비버들이 맡아서 한다.

댐을 만든 비버들의 건축 실력 또한 출중하다. 체코 자연보호기관의 야로슬라프 오베르마이에르는 “프로젝트 당시 설계한 댐보다 훨씬 효율적인 구조로 지어졌다”고 밝혔다. 크기도 두 배 더 컸다. 7년간 고민해온 문제가 하룻밤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해결된 것이다.

‘생태계 엔지니어’로 불리는 비버는 효율적인 구조의 댐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도구를 이용해 구조물을 만드는 유일한 동물이기도 하다. 비버는 성체가 되면 기존 서식지를 떠나 새로운 곳에 댐을 만들거나, 주인이 없는 댐을 보수해 새로운 서식지로 삼는다.

서식지는 단단한 이빨로 짓는다. 비버의 앞니는 매우 크며 주황빛을 띠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치아의 가장 바깥 부분인 법랑질에 철이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비버의 이빨은 더 단단할 뿐 아니라 산성 성분에도 잘 견딘다. 비버는 이빨로 나무 밑동을 갉아 나무를 쓰러뜨리고 물가로 가져간다. 그러고는 나무를 다시 이빨로 갉아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이렇게 자른 조각으로 댐을 만드는데, 사이사이 빈틈은 진흙을 발라 물의 흐름을 완벽하게 차단한다.

댐 내부는 매우 정교하게 설계돼 있다. 물속에 입구를 내어 늑대, 여우 등 천적으로부터 서식지를 숨길 수 있다. 비버의 꼬리는 넓적한 노 모양인데, 천적을 발견하면 꼬리로 수면을 때린다. 꼬리로 물을 내려치는 소리를 들은 다른 비버들은 물속으로 들어가 서식지로 숨을 수 있다.

비버는 댐 내부에 입구를 따라 위로 올라가는 통로를 만든다. 올라가다 보면 물이 닿지 않는 건조한 공간들이 나오는데, 주로 생활하거나 겨울철 먹이를 저장해두는 공간이다. 물속으로 이어지는 비상 탈출구는 물론 공기가 통하는 구멍, 일종의 환기구도 있다.

댐을 만들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보수공사를 하고 확장한다. 인간이 부수거나 특별한 외부 압력이 없으면 댐은 계속 커지고 견고해지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비버가 만든 댐은 우주에서도 관측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캐나다 앨버타주 우드 버펄로 국립공원에 있는 댐으로, 길이가 무려 850m에 달한다. 여러 비버 가족이 몇 달씩 수천 그루의 나무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비버가 댐을 만들면 댐 상류에는 자연스럽게 습지가 형성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식물과 동물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새로운 생태계가 자리 잡는다. 또한 습지는 탄소를 효과적으로 흡수·저장하는 기능을 해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데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한편 비버가 만든 댐과 습지를 모두가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2020년, 천적인 늑대가 비버를 모두 사냥해 습지 형성을 막고 사냥터를 유지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미국 미네소타대 연구팀은 늑대의 몸에 GPS를 달아 2015년부터 5년 동안 추적·관찰한 결과, 늑대들이 비버를 사냥하면서 비버의 수가 줄어 88개의 댐과 습지 형성을 막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남아메리카 티에라델푸에고섬에서는 비버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모든 나무를 갉아먹어 생태계를 파괴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비버의 행동이 항상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은 건축가의 긍정적 역할은 결코 적지 않다. 비버는 인간의 기술로 해결하기 어려운 환경문제를 자연스럽게 개선하기도 한다.이에 비버의 역할은 앞으로도 생태계 복원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기억해주세요
조혜인
과학칼럼니스트
조혜인 과학칼럼니스트
비버는 독특한 생태계 엔지니어로서, 자연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버는 효율적인 댐을 설계하고 건설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무를 갉고 진흙으로 빈틈을 막으며 물의 흐름을 차단한다. 이 댐은 종종 습지를 형성하고, 다양한 식물과 동물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비버가 만든 습지는 탄소를 흡수해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데 기여하는데, 이는 인간의 기술로 해결하기 어려운 환경문제를 자연스럽게 개선하는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