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바퀴의 진화
음식점 입구 앞 문턱, 지하철 역사 계단, 인도 위의 돌.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모습이지만,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에겐 에베레스트산만큼이나 큰 난관이다. 이럴 때 휠체어 바퀴가 계단을 오르고, 돌을 딛고 넘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머지않은 미래에는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애물의 모양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바퀴가 개발됐기 때문이다.

힘차게 구르던 휠체어가 계단 모형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선다. 다시 천천히 움직이던 휠체어는 계단에 닿는 순간 모양을 바꾸기 시작한다. 마치 계단의 모양을 읽어낸 듯 바퀴와 계단이 닿는 면이 완벽하게 밀착된다. 덕분에 휠체어는 계단을 넘는 데 성공한다.

이 휠체어는 한국기계연구원 AI로봇연구소 연구팀이 새롭게 개발한 바퀴를 장착했다. 이 바퀴의 핵심은 도로를 달릴 때는 단단하고 동그란 모양의 바퀴로 작동하다가, 장애물을 넘을 때는 말랑해지며 장애물의 모양에 따라 바퀴 모양도 바꾼다는 것이다.

로봇 전문 학술지  표지에 실린 모양 바뀌는 바퀴. /출처=기계연구원
로봇 전문 학술지 표지에 실린 모양 바뀌는 바퀴. /출처=기계연구원
과학자들은 그동안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바퀴를 개발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모았다. 대표적 바퀴가 ‘비공기압 타이어’다. 비공기압 타이어는 이름 그대로 공기가 없는 타이어다. 그 대신 바퀴 안쪽에 벌집 모양으로 생긴 고무 기둥으로 채워져 있다. 고무 기둥은 말랑말랑하기 때문에 장애물을 넘기에 수월하다. 장애물을 넘는 순간 고무 기둥과 함께 바퀴의 표면도 구부러지면서 장애물을 통과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특징은 한편으로 단점이기도 하다. 말랑한 만큼 바퀴가 바닥과 닿는 면이 넓어져 마찰력이 커지면서 빨리 구르는 데 한계를 지닌다. 회전할 땐 중심을 잃기도 쉽다. 회전운동의 중심인 회전축이 단단하게 버티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기계연구원 연구진은 바퀴가 장애물을 잘 넘기 위해선 바퀴 면의 모양이 바뀌기 수월하면서도, 잘 구를 수 있도록 원 모양을 단단하게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물방울의 표면장력 현상을 기술에 접목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표면장력은 액체의 표면에 있는 물 분자들이 서로 당기는 힘이다. 물이 꽉 찬 컵 위로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넘치지 않고 물 표면이 점점 공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는데, 이는 바로 표면장력 때문이다. 표면장력이 커질수록 동그란 모양을 잘 유지하는데, 이 원리가 연구진의 아이디어에 적합하다고 본 것이다.

연구진은 우선 작은 크기의 블록을 여러 개 준비했다. 블록과 블록 사이에 고리를 걸어 연결하는 방식으로 체인을 만들었다. 이 체인을 바퀴의 표면에 사용하면 바퀴의 표면이 쉽게 구부러질 수 있다. 블록과 블록 사이의 간격이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에 ‘스마트 체인 블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블록 양쪽 끝에 실을 달고, 그 실의 반대쪽 끝을 바퀴의 한가운데 휠 허브에 걸었다. 휠 허브는 두 개의 고리가 겹친 모양이다. 휠 허브의 간격이 좁아지면 연결된 실이 느슨해진다. 표면장력이 약해진 상태다. 반대로 표면장력을 크게 하기 위해선 휠 허브의 간격이 떨어지면 되는데, 실이 팽팽해진다. 그 결과 스마트 체인이 단단하고 동그란 바퀴 모양을 유지할 수 있다.

연구진은 바퀴가 표면장력이 클 때(실이 단단할 때) 시속 30km, 표면장력이 약할 때(변형이 가능할 때)는 시속 10km까지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현재는 휠체어 같은 2휠 모빌리티에 맞게 연구·개발했는데, 앞으로 승용차나 버스 등 4휠 모빌리티에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과학자의 상상력이 실제로 구현된 바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의 타이어 회사에서 개발한 ‘이글 360’은 공 모양의 바퀴다. 이글 360은 제자리에 선 채로, 앞뒤 양옆은 물론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다. 만약 이 바퀴를 자동차에 적용하면 좁은 골목에서 평행 주차할 때 훨씬 수월하다. 차를 여러 번 움직이지 않고 바퀴의 움직임을 90도 방향으로 바꾸면 한 번에 주차를 완료할 수 있다.

방향 전환이 간편한 공 모양의 바퀴 ‘이글 360’의 모습 /출처=굿이어
방향 전환이 간편한 공 모양의 바퀴 ‘이글 360’의 모습 /출처=굿이어
프로펠러로 변신하는 바퀴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모르테자 가리브 교수팀이 만든 ‘M4’가 주인공이다. 땅에서는 4개의 비공기압 바퀴가 일반 차처럼 구른다. 그러다 하늘 위로 오르려는 순간, 바퀴 네 개가 90도 방향으로 접힌다. 그럼 바퀴 안에 있던 프로펠러가 작동하고, 이 힘으로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다. 바퀴 네 개의 각도와 높이 등을 자유자재로 변형하며 두 바퀴로 서거나 기어가듯 움직이고, 장애물 높이에 따라 웅크리는 등 여덟 가지 동작을 해낼 수 있다.

프로펠러로 변신이 가능한 바퀴 M4의 모습. /출처=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프로펠러로 변신이 가능한 바퀴 M4의 모습. /출처=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M4를 개발한 연구진은 동물들의 모습에서 이 아이디어를 찾았다. 동물들은 다리를 여러 방식으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바다사자는 지느러미로 바닷속에서 헤엄치는데, 육지로 나오면 지느러미로 걸을 수 있다. 새들의 날개는 발로 절벽을 오를 때는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자연 속에서 힌트를 얻곤 한다.√ 기억해주세요
[과학과 놀자] 표면장력 원리로 계단 오르고…프로펠러 휠도
한국기계연구원 연구진은 바퀴가 장애물을 잘 넘기 위해선 바퀴 면의 모양이 바뀌기 수월하면서도, 잘 구를 수 있도록 원 모양을 단단하게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물방울의 표면장력 현상을 기술에 접목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