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논술주제 - 환경과 생태의 문제(1)
환경 및 자연과 관련한 문제는 논술 문제의 주요 쟁점 중 하나입니다. 이 문제는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교과서로 따지자면 <통합사회> 및 <생활과 윤리>의 자연윤리에 해당합니다. 동양사상은 전통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고 보며 자연을 중시했기 때문에 환경 및 생태 문제의 원인적 관점이나 쟁점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적습니다. 그에 비해 인간 중심적 근대주의의 사상이 발달했던 서양사상이 환경문제의 제시문으로 주로 출제되죠. 인간중심주의는 인간만이 도덕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간주합니다. 따라서 인간에게만 본래적 가치를 인정하고, 자연을 순전히 인간의 이익이나 필요에 따라 평가하려 합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과 구별되는 우월한 존재로, 자신의 이익과 행복 증진 등을 위해 자연을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논술주제 - 환경과 생태의 문제(1)
반면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들이 존재합니다. 자연을 오직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도구적 자연관이 모든 환경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탈인간중심주의는 동물을 도덕적 고려 대상의 범주로 넣는 동물중심주의부터 생명과 생태의 범위로 존중 대상을 확대한 생명중심주의, 생태중심주의까지 다양한 위계로 발전합니다. 이 중에서도 생태중심주의는 인간중심주의의 극단에 서 있는 입장으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유용성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관점입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우월한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의 한 구성원이며, 자연 안의 모든 생명은 평등한 가치와 권리를 지닙니다. 따라서 인간뿐 아니라 동물, 식물, 그리고 무생물을 포함한 생태계 전체를 도덕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연의 가치는 인간에게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생태계의 모든 것이 존재 이유가 있으므로 자연 그 자체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구분에 따른다면 아래의 관점들은 인간중심주의와 탈인간중심주의 중 어디에 속하는지 맞춰봅시다. 자주 출제되는 지문들을 뽑아왔어요. 지문을 읽으며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더 명확히 이해해보세요.
[예시1]
자연은 비록 무생물이지만 아름답다는 것을 고려할 때, 자연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자 하는 성향은 인간의 자신에 대한 의무를 거스르는 것이다. 감정은 도덕 자체는 아닐지라도 도덕성을 매우 증진하며, 적어도 도덕성에 대한 길을 예비하는 감성의 기분이라 할 수 있는데, 자연을 파괴하고자 하는 성향은 그러한 감정을 약화시키거나 제거하기 때문이다. 감수성의 성향이란 심지어 사용 가치에 대한 어떤 이익 관심과도 무관할지라도 아름다운 수정의 형상, 묘사하기 어려운 식물의 아름다움과 같은 어떤 것을 사랑하는 성향을 말한다. 동물은 비록 이성이 없을지라도 살아 있는 피조물임을 고려할 때, 동물을 폭력적으로 잔인하게 다루는 것은 인간 자신에 대한 의무를 훨씬 심각하게 거스르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러한 것을 삼가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인간의 고통이라는 공유된 감정을 무디게 하며, 사람 간 관계의 도덕성에 참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자연적인 소질을 약화시키고 점차 그 소질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예시2]
‘환경’은 ‘중심’을 전제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그 중심은 바로 우리, 즉 인간이다. 지구에서 몇 십만 광년쯤 떨어진 어느 별에 지구와 유사한 동식물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별의 자연은 그 자체로 어떤 고유한 가치를 지닐 수 있겠지만, 그 자연은 우리의 ‘환경’이 아니다. 그 별이 맑은 대기와 맑은 물을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의 삶과는 사실상 아무 관련이 없다. 지구의 자연이 소중한 까닭은 그것이 우리, 즉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그것을 둘러싼 환경을 변형시킨다.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생명은 생명 활동을 통해 그것의 환경을 변화시킨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환경을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자체를 악이라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뒤집어 말하면, 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선이라고 볼 까닭도 없다. 자연이 우리에게 가치를 지니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지 그 자체로서 소중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무조건적인 ‘자연보호’는 한낱 낭만적 구호일 뿐이다.
[예시3]
“너는 진실로 사람이로구나. 오륜(五倫)과 오사(五事)는 사람의 예의이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서로 불러 먹이는 것은 금수의 예의이며, 떨기로 나서 무성한 것은 초목의 예의이다. 사람으로서 만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만물이 천하지만 만물로서 사람을 보면 만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하다. 하늘이 보면 사람이나 만물이 마찬가지이다. 대저 만물은 지혜가 없는 까닭에 속임이 없고, 깨달음이 없는 까닭에 거짓도 없다. 그렇다면 만물이 사람보다 훨씬 귀하다. (중략) 옛사람이 백성에게 혜택을 입히고 세상을 다스릴 때, 만물에 도움받지 않은 것이 없었다. 군신(君臣) 간 의리는 벌에게서, 병진(兵陣)의 법은 개미에게서, 예절의 제도는 박쥐에게서, 그물 치는 법은 거미에게서 각각 취해온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성인(聖人)은 만물(萬物)을 스승으로 삼는다’ 하였다. 그런데 너는 어찌해서 하늘의 입장에서 만물을 보지 않고 오히려 사람의 입장에서 만물을 보느냐?”
예시1은 인간중심주의로 분류됩니다. 이 제시문은 온건한 인간중심주의자인 칸트의 견해입니다. 칸트는 동물실험을 중단해야 하는 본질적 이유를 인간 스스로의 덕목에서 찾고 있습니다. 예시2 또한 인간중심주의로 분류됩니다. 이 제시문은 환경주의자들이 환경의 의미를 잘못 이해했다고 비판하며,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의 ‘환경’은 우리가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므로 우리 자신, 즉 인간을 중심에 놓자는 주장입니다. 반면 예시3은 탈인간중심주의에서도 생태중심주의로 분류됩니다. 하늘의 관점에서 우리 모두가 평등하며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한쪽 입장에서 보지 말자는 관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