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전기차 화재, 진압 어려운 이유는?
최근 전기차 보급이 증가하면서 화재 사고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8월 청라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등 잇따른 피해에 안정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열 폭주 과정. 배터리가 정상 상태에서 여러 원인으로 비정상 상태가 되며 내부 온도가 상승한다(1단계). 이에 따라 분리막이 녹고 배터리 요소들이 분해되면서 각종 부반응으로 산소와 같은 가스가 방출돼 발열반응이 일어난다(2단계). 가연성 전해질이 연소해 화재 및 폭발로 이어진다(3단계).    출처=Science Advances
전기차 배터리 열 폭주 과정. 배터리가 정상 상태에서 여러 원인으로 비정상 상태가 되며 내부 온도가 상승한다(1단계). 이에 따라 분리막이 녹고 배터리 요소들이 분해되면서 각종 부반응으로 산소와 같은 가스가 방출돼 발열반응이 일어난다(2단계). 가연성 전해질이 연소해 화재 및 폭발로 이어진다(3단계). 출처=Science Advances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화재가 더 잘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내연기관차와 달리 화재 발생 시 진압이 어렵다는 것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화재 진압에 8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소요 인력도 2.5배나 더 필요하다. 또 화재 진압 시 사용되는 물의 양도 내연기관차는 1톤인 데 비해, 전기차는 110톤이나 든다.

그 이유는 전기차의 리튬이온 배터리에 있다. 리튬이온이 양극에서 음극으로 이동하면 충전되고, 반대로 음극에서 양극으로 이동하면 전기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제조 과정상 결함, 과충전이나 과방전, 외부 충격 등으로 배터리 내부 온도가 상승하면 분리막이 손상되며 화재가 일어날 수 있다. 원래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의 접촉을 차단하고 리튬이온만 통과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과 음극이 직접 만나 다량의 리튬이온이 한꺼번에 이동하며 격렬한 반응이 일어나는 쇼트 현상이 발생한다. 이때 양극재로 금속산화물이 사용되는데, 열에 의해 양극재가 분해되면 금속산화물의 부반응으로 산소 기체가 발생해 발열을 더 가속한다. 이온의 이동을 돕는 전해액 또한 기화되면서 가연성물질이 나오고, 순식간에 1000℃ 이상으로 온도가 상승한다. 이렇게 배터리 내부의 온도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 폭발하는 것을 ‘열 폭주 현상’이라고 한다. 바로 이 열 폭주 현상 때문에 전기차는 불이 났을 때 진압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전기차에 들어가 있는 배터리는 수백 개의 배터리 셀이 합쳐진 배터리 팩이다. 양극, 음극, 분리막, 전해액으로 이뤄진 배터리의 기본 단위를 ‘셀’이라 하는데, 40~50개의 배터리 셀을 묶어 모듈을 만들고, 이 모듈을 다시 10~40개씩 모아 만든 것이 배터리 팩이다. 그렇기에 하나의 셀이 폭발하면 다른 인접한 셀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연쇄적 폭발이 일어난다.

또 내연기관차는 불이 위로 향하지만, 전기차는 배터리 팩 내부의 압력과 가연성가스 때문에 수평 형태로 화염이 번진다. 이 때문에 주변에 차량이 있다면, 불이 옮겨붙는 속도가 빨라 대형 화재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전기차 화재를 진압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배터리가 차량 하단부에 있고, 충격 방지 등을 위해 밀봉돼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소화기를 사용해도 효과가 크지 않다. 그래서 전기차 화재를 진압할 때는 덮개를 덮어 산소를 차단하는 질식소화 덮개 방법이나 이동식 수조에 물을 채워 사고 차량을 담그는 방법 등을 사용한다. 하지만 질식소화 덮개를 사용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동식 수조는 지하 주차장 같은 곳에는 투입하기 어렵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 회사들은 화재 위험을 줄인 배터리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분리막을 세라믹으로 코팅해 내구성을 높이거나, Z 형태의 분리막에 양극과 음극을 번갈아 쌓아 분리막이 손상돼도 양극과 음극이 직접 만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또 열 확산과 연쇄적 발화를 막기 위해 열 방출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가 근본적으로 충격에 약하고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해, 전고체배터리를 개발 중인 연구자도 있다. 전고체배터리는 액체 상태의 전해질을 고체로 바꾼 배터리다. 폭발 위험이 적고 에너지밀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온의 이동이 느려 성능이 떨어지고 가격이 비싸 아직 상용화는 쉽지 않다.

연이은 화재 사고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지만, 기후변화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전기차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

다만 안전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에, 이를 위한 기술적·제도적 노력이 시급한 상황이다. 인류가 안전하고 지속할 수 있는 전기차 시대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 기억해주세요
[과학과 놀자] '배터리 열 폭주' 땐 연쇄 폭발, 대형 화재 위험 커
제조 과정상 결함, 과충전이나 과방전, 외부 충격 등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내부 온도가 상승하면 분리막이 손상되며 화재가 일어날 수 있다. 양극과 음극이 직접 만나면 다량의 리튬이온이 한꺼번에 이동하며 격렬한 반응이 일어나는 쇼트 현상이 발생하고, 배터리 요소들 사이에 반응이 일어나면서 순식간에 1000℃ 이상으로 온도가 상승한다. 이렇게 배터리 내부의 온도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 폭발하는 것을 ‘열 폭주 현상’이라고 하며, 이 열 폭주 현상 때문에 전기차는 불이 났을 때 진압하기가 어렵다.

오혜진 과학칼럼니스트·前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