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농산물 수입에 대한 검역을 강화해야 하느냐를 둘러싼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수입 농산물 검역을 통해 국내 농업을 보호하고,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해외에서 유입되는 병해충이나 질병들이 국내 농업과 생태계에 미칠 잠재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검역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반면 과도한 검역 강화가 소비자물가 상승을 초래하고, 국제적인 무역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수입 농산물의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자는 더 비싼 가격에 농산물을 구매해야 하고, 이는 가계 부담으로 이어진다. 또 주요 수입국과의 무역 갈등이 발생할 경우 한국의 수출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찬성]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한 기본 책무…농가 보호를 위해서도 필수검역 강화는 수입 농산물의 품질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절차다. 농약 사용, 유전자 변형, 방사능 오염 등의 문제가 있는 국가로부터 수입한 농산물이 충분한 검역 없이 유통될 경우 소비자 건강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더구나 수입 농산물에 포함될 수 있는 외래 해충이나 병원균은 한국의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과일나무의 에이즈’로 불리는 과수화상병이 대표적이다. 과수화상병은 미국에서 불법으로 국내에 반입된 사과 묘목을 통해 국내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2015년부터 한국의 사과·배 나무를 말라 죽게 하고 있다. 정부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손실보상금으로 연평균 247억원, 방제 작업에 연평균 365억원을 투입했지만, 병해충 피해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외국에서도 비슷한 피해가 빈발하는 상황이다. 미국 플로리다주와 멕시코 콜리마주는 지중해 과실파리 유입으로 지역 농작물이 큰 피해를 봤다.
이런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건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국제사회가 검역을 각국이 취할 수 있는 합법적 수입 규제 장치로 인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나라가 세계무역기구(WTO)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운영하며, 전 세계적으로 검역을 비관세장벽으로 활용하고 있다. WTO에 따르면 2016년 1392개이던 국제 위생·검역 조치는 2023년 2088개로 늘어났다.
국민 건강은 물론 국내 농업 보호 측면에서도 검역은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다. 수입 농산물이 국내 농산물보다 저렴할 경우 소비자는 수입 농산물을 선호하게 된다. 이로 인해 국내 농업인들이 생산한 제품은 가격경쟁에서 밀려난다.
이상기후 등의 여파로 국내 농산물 수급 불안이 지속되고 세계 각지에서 농산물 수입이 급증하는 상황인 만큼 검역 강화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검역을 통해 수입 농산물의 진입장벽을 높임으로써 국내 농업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 장바구니 물가 상승으로 소비자 부담…국제 무역마찰 가능성도 커져한국은 유독 검역 절차가 까다롭고 기간이 오래 걸리는 나라로 유명하다. 호주는 1989년, 일본은 1992년 한국에 사과 수출을 신청했는데 30년 넘게 절차가 진행 중이다. 2016년 사과를 1순위 수출 농산물로 신청한 독일도 8년이 지나도록 8단계 검역 절차 가운데 4단계에 머물러 있다. 검역 기준을 강화해 과도한 ‘비관세장벽’으로 활용한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검역 장벽을 통해 수입을 막으면 결국 국내 소비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 지난 설 명절 때 불거진 ‘금(金)사과 논란’처럼 국내 과일 가격이 급등하는데도 수입을 못 하니 소비자가 사과 소비를 줄이거나 품질 낮은 사과를 찾아야 한다. 이렇듯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 선택권마저 위협한다. 게다가 농산물 가격은 가정 내 소비지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수입 제한에 따른 농산물 가격 상승은 전체적인 생활 물가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검역을 강화하면 농산물 수출국들이 이를 비관세장벽으로 간주하고, 한국의 수출품에 대해 보복성 무역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3년 국별 무역장벽보고서’에서 한국의 동식물 위생검역 조치를 본격적으로 문제 삼기도 했다. 정부가 브라질·아르헨티나 등을 회원국으로 둔 세계 5대 경제블록 메르코수르와 2021년 9월까지 총 일곱 차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공식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결렬된 이유도 검역 문제였다. 한국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이런 협정에 따라 농산물 수입 제한은 무역협정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는 국제사회에서 법적 문제로 이어진다.
검역 강화로 수입 농산물이 줄어들면 일시적으로 국내 농산물 생산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제적인 가격 및 품질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있다. √ 생각하기 - 판단 기준은 국민 종합 후생…개방을 기회로 반전시키는 노력 필요농산물 수입 검역 강화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은 농업 보호, 소비자 안전성, 경제적 영향, 소비자 선택권 등 여러 측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 종합적인 판단 기준은 국민 후생이다. 한국이 유독 사과와 배 수입을 막은 이면에는 농가를 보호하겠다는 정책 의지가 깔려 있다. 한국 사과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을 기록한 것은 그 결과다. 이는 밥상 물가 상승을 부추겨 소비자 부담을 키울 뿐 아니라 ‘사과와 배를 수입하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우리 무역에 타격을 주는 수준에 이르렀다. 검역을 비관세장벽으로 활용하는 데 따른 소비자 후생 감소가 농산물 생산자 이익보다 작다고 보기 어렵게 됐다. 이제 국내 작황에만 수급과 가격을 맡기기보다 일정 정도 검역 장벽을 낮춰 수입을 신축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다. 시장을 개방하면 오히려 우리 농산물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개방을 기회로 반전시킨 포도와 한우가 대표적이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
반면 과도한 검역 강화가 소비자물가 상승을 초래하고, 국제적인 무역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수입 농산물의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자는 더 비싼 가격에 농산물을 구매해야 하고, 이는 가계 부담으로 이어진다. 또 주요 수입국과의 무역 갈등이 발생할 경우 한국의 수출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찬성]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한 기본 책무…농가 보호를 위해서도 필수검역 강화는 수입 농산물의 품질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절차다. 농약 사용, 유전자 변형, 방사능 오염 등의 문제가 있는 국가로부터 수입한 농산물이 충분한 검역 없이 유통될 경우 소비자 건강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더구나 수입 농산물에 포함될 수 있는 외래 해충이나 병원균은 한국의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과일나무의 에이즈’로 불리는 과수화상병이 대표적이다. 과수화상병은 미국에서 불법으로 국내에 반입된 사과 묘목을 통해 국내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2015년부터 한국의 사과·배 나무를 말라 죽게 하고 있다. 정부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손실보상금으로 연평균 247억원, 방제 작업에 연평균 365억원을 투입했지만, 병해충 피해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외국에서도 비슷한 피해가 빈발하는 상황이다. 미국 플로리다주와 멕시코 콜리마주는 지중해 과실파리 유입으로 지역 농작물이 큰 피해를 봤다.
이런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건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국제사회가 검역을 각국이 취할 수 있는 합법적 수입 규제 장치로 인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나라가 세계무역기구(WTO)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운영하며, 전 세계적으로 검역을 비관세장벽으로 활용하고 있다. WTO에 따르면 2016년 1392개이던 국제 위생·검역 조치는 2023년 2088개로 늘어났다.
국민 건강은 물론 국내 농업 보호 측면에서도 검역은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다. 수입 농산물이 국내 농산물보다 저렴할 경우 소비자는 수입 농산물을 선호하게 된다. 이로 인해 국내 농업인들이 생산한 제품은 가격경쟁에서 밀려난다.
이상기후 등의 여파로 국내 농산물 수급 불안이 지속되고 세계 각지에서 농산물 수입이 급증하는 상황인 만큼 검역 강화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검역을 통해 수입 농산물의 진입장벽을 높임으로써 국내 농업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 장바구니 물가 상승으로 소비자 부담…국제 무역마찰 가능성도 커져한국은 유독 검역 절차가 까다롭고 기간이 오래 걸리는 나라로 유명하다. 호주는 1989년, 일본은 1992년 한국에 사과 수출을 신청했는데 30년 넘게 절차가 진행 중이다. 2016년 사과를 1순위 수출 농산물로 신청한 독일도 8년이 지나도록 8단계 검역 절차 가운데 4단계에 머물러 있다. 검역 기준을 강화해 과도한 ‘비관세장벽’으로 활용한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검역 장벽을 통해 수입을 막으면 결국 국내 소비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 지난 설 명절 때 불거진 ‘금(金)사과 논란’처럼 국내 과일 가격이 급등하는데도 수입을 못 하니 소비자가 사과 소비를 줄이거나 품질 낮은 사과를 찾아야 한다. 이렇듯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 선택권마저 위협한다. 게다가 농산물 가격은 가정 내 소비지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수입 제한에 따른 농산물 가격 상승은 전체적인 생활 물가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검역을 강화하면 농산물 수출국들이 이를 비관세장벽으로 간주하고, 한국의 수출품에 대해 보복성 무역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3년 국별 무역장벽보고서’에서 한국의 동식물 위생검역 조치를 본격적으로 문제 삼기도 했다. 정부가 브라질·아르헨티나 등을 회원국으로 둔 세계 5대 경제블록 메르코수르와 2021년 9월까지 총 일곱 차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공식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결렬된 이유도 검역 문제였다. 한국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이런 협정에 따라 농산물 수입 제한은 무역협정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는 국제사회에서 법적 문제로 이어진다.
검역 강화로 수입 농산물이 줄어들면 일시적으로 국내 농산물 생산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제적인 가격 및 품질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있다. √ 생각하기 - 판단 기준은 국민 종합 후생…개방을 기회로 반전시키는 노력 필요농산물 수입 검역 강화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은 농업 보호, 소비자 안전성, 경제적 영향, 소비자 선택권 등 여러 측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 종합적인 판단 기준은 국민 후생이다. 한국이 유독 사과와 배 수입을 막은 이면에는 농가를 보호하겠다는 정책 의지가 깔려 있다. 한국 사과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을 기록한 것은 그 결과다. 이는 밥상 물가 상승을 부추겨 소비자 부담을 키울 뿐 아니라 ‘사과와 배를 수입하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우리 무역에 타격을 주는 수준에 이르렀다. 검역을 비관세장벽으로 활용하는 데 따른 소비자 후생 감소가 농산물 생산자 이익보다 작다고 보기 어렵게 됐다. 이제 국내 작황에만 수급과 가격을 맡기기보다 일정 정도 검역 장벽을 낮춰 수입을 신축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다. 시장을 개방하면 오히려 우리 농산물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개방을 기회로 반전시킨 포도와 한우가 대표적이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