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서구·중국에 편향된 역사 지식
반일교육이 지일(知日) 가로 막아
韓 "침략 사과" 요구에 日 "근대화 감사해라"
1953년 협상 결렬되자 반일교육 전격 시행
지금의 반일, 내용은 없고 감정만 과잉
아랍에 대한 무지가 오해 불러
무함마드, 예언자일뿐 이슬람교 창시자 아냐
아랍이름은 족보…'빈 살만'만 쓰면 누군지 몰라
한국인들이 비정상적으로 무지한 종목이 두 개 있다. 일본 역사와 이슬람 문명이다. 몇 해 전 오사카에 벚꽃 구경을 갔을 때다. 오사카성을 둘러보던 일행 중 한 사람이 물었다. “여기는 누가 살던 곳인가요?” 그런 걸 대체 어떻게 알겠느냐는 듯 누군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아마 지체 높은 귀족이 살았겠지요.” 잠시 망설였다. 타인의 무지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성의 주인이 누구고 임진왜란 이후 패권 쟁탈전 때 포격으로 완파되었다가 누가 재건했다는 얘기를 들려주면 면전에서야 “와, 대단하다” 하겠지만 속으로는 “재수 없는 놈, 잘난 척은” 하며 분위기가 냉랭해질 것이다. 원칙을 지킨 덕에 투어는 내내 평온했다.반일교육이 지일(知日) 가로 막아
韓 "침략 사과" 요구에 日 "근대화 감사해라"
1953년 협상 결렬되자 반일교육 전격 시행
지금의 반일, 내용은 없고 감정만 과잉
아랍에 대한 무지가 오해 불러
무함마드, 예언자일뿐 이슬람교 창시자 아냐
아랍이름은 족보…'빈 살만'만 쓰면 누군지 몰라
그분들은 평생 산간벽지에서 농사를 지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다. 최고 학부를 마쳤고 심지어 명예퇴직이라는 제도까지 있는 직장을 다닌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오사카 성주를 모른다는 건 일본에 대한 우리 교육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일본 역사에 대해 우리가 가장 많이 배우는 건 그들의 개화기와 근대다. 이유는 그게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메이지이신을 하고 체력을 기른 다음 조선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명칭도 그렇다. 명치유신(明治維新)이거나 메이지이신이지 메이지유신이라는 짬뽕은 대체 뭐란 말인가).반일(反日)의 기원 … 뭐가 됐든 지일(知日)이 먼저한국에서 반일이 정치적으로 활용된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나는 일본과 한국에 정상적인 통상 관계가 재확립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과거를 망각해야 할 것이며 또한 망각할 것이다.” 누가 한 말일까. 이승만이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에 발표한 성명인데 평소 일본에 대한 이승만의 적대적 태도를 생각하면 놀라운 발언이다.
게다가 불과 3년 전 식민 기억이 생생한 한국인들이다. 발언 시기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그런데도 이런 성명을 발표한 것은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미 군정이 세운 국가였고 재정 역시 미국에서 나왔다. 뭐라도 해보려면 일본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일본은 귓등으로 흘린다.
그들은 한국과 협상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얼마 전까지 종처럼 부리던 나라와 대등한 자격으로 만나는 것은 수치였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외교 식민지였다. 미국은 한국과 친하게 지내라는 조언에 일본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협상장에 마주 앉은 둘의 요구와 답변은 따로 논다. 식민 지배 사과를 요구하자 매우 합법이었으며 근대화해준 것에 감사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피해 배상을 요구하자 패전으로 귀국할 때 일본인들이 놓고 나온 재산을 돌려달라고 맞받았다. 1953년, 협상이 결렬되자 혈압이 오른 이승만은 국가정책에 반일 교육을 도입한다. 그렇게 시작된 반일이 지금의 내용은 없고 감정만 과잉인 혐오 일변 반일의 기원이다. 그런데 반일의 기본은 지일(知日)이다.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과 싸우겠다는 사람이 더 이상하다. 우리는 지금 허공에 주먹을 뿌리고 있다. 그리고 알면, 덜 싸운다.아랍권에 대한 무관심 … 이름부터 제대로 부르자일본 이야기는 우리가 기형적으로 잘 모르는 사례를 위해 등장시킨 거라 여기서 줄인다. 이슬람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퀴즈.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아랍인 3인방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와 오스만의 술탄이었던 메흐메트 2세 그리고 오일머니의 상징 빈 살만 왕세자다.” 이 문장에서 틀린 것은? (30초 드린다) 순서대로, 무함마드는 이슬람의 창시자가 아니다. 콘스탄티노플의 명칭을 이스탄불로 바꾼 메흐메트 2세는 아랍인이 아니라 튀르크인이다. 마지막으로 빈 살만은 대체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없다. 이슬람에 따르면 이슬람교는 우주가 창조될 때부터 존재했으며 잘못된 방법으로 인류에게 전달되었고 이를 정리하기 위해 알라가 예수를 내려 보냈지만 여전히 암담해 마지막으로 보낸 예언자가 무함마드다. 오스만은 아랍 왕조가 아니라 돌궐의 한 분파가 서진하면서 세운 제국이다.
빈 살만은 아랍에 대한 무관심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다. 아랍 이름은 족보다. 카타르의 왕비였던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빈 압둘라 알-미스네드’를 보자. 셰이카는 아랍에서 여성 지도자의 존칭이다.
남성은 셰이크. 모자는 본인 이름이다. 빈트는 아랍어로 딸(아들은 빈), 나세르는 아버지의 이름이다. 그러니까 ‘모자 빈트 나세르’는 ‘나세르의 딸 모자’라는 의미다. 같은 원리로 압둘라는 나세르의 아버지가 되며 마지막인 알-미스네드는 가문의 이름인 성(姓)이다. 다 이어붙이면 알-미스네드 가문의, 압둘라의 아들인 나세르의 딸, 모자라는 긴 이름이 본명이다.
빈 살만이라는 이름으로 뉴스에 등장하는 남자의 이름은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다. 이를 풀면 ‘사우드 가문 압둘아지즈의 아들 살만의 아들인 무함마드’인데 살만의 자녀 13명 중 무함마드는 일곱 번째 아들이다. 그러니 빈 살만이라고 쓰면 대체 어느 아들인지 알 수 없다. 무함마드 사우디 왕세자라고 쓰든가 아니면 영어 이니셜로 MBS로 쓰는 게 맞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표기한 또 한 사람이 9·11 테러의 장본인 오사마 ‘빈 라덴’이다. 심지어 오사마는 사우디 왕족으로 알려졌는데, 그의 아버지는 예멘 출신의 가난한 건축 노동자로 자수성가했다. 오사마의 동기(同氣)는 모두 54명이다. 그는 2억5000만 달러를 유산으로 받아 테러 활동에 탕진했는데 전체 유산이 500억 달러였기 때문에 많이 받은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