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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이 지난 4일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눈치보기만 했던 이전 정부에 비해 진일보한 안이란 평가가 많은 반면, 야당은 21대 국회의 여야 합의안보다 퇴보했다며 바로 반대 의사를 밝혔죠. 국민연금 개혁의 최종 관문은 국회입니다. 정부가 어렵사리 제시한 안이 정치적 타협으로 희석될 수 있고, 연금 급여 수준(소득대체율, 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의 비율)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다가 논의 자체가 실종되는 21대 국회의 전철을 밟을까 걱정됩니다.

국민연금의 개혁은 이미 한발 늦었습니다. 1988년 제도를 도입한 이래 단 두 번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기초연금으로 보완한 것 외에 제대로 된 구조개혁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저출산·고령화로 보험료 낼 사람은 줄고 연금을 타려는 사람의 줄은 길어지고 있습니다. 2060년엔 국민연금 수급자 1569만 명, 가입자 1251만 명으로 수급자 수가 더 많아집니다. 지금 연금 재정의 추이를 계산해도 2056년엔 기금이 바닥납니다. 그때 우리 생글생글 독자들의 나이는 30대 후반. 그동안은 보험료에 운용수익이 더해졌지만, 이때부터는 여러분이 내는 보험료를 바로 연금 급여로 지급해야 해 수익을 불릴 수도 없습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경제적 부담을 우리 생글이들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연금 개혁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초적 이해를 위해 국민연금의 구조와 특징, 재정난의 원인을 살펴보고, 왜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정부안의 내용은 어떠한지 등을 4·5면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낸 돈보다 훨씬 더 받게' 설계된 국민연금
저출산·고령화로 32년 뒤면 바닥 드러나
한경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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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활동을 마치고 난 뒤, 20년 이상 이어지는 노후에 대비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는 제도가 공적연금 제도입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노후를 위해 열심히 저축하기는 사실 쉽지 않죠. 그래서 국가가 나서 개인에게 ‘강제저축’을 들게 하는 겁니다. 19세기 말 독일에서 시작된 공적연금 제도는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에 이어 1975년 사학연금을 도입했습니다. 일반 국민을 위한 국민연금은 1988년부터 시행됐습니다.

소득재분배 고려한 국민연금

국민연금은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됩니다. 직장·지역 가입자는 물론 임의 가입자(의무 가입자 아닌 경우)도 보험료율(소득 대비 납부 보험료의 비율)은 모두 월 소득의 9%로 똑같습니다. 다만, 직장 가입자는 본인이 절반, 직장이 절반씩 부담하죠. 기본적으로 10년 이상 보험료를 내고 60세를 넘기면 연금을 타는 방식입니다. 연금 수령 시기는 2013년은 61세, 이후 5년마다 1년씩 늦춰져 2033년엔 65세가 됩니다.

국민연금은 기타 공적연금과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공무원연금 등은 봉급 수준에 비례해 연금 수령액이 정해지지만, 국민연금은 자신의 소득에 반비례해 연금액이 지급됩니다. 소득이 높으면 상대적으로 적은 연금, 소득이 낮으면 상대적으로 많은 연금액을 받는 겁니다. 취약계층을 두텁게 보호하려는 사회정책적 목적에서 소득재분배까지 고려한 결과입니다.

국민연금 보완책, 기초연금

전 국민 연금 시대에도 노인 빈곤 문제는 여전합니다. 상당수 노령층은 짧은 국민연금 제도의 역사로 인해 국민연금에 가입할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0.4%(OECD 평균 14.2%, 2020년 기준)로 가장 높은 수준이죠. 이런 문제를 완화하고자 정부는 2007년부터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에게 월 일정액(2007년 당시엔 월 9만7100원)을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했습니다. 2014년엔 기초노령연금을 확대·개편해 연금액을 2배가량 늘린 기초연금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이게 지금은 월 최대 33만여원으로 늘어났습니다.

2060년에 수급자가 가입자 추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연금기금의 재정 상황은 악화돼갔습니다. 애초에 보험료는 낮으면서 급여 수준은 후한 저부담·고급여 구조로 설계된 게 문제였죠. 1988년 시행 당시 소득대체율(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의 비율) 70%에 보험료율은 3%에 불과해 지속가능한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두 차례 소득대체율을 내렸지만,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보험료율에 비해 아직도 많이 높습니다. 경제협력기구(OECD)의 분석 기준에 따르면 회원국에선 평균적으로 소득의 18.2%를 연금보험료로 내고 51.8%(2.84배)를 받아가는 데 반해, 우리 국민연금은 9%를 내고 31.2%(3.46배)가량을 돌려받습니다. 상대적으로 낸 돈보다 훨씬 더 받아가는 건데요, 이 비율이 베이비붐 마지막 세대인 1963년생은 7.7배, 1980년생은 3.8배에 이릅니다.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저출산·고령화도 문제입니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연금 수급자보다 가입자가 절대적으로 많았고, 인구구조상 가입자가 더 큰 폭으로 증가해왔기 때문에 총자산 1036조원의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입자 대비 수급자 수가 늘어나면서 가입자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연금 재정 고갈 우려도 증대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수급자 수는 2021년 607만 명이던 게 지난해 682만 명으로 크게 늘었고, 수급자 대비 가입자 비율은 같은 기간 27.1%에서 30.5%로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에서도 수급자 대비 가입자 비율은 2060년 125.4%로 역전되고, 2080년 143.1%로 최고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국민연금의 재정 고갈 시기도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정부는 2056년을 기금 소진 시점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NIE 포인트1. 부모님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예상 연금 수령액을 알아보자.

2.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재정이 악화한 원인을 다시 정리해보자.

3. 현재의 국민연금 적립금 규모와 재정수지 상황을 파악해보자.연금 개혁 논의, 방치 더는 안 돼
세대 간 상생방안 찾아 제도 살려야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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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제도가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는데도 이전 정부들은 개혁에 소극적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추진해온 연금 개혁은 보험료율 변화 없이 소득대체율 인하, 수급 개시 연령 상향 등 급여 수준을 낮추는 방향으로만 진행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정부 때인 1998년(1차 개혁)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내렸고, 수급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높였습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는 소득대체율을 다시 40%로 내렸죠. 문재인 정부 때는 보건복지부의 개혁안 보고에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며 반려해 논의 자체가 올스톱됐습니다.

개혁 더 미룰 수 없는 이유

그러는 사이 국민연금 재정은 계속 악화됐습니다. 지난해에 나온 국민연금 재정추계(제5차)를 보면 매년 지급하는 금액만큼 적립금으로 보유하는 적립배율 1배를 목표로 할 경우, 2025년 연금의 보험료율을 17.86%까지 올려야 합니다. 재정 정상화를 위해 보험료율을 지금(9%)의 2배가량 인상해야 한다는 거죠. 연금 개혁이 늦어지면서 5년 전 제4차 추계 때보다 필요 보험료율이 약 1.66~1.84%포인트 증가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개혁을 미룰수록 미래세대가 부담할 보험료율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금이 고갈되면 국민연금은 적립식에서 매년 걷어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만약 연금 개혁 없이 지금처럼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려면 미래세대의 보험료율은 30~40%까지 인상해야 합니다. 이 경우 현재 연금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 장년 세대는 내는 돈의 2배 가까운 연금을 받는 데 반해, 미래세대는 50%밖에 돌려받지 못합니다. 생글 독자인 청소년들이 이런 미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연금을 한 푼도 못 받게 될 거라는 젊은이들의 불안과 불신도 커집니다. 국민경제 전체로도 폐해가 예상됩니다. 연금이 소진된 이후의 연금 급여 부족액은 매년 31조8000억원에 이를 전망입니다. 이 부족액을 보험료율 인상으로 메꾸지 못하면 정부 예산으로 막아야 합니다. 그만큼 미래세대는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겁니다.

세대 간 형평성 고민한 정부

적어도 70년은 고갈 없이 갈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연금 개혁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21대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올 초 내놓은 개혁안은 지난해 재정추계위원회가 제시한 안보다 후퇴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다시 나섰고, 이번 개혁안을 발표하기에 이른 겁니다. 일단 반응은 17년 만에 제대로 된 개혁안이란 얘기가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2%로 높이기로 했습니다. 한마디로 ‘더 내고 더 받는 안’입니다. 세대 간 형평을 위해 보험료율을 인상할 때도 40~50대는 빨리 올리고, 젊은 세대는 천천히 올리게 하는 등 차등화하자고 합니다.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법률에 명문화하겠다고도 했습니다. 또 재정과 인구 여건에 따라 연금액을 자동으로 조정(연금 상승폭 조절)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죠. 그렇게 해서 연금 고갈 시점을 현재 2056년에서 2088년으로 최대 32년 늦출 수 있다고 합니다.

연금 개혁 숙제 ‘산더미’

현재 국민연금 평균 수급액은 월 63만원에 불과합니다. 야당이 ‘용돈 수준’이라고 표현한 근거입니다. 하지만 제도를 유지하면서 소득대체율을 높이려면 보험료율도 2배 이상 높여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에 합의했다고 해서 정부를 압박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의 개혁안만으로도 국민연금을 지속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낸 돈보다 많이 돌려받기로 예상되었던 장년층 세대의 희생과 앞으로 연금 부실 부담을 크게 짊어질 젊은 세대의 부담 경감을 위해 정부와 여야는 현실을 직시하고 균형 잡힌 개혁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앞으로 국민연금의 운용 수익률을 어떻게 더 높여서 국민 부담을 줄일지 좀 더 진전된 고민을 해야 할 때죠. 정부가 국민연금 의무가입 나이를 높이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정년 연장 논의도 불가피합니다.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입니다. NIE 포인트1. 국민연금 실제 수령액이 ‘용돈 수준’인 이유를 파악해보자.

2. 지금도 국민연금 개혁이 늦었다는 주장의 근거를 알아보자.

3. 연금 운용방식으로 적립식과 부과식의 차이에 대해 공부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