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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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수학
차가운 숫자가 따뜻한 언어가 될 때
얼마 전 고교 1학년 공통수학1에서 복소수 단원을 수업할 때였습니다. 제곱해서 -1이 되는 수, 눈에 보이지 않고 실생활에서 손에 잡히는 수도 아닌 ‘상상의 수(Imaginary Number)’를 마주한 학생들의 표정은 당혹감 그 자체였습니다. “선생님, 존재하지도 않는 수를 대체 왜 배워야 하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떠올립니다. 이 작품은 수가 단지 계산을 위한 기호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언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2004년 요미우리 소설상과 제1회 서점대상을 수상한 이 소설의 주인공 ‘박사’는 한때 촉망받던 수학자였습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기억이 딱 80분간만 지속되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80분이 지나면 그의 기억은 깨끗하게 지워집니다. 그런 박사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선택한 유일한 언어가 바로 ‘수학’입니다.박사의 집에 새로 온 ‘가정부(나)’와 그녀의 열 살짜리 아들은 숫자를 통해 박사의 마음속으로 들어갑니다. 매일 아침 기억을 잃은 박사에게 자신을 다시 소개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숫자가 가진 따뜻한 온기에 기대어 80분이라는 한계를 넘어선 깊은 유대감을 쌓아갑니다.박사는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할 때 신발 사이즈나 전화번호를 묻곤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호구조사가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를 수학적 의미로 받아들이려는 그만의 다정한 인사법입니다. 어느 날 박사는 가정부의 생일인 2월 20일을 세 자릿수로 표시한 220과 자신이 대학 시절 논문상으로 받은 손목시계의 번호가 ‘284’라는 것을 발견하고 깊이 감동합니다. ‘우애수(Amicable Num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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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길잡이 기타
비밀을 말하지 않고 비밀을 증명한다고? 수학이 만든 완벽한 마법[재미있는 수학]
친구와 비밀 이야기를 해본 적 있죠? 비밀이란 참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내가 무언가 대단한 비밀을 알고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으면서도, 정작 그 내용을 말해버리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어버리니까요.그런데 수학의 세계에는 아주 신기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어떤 비밀번호나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확실히 증명하되, 그 비밀의 내용은 ‘단 한 글자’도 알려주지 않는 것이죠. 수학에서는 이를 ‘영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이라고 부릅니다. 상대방에게 나에 대한 지식(Knowledge)을 영(Zero)인 상태로 유지하면서 증명한다는 뜻입니다.이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특이한 구조의 건물을 상상해봅시다. 이 건물은 입구가 하나뿐인 둥근 복도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 통로(A)와 오른쪽 통로(B)로 갈라지죠. 복도의 가장 깊숙한 안쪽에는 두 통로를 연결하는 ‘비밀의 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 문은 비밀번호를 알아야만 열 수 있어 보통 사람들은 반대편 통로로 건너갈 수 없습니다.이제 철수와 영희가 있다고 가정해볼게요. 영희는 이 문을 여는 비밀번호를 알고 있고, 철수에게 비밀번호 자체는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자신이 그 번호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 증명하고 싶습니다.먼저 철수가 건물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영희는 어느 쪽 통로(A 혹은 B)로든 마음대로 들어갑니다. 건물 밖에서는 영희가 어느 방향을 선택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철수가 건물 입구로 들어와서 외칩니다. “영희야, 오른쪽(B)으로 나와줘!” 만약 영희가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면, 어느 쪽으로 들어갔든 안쪽의 비밀 문을 열고 지나가 철수가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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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길잡이 기타
직선의 질서가 빚는 곡선의 숨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수만 개의 빛나는 직선이 뻗어갑니다. 그런데 그 직선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형상은 놀랍게도 부드럽게 소용돌이치는 나선형 은하입니다. 이것은 착시가 아닙니다. 팽팽하게 당겨진 차가운 실, 그 정직한 직선들이 그려내는 우아한 곡선의 미학, 바로 스트링 아트의 마법입니다.<그림 1>의 은하 소용돌이를 확대하면 곡선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그림 2>에서 보이듯, 이 모든 형상은 곡선을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팽팽하게 당겨진 직선들의 집합입니다. 이 직선들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미세하게 각도를 틀며 겹쳐질 때 우리 눈은 매끄러운 원형의 곡선을 인식하게 됩니다. 수학적으로는 무수히 많은 접선의 방정식들이 중첩되어 하나의 곡선을 형성하는 과정입니다.직선의 방정식에서 가장 친숙한 형태는 y=mx+n입니다. 이 식이 널리 쓰이는 이유는 m 과 n이 하는 역할이 매우 직관적이기 때문입니다. m은 직선이 기울어진 정도를 나타내는 기울기이며 n은 직선이 세로축인 y축과 만나는 지점인 y절편을 의미합니다.그렇다면 여기서 x와 y는 어떤 역할을 할까요? 좌표평면 위에 나타나는 모든 도형은 수많은 점의 집합입니다. 이때 x는 각 점의 가로 위치를, y는 세로 위치를 나타내는 변수입니다. 도형 위의 어떤 점을 잡더라도 그 좌표 (x, y)가 일정한 규칙을 따를 때 그 관계를 식으로 나타낸 것이 바로 관계식입니다. 그 관계식이 일차식인 y=mx+n의 형태를 갖춘다면 그 점들이 모여 곧게 뻗은 직선을 이루게 됩니다. y=m(x-a)+b라는 형태는 기울기 m과 직선이 지나는 한 점 (a,b)가 주어진 경우 사용하면 유리합니다. 따라서 (1,1)을 지나는 접선을 설계하고 싶다면 기울기를 m이라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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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길잡이 기타
컬링의 빗자루질, 응원 아닌 수학이다
지난 2월에 열린 제25회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다양한 종목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이의 눈길을 끈 종목은 컬링이었습니다.특히 화제가 된 장면은 선수들이 스톤이 멈출 위치를 거의 센티미터 단위까지 예측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스톤이 길게 미끄러질지, 중간에 멈출지, 혹은 다른 스톤을 맞히고 방향을 바꿀지까지 미리 계산하는 장면은 마치 얼음 위에서 이뤄지는 체스 경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컬링을 흔히 ‘빙판 위의 체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경기를 보면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선수들이 스톤을 던지고 난 뒤 왜 저렇게 필사적으로 빗자루로 얼음을 문지르는 것일까요? 단순한 응원 행위도 아닙니다. 그 빗자루질 한 번에는 치밀하게 계산된 물리학과 수학이 숨어 있거든요.선수들이 스톤 앞에서 열심히 문지르는 행동을 ‘스위핑(sweeping)’이라고 합니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스위핑은 스톤의 궤적과 속도를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핵심 기술입니다.컬링 경기장의 얼음 표면에는 ‘페블(pebble)’이라는 작은 물방울 돌기가 뿌려져 있습니다. 스톤은 이 울퉁불퉁한 표면과 마찰하면서 미끄러지는데, 스위퍼들이 페블을 문지르면 마찰열이 발생해 얼음 표면이 미세하게 녹습니다. 얇은 수막이 스톤과 얼음 사이의 마찰력을 줄여줘 스톤이 더 멀리, 더 곧게 나갈 수 있게 합니다.수학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어요. 스위핑의 강도를 높일수록 마찰 계수가 작아지고, 스톤에 작용하는 마찰력이 감소합니다. 마찰력이 줄면 감속이 느려져 스톤이 평균적으로 3~5m 더 나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스톤이 회전(컬링, curl)하는 방향도 스위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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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길잡이 기타
무작위의 결과엔 정말 규칙이 없을까?
동전을 다섯 번 던진다고 생각해봅시다. 다음 두 결과 중 어느 쪽이 더 ‘무작위’ 같을까요? ① 앞뒤앞뒤앞 ② 앞앞앞앞앞. 대부분의 사람은 첫 번째를 고릅니다. 두 번째는 왠지 이상해 보입니다. 누군가 일부러 만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학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동전을 한 번 던지면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각각 2분의 1로 같습니다. 따라서 다섯 번을 던질 때 특정한 순서가 나올 확률도 모두 32분의 1로 동일합니다. ① 앞뒤앞뒤앞 ② 앞앞앞앞앞 ③ 앞뒤뒤앞앞 ④ 뒤앞앞뒤뒤, 이 모든 결과는 각각 같은 확률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작위 잘 만들지 못하는 인간동전을 다섯 번 던질 때 가능한 결과는 32가지이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중 하나일 뿐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이상하게 느끼는 결과는 보통 ‘앞앞앞앞앞’ 같은 연속입니다. 하지만 사실 ‘앞뒤앞뒤앞’처럼 지나치게 규칙적인 패턴도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 역시 확률은 완전히 같습니다.그렇다면 우리는 왜 ‘앞앞앞앞앞’을 특별하게 여길까요? 사람은 ‘무작위’를 떠올릴 때 보통 잘 섞인 상태를 상상합니다. ‘앞뒤앞뒤뒤앞’ ‘뒤뒤앞뒤뒤앞뒤앞’ 같은 결과가 더 자연스럽다고 느낍니다. 반면 같은 결과가 계속 이어지면 어딘가 조작된 느낌을 받죠. 하지만 실제 무작위에서는 특별한 일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습니다.흥미롭게도 인간은 무작위를 잘 만들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동전을 던진 것처럼 보이게 앞과 뒤를 적어보라고 하면 대부분 ‘앞뒤앞뒤뒤앞앞뒤’처럼 씁니다. 무작위를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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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길잡이 기타
알함브라의 붉은 성벽 속에 숨겨진 수학적 설계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가우디의 대성당이나 바르셀로나의 웅장한 건축물 사이에서 쉽게 순위를 매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높은 고원 위에서 붉은 벽돌의 위용을 자랑하며, 주변 환경과 완벽하게 어우러진 알함브라 궁전을 단연 으뜸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 궁전이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단순히 건물의 화려함이 아니라, 높은 곳에 자리하면서도 정원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정교하게 가꿔져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력 넘치는 정원을 가능하게 한 핵심은 바로 곳곳에서 넘실대는 맑은 물입니다.9세기경에 세워진 작은 요새를 기반으로 나스르 왕조의 창시자 무함마드 1세는 1238년에 성벽과 궁전의 기틀을 잡으며 메마른 고원 위에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거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생명을 불어넣을 물을 확보하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고, 이를 위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정교한 수로 시스템이 설계됐습니다. 알함브라의 물은 수 킬로미터 떨어진 다로강에서 ‘아세키아 레알(Acequia Real)’이라는 메인 관로를 통해 들어옵니다.수로를 건설하던 설계자들이 깊은 골짜기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들은 포기하는 대신 수학적 통찰력이 담긴 ‘역사이펀 구조’를 탄생시켰습니다. 관을 U자 형태로 땅 밑 깊숙이 매설해 떨어지는 물의 압력이 다시 반대편 높은 곳까지 물을 밀어 올리도록 한 이 설계는 참으로 경이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이는 수압의 가중치를 정교하게 계산해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환되고 다시 위치에너지로 복원되는 물리적 법칙을 완벽하게 활용함으로써 인간의 이성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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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길잡이 기타
함수는 세상의 관계·변화 이해하는 도구 [재미있는 수학]
중학교에서 처음 배우는 함수는 보통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말합니다. “ 에 어떤 수를 넣으면, 그에 따라 값이 하나로 정해지는 관계를 함수라고 합니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죠. “아, 함수는 식이구나.”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사실 고대 사람들도 함수와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날짜에 따라 달라지는 별의 위치를 표로 정리했습니다. 날짜를 넣으면 위칫값이 하나 나옵니다. 입력을 하면, 결과가 나오는 것이죠. 하지만 그들은 이것을 ‘함수’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함수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상태였습니다.17세기, 데카르트는 좌표평면을 도입합니다. 그리고 곡선이 식으로 표현되기 시작했죠. 직선은 원은 과 같은 식들입니다. 그리고 18세기, 오일러는 라는 기호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함수는 점점 사람들에게 ‘식’으로 인식되게 됩니다.그런데 여기서 현대의 함수가 가지는 중요한 약속을 하나 들여다봐야 합니다. 바로 하나에 하나가 나온다는 점이죠. 왜 꼭 하나여야 할까요?예를 들어 을 넣었더니 가 7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10이기도 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래서 3을 넣으면 도대체 뭐가 나오는 거지?”함수를 자판기처럼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동전 하나를 넣으면 음료 하나가 나옵니다. 그런데 동전 하나를 넣었더니 콜라도 나오고 사이다도 동시에 튀어나온다면? 이게 유용할까요?그 기계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수학은 예측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같은 입력에서 결과가 항상 같아야 계산도 할 수 있고, 그래프도 그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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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길잡이 기타
치명적인 '비교의 함정'…분자보다 분모 봐야 [재미있는 수학]
해마다 대입 합격자 발표 시즌만 되면 불편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커뮤니티나 SNS 등에 올라오는 고등학교 순위표 때문입니다. 이 순위는 대부분 서울대 합격자 수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울대 합격자 수로 고등학교의 순위를 매기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요?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는 서울대 합격자 수가 학교의 질이라는 암묵적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지역, 학생 수, 선발 구조, 교육 여건의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 서열화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또한 학생, 교사, 학교 공동체를 결과로 나타나는 숫자로만 바라보는 위험이 있습니다. 교육적으로도 학교 교육의 목적을 소수 상위권 배출로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하위권 학생의 성장, 다양한 진로 성취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잘 가르치는 학교’보다 ‘잘 뽑는 학교’가 유리해지는 구조가 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문제가 있지만 잠시 접어두고, 여기서는 고등학교의 순위를 서울대 합격자 수를 기준으로 했을 때를 가정해 이 문제를 통계의 언어로 바라보려고 합니다.SNS에 다음과 같은 자료가 공개되었습니다.“A고: 서울대 합격 10명, B고: 서울대 합격 8명”이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B고보다 A고를 더 좋은 학교로 인식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요? A고와 B고의 졸업생 수를 찾아보니 A고는 400명, B고는 160명입니다. 서로 다른 두 집단을 비교하려면 기준이 똑같아야 하는데, 여기서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도수(frequency)로 비교하면 안 됩니다. 비교하려면 기준을 맞춰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두 학교의 졸업생 수를 똑같이 1로 하면 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