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조류 비행의 기원
새가 공룡의 후예라는 사실은 과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초기 깃털 공룡이 날갯짓과 독특한 이동 방식으로 비행 진화의 중간 단계를 거쳤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특히 한국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은 조류 비행의 기원을 밝히는 핵심 단서로 주목받고 있다.
새와 공룡의 관계를 밝히는 연구는 오랜 시간 학계의 주요 관심사였다. 특히 수각류(Theropoda)에 속하는 깃털 공룡 중 일부가 깃털을 점진적으로 진화시켜 현대 조류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생물학자들은 여러 화석 증거와 생물학적 특징을 바탕으로 새와 깃털 공룡의 밀접한 연관성을 입증해왔다.초기 깃털 공룡들은 새처럼 완전한 비행을 하지는 못했다. 한 예로 시노사우롭테릭스(Sinosauropteryx)는 깃털이 있었지만 비행하는 데 쓰이진 않았다. 이때 깃털은 보온이나 위장 등의 목적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카우딥테릭스(Caudipteryx)는 날개 형태의 짧고 넓은 깃털이 있었는데, 이 깃털이 비행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카우딥테릭스의 날개는 몸의 균형을 잡거나 구애, 위장 등의 목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나랍토르(Pennaraptor)의 경우 깃축과 빳빳한 깃털이 있었지만, 실제로 날 수는 없었다.
이 외에 깃털 공룡 화석이 다수 발견됐으나, 대부분 현대 조류처럼 깃털을 나는 용도로 이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됐다.
최근 일부 깃털 공룡이 비행과 유사한 움직임을 통해 하늘을 나는 형태로 진화해나갔을 거라는 연구가 나왔다. 지난 9월 국제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연구에서 마이크로랩터와 같은 초기 소형 공룡이 ‘플랩 러닝(flap-running)’을 통해 양력을 얻어 효율적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플랩 러닝은 새들이 날개를 완전히 펼쳐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반쯤 접은 상태로 상하로 펄럭이며 뛰는 방식이다. 주로 큰 새들이 높은 장소에서 이륙하거나 오르막을 오를 때 사용한다. 칠면조, 황조롱이 같은 조류는 플랩 러닝으로 언덕을 오르거나 바위 위로 뛰어오른다.
특히 한국 경남 진주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이 이러한 진화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1998년에 진주에서 발견된 이 화석에는 백악기 시대 도요물떼새 발자국 2500개, 공룡 발자국 80개, 익룡 발자국 20개 등이 포함돼 있어 세계적 공룡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아왔다.
연구팀은 화석에서 발자국 길이에 비해 유독 간격이 넓은 보행 패턴에 주목했다. 발자국의 길이는 평균 약 10.5mm였는데, 보폭은 약 556.3mm였다. 이는 보폭이 발자국 길이의 약 53배에 달하는 수치로, 기존에 발견된 공룡 보행 패턴과 비교해 매우 이례적이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미크로랍토르의 이동속도를 계산했다. 그 결과, 초속 약 10.5m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속 37.8km로, 늑대나 하이에나의 사냥 속도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2638개의 육식 공룡 보행 속도 중 가장 빨랐다.
연구팀은 미크로랍토르가 뒷다리만으로 보행해 이 속도를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미크로랍토르가 날갯짓을 통해 양력을 얻고, 플랩 러닝을 통해 이동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공룡이 완전한 비행 능력을 갖추기 이전에 나타난 진화적 행동으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이를 조류 비행의 기원을 보여주는 최초의 보행 사례로 분석했다.
한편 플랩 러닝이 효율성을 높이는 날기 방식이라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전력 비행보다 체력 소모가 적기 때문이다. 2011년 <실험생물학>에 발표된 연구는 비행 능력 진화 과정에서 에너지 절약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줬다. 새들이 경사면을 오를 때 날개를 반쯤 펼쳐 상하로 펄럭이며 이동하는 플랩 러닝을 사용할 경우, 전력 비행에 비해 약 50%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었다. 2013년 <플로스원>에 실린 연구는 어린 새들이 성체가 되기 전부터 플랩 러닝을 통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을 익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어린 새들이 부족한 체력에도 이러한 방식으로 이동하며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진화적으로 습득된 생존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연구팀은 발자국 표면에 남은 미세한 디테일을 근거로 이러한 발자국이 연속적 이동의 결과임을 강조했다. 또한 조류의 비행 진화가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 이뤄졌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미크로랍토르와 같은 깃털 공룡이 비행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재확인했으며, 조류 비행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기억해주세요 초기 깃털 공룡들은 깃털을 보온이나 위장 등 비(非)비행 용도로 사용했으며, 완전한 비행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미크로랍토르 같은 깃털 공룡이 ‘플랩 러닝’을 통해 양력을 얻어 이동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연구는 깃털 공룡이 조류 비행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확인했으며, 비행 진화가 단일 사건이 아니라 점진적인 단계를 거쳤음을 보여준다.
조혜인 과학칼럼니스트·前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