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논술주제- 합리성과 효율성·형평성
이번 호에서 다룰 논술 출제 주요 주제는 효율성과 형평성입니다. 우리의 자원은 무한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선택할 때 비용을 따져 더 나은 편익을 가져다줄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는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자원을 더 많은 이익을 산출하기 위해 쓸 것인가, 혹은 모두 고르게 나눠 갖는 방향으로 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자를 효율성, 후자를 형평성이라고 합니다.논술주제- 합리성과 효율성·형평성
예를 들어 하나의 공장에서 노동자 10명이 노동해 벌어들이는 공장의 총수익(자원)을 노동자들에게 분배한다고 해보겠습니다. 10명 중 가장 일을 열심히 잘한 사람에게 높은 소득을 차등 분배한다고 할 경우 집단의 성취 효율성은 높아질 것입니다. 일을 더 열심히 하면 더 많은 소득을 받을 수 있으니 모두가 더 많이 일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공장의 전체 수익이 늘어나면 모두가 간접적 이익을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방식을 취할 때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각자의 노동자는 부양가족이 있어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데, 일의 결과에 따라 너무 적은 소득을 받게 되어 제대로 생계를 영위하지 못할 수준이 된다면 어떨까요? 근심·걱정 때문에 혹은 ‘투잡’을 뛰느라 제대로 노동하지 못할 수도 있고, 노동의 동기를 근본적으로 상실하고 무력해질 가능성도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겠지요. 따라서 효율성과 형평성, 어느 쪽이 확실히 우월한 가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두 가치는 인간 사회에서 모두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어떤 가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각각의 개념과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형평성이라는 개념도 단순히 동등하게 분배하자는 가치는 아닙니다. 정의 관념의 핵심을 이루는 형평성(equity)은 통상 합당한 자신의 몫을 갖는 것 또는 모든 사람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준다는 ‘응보(應報)’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응보란 관련된 구성원에게 어떤 행위와 상황에 상응하는 보상이나 처벌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일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에게 동등한 보상을 하는 것이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과거 출제된 아래 지문을 보며 형평성과 효율성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 것인지 판단해봅시다.
[제시문 1] 아래 제시문은 효율성과 형평성 중 어느 쪽을 지지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과 견주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 듯하다. 고대 이래로 철학자와 사상가들은 경쟁이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해왔으며, ‘좋은 다툼’과 ‘나쁜 다툼’을 구별했다. 이러한 구별의 근거는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 ‘좋은 다툼’을 그리스어로 ‘아가토스 에리스(agathos eris)’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헤시오도스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남이 잘사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 일하고 싶은 의욕이 솟구치므로
부지런히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집을 짓는다.
이웃과 이웃이 부를 향해 함께 달린다. / 이러한 에리스는 인간에게 이롭다.
대장장이는 대장장이끼리, 미장이는 미장이끼리 겨루고
거지는 다른 거지를, 가수는 다른 가수를 시샘한다.
이 시에는 인간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인간은 대장장이끼리 또는 미장이끼리 벌이는 실력 경쟁을 좋아한다. 이러한 경쟁을 통해 대장장이는 다른 대장장이보다 더 훌륭한 가재도구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하고, 미장이는 다른 미장이보다 더 좋은 집을 지으려고 애쓴다.
[제시문 2] 아래 제시문은 효율성과 형평성 중 어느 쪽을 지지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경기장이 평평해야 한다”는 개념을 계속 들먹인다. 만일 개발도상국이 사용하는 보호주의 정책을 허용한다면 부자 나라는 평평하지 않은 경기장의 낮은 쪽에 높은 쪽을 향해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고생해야 하는데, 개발도상국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을 향해 내리달으면서 공격하는 축구팀이 되는 셈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동등한 자격으로 경쟁하게 하라.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근본적으로는 경쟁이 공정할 때만 시장이 주는 혜택을 수확할 수 있다. 이처럼 “경기장이 평평해야 한다”는 누가 들어도 지당한 개념을 들먹인다면 감히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이의를 제기한다.
이는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 선수들이 벌이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데 경기장이 평평하다면 결국 그 게임은 불공정한 것이 된다. 축구 경기를 하는 한편이 브라질 국가 대표팀이고, 상대편은 열한 살 먹은 내 딸의 친구들로 짜인 팀이라고 생각해보라.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이 아래쪽을 향해 내리달으며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할 것이다.
[제시문 3] 아래 제시문은 효율성과 형평성 중 어느 쪽을 지지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후변화협약의 핵심 쟁점은 온실가스 방출량을 삭감하기 위한 구속력 있는 목표의 설정 여부다. 이미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탄소 배출권거래 시장이 형성된 유럽연합은 강력한 규제를 원한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과 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여기에 반대한다. 개발도상국가가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자는 기후변화협약에 반대하며 선진국에 ‘기후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후변화는 지구 전체의 문제이지만, 그 원인인 탄소 배출은 사실상 몇 나라만의 문제다. 예를 들어, 미국이 혼자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상위 10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합치면 전체의 60%를 훌쩍 넘긴다. 인구를 고려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개발도상국은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지만, 탄소 방출량은 7%에 그친다. 선진국이 일찍이 개발하면서 내뿜은 온실가스는 고스란히 공기 속에 누적돼 있다. 이것이 바로 개발도상국가들이 ‘역사적 책임’을 묻는 이유다. 남아시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 전 세계 16억 명이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는 동안, 미국 플로리다의 에어컨 1대는 1년 동안 캄보디아 사람이 평생 내보내는 양의 탄소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답안
[제시문 1] 효율성을 지지합니다. 이 제시문은 인간의 본성에 경쟁이 있으며, 경쟁적 본성이 서로 더 나은 상태를 추구하도록 함으로써 사회 전체 영역의 발전을 일구고 모두가 그 수혜를 볼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회 전체의 이익이 효과적으로 커지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효율성의 사회적 가치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제시문 2] 형평성을 지지합니다. 이 제시문은 공정한 경쟁을 위한 역차별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평평한 경기장’은 오히려 기존의 격차로 인한 불공정을 심화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진정한 공정성을 위해서라면 약자를 위한 디딤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제시문 3] 형평성을 지지합니다. 기후협약의 구속성에 대해 말하는 이 지문에서는 역사적 책임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에 더 큰 역사적 책임을 지닌 선진국이 ‘응보’의 관점에서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며, 기존의 온실가스 배출을 통해 더 큰 발전을 이뤄온 선진국이 강력한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