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무한'은 어떻게 인식되는가
무한이라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 수식어를 고르려다 결국은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학생들 중 얼마나 제 마음을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무한이란 그런 것입니다. 무한이 수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적용되는 결과들은 인간의 직관과 다르게, 어떨 때는 반대로 도출됩니다. 무한이 흥미로운 이유는 많지만 그러한 이유를 종합한다면 결국 이 이유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인간의 인식이란 기본적으로 유한하며 한 번에 인식할 수 있는 수 자체도 많지 않습니다. 조금씩 다르게 느낄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5개를 넘어가는 물건은 한 번에 직관적으로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책상에 놓인 6개의 볼펜을 볼 때 자신의 인식을 잘 더듬어보면 3개와 3개로 묶어 인식하거나, 2개짜리 묶음 3개로 인식하고 있는 걸 떠올릴 수 있습니다.
볼펜을 세기 쉽게 잘 늘어놓는 게 도움이 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에 아주 당연한 듯이 직관적으로 그 개수가 찍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이 과정이 워낙 익숙하고 빠르기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할 뿐이죠. 컴퓨터가 아무리 복잡한 계산할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 1+1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간극이 워낙 짧아 우리가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 무한히 많다거나 어떤 계산을 무한하게 해나간다는 것은 우리의 직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한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은 10개 다음에 또 10개가 있고, 그다음에 10개가 있는데 이것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뤄지는 과정입니다.
무한 자체가 인식되는 것이 아닌, 유한적 확장을 그저 마무리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인간의 직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수학자들은 멈추지 않는 과정으로서의 인식을 ‘가무한’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으로 무한을 이해하는 직관적인 인식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인식입니다. 이와 다르게 무한 그 자체로 존재하는 형태로의 인식을 ‘실무한’이라고 구별합니다. 이는 너무나도 반직관적이었기에 최근에서야 모순 없이 완성된 체계로서 이해되는 무한에 대한 인식입니다.
둘의 차이를 볼 수 있는 매우 유명한 소재 중 하나로, 와 1에 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수가 같다는 것은 중학교 2학년 과정에서 다루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증명이 가능합니다. 임을 납득할 수 있다면 이라는 짧은 식으로도 두 수가 같음을 보일 수 있죠.
하지만 여전히 두 수가 같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수학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그것이 직관과 맞아떨어지지 않기에 찝찝하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술 더 떠서 실제로는 다르지만, 수학에서만 그냥 그렇다고 하고 넘어가면 된다는 식의 이상한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가무한의 인식에서는 0.999…을 그 자체로 인식하기보다 0.9+0.09+0.009+…라는 유한 소수를 더해나가는 형태로 인식하게 됩니다. 마지막까지도 0.00…009라는 수가 더해지며 아주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되며 그 결과, 결코 1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약간 다른 입장이지만 제논의 역설도 이러한 문제와 궤를 같이합니다. 아킬레우스는 영원히 거북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논증은 워낙 유명하니 잠깐만 검색해봐도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당시에는 ‘무한하게’ 반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인지적 오류를 설명할 수 없었기에 역설이라 불린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0이 아닌 양수를 더하면 그 수가 아무리 작더라도 당연히 그 전보다 커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걸 반복하면 계속해서 커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거북은 영원히 아킬레우스보다 앞에 있다는 누가 봐도 틀린 주장을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들에서 생기는 찝찝함을 해결하려면 두 번째 직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해야 하는 직관을 표현한 것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유한개의 대상을 다루는 결과와 무한개의 대상을 다룬 결과가 다름을 과정을 통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죠. 마치 착시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종이를 오려서 대보거나, 컴퓨터를 활용해 색상값을 뽑아 비교하는 과정을 거쳐 진짜 사실을 내면으로 받아들이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무한소수 혹은 특정수들의 무한한 합을 그 자체로, 그러니까 ‘실무한’으로 이해하는 것은 직관적이지 않기에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며 인간의 이성이 감각적 인간을 벗어나는 과정이라고도 말하고 싶네요.
즐거웠던 방학 잘 마무리하고 2학기 잘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편에도 계속해서 무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