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
주가지수, 환율 등 각종 금융시장 지표가 표시된 은행 딜링룸의 모습.  연합뉴스
주가지수, 환율 등 각종 금융시장 지표가 표시된 은행 딜링룸의 모습. 연합뉴스
한국인이 보유한 미국 주식이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어치를 넘어섰다. 주요 국가 증시 중 수익률 최하위권을 기록한 한국 시장에 등을 돌리고 엔비디아, 테슬라 등 미국 주식 투자에 열중하는 ‘서학개미’가 늘어난 영향이다. 연초 K증시 수익률 전세계 1위인데 반도체를 비롯한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 우려와 수출 둔화세로 올해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어두운 점도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떠나게 하는 데 한몫했다. ‘국장’ 떠받치던 동학개미, ‘미장’ 대이동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가 보유한 미국 주식 보관액은 지난달 말 기준 1121억181만 달러로, 연초(673억6096만 달러)에 비해 70% 이상 늘었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미국 주식 보관액이 1000억 달러를 넘어서게 됐다. 거래량(매수·매도 건수의 합)이 전년 대비 20%, 거래대금(매수·매도 금액의 합)은 80% 안팎 급증한 점도 눈길을 끈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를 일컫는 서학개미라는 신조어는 2020~2021년께 탄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증시가 폭락한 이후 저점 매수에 나선 개인투자자를 필두로 ‘동학개미 운동’이 일어났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대량 매도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주식은 우리가 사 모으자”며 결집한 개인들의 분위기를 동학운동에 빗댄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주식을 사들이는 개인을 서학개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와 현재의 차이는 국내 주식에는 투자하지 않고 미국 주식에만 투자하는 개인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신승환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2020~2021년 ‘1차 머니무브’ 때는 글로벌 유동성을 바탕으로 미국과 국내 거래대금 모두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2024년 ‘2차 머니무브’ 때는 미국 증시만 호황을 누렸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국내 주식에 투자하던 자금이 해외 주식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이 ‘국장’(한국 주식 시장)에 등을 돌린 채 ‘미장’(미국 주식 시장)에 열중하는 이유는 수익률 격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스피지수는 연중 9.63% 하락했지만 미국 S&P500지수는 29.79% 상승했다. 두산그룹 구조 개편, 고려아연 유상증자 등의 사례에서 보듯 최대주주가 지배력를 확대하기 위해 소액주주의 이익을 훼손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은 점도 ‘국장 탈출’을 부채질한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서학개미가 많이 보유한 주식 순위를 보면 테슬라,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상위권에 올라 있다. “한국 증시 투자 매력도 높여야”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연일 최고점을 경신하고 있는 미국 증시에 대한 국내 증시 전문가들의 전망은 분분하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기치 아래 쏠림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 다만 인공지능(AI)의 생산성과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이 피어나며 역사적 고평가 구간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미국 증시의 상승 랠리가 꺾이는 것과 관계없이 미국으로의 쏠림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며 “국내 투자자를 상대로 한국 시장 자체의 매력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