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러의 법칙
V-E+F=2. 초등학생도 계산할 수 있는 이 간단한 식 하나가 인류 문명의 가장 복잡한 기술들을 떠받치고 있다. 진정한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면서도 심오하다. 복잡하게 얽힌 구조물과 정교한 3D 그래픽, 기하학적 예술과 건축의 세계를 관통하는 질서는 단순한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다. 단 한 줄의 식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조용히 지탱하고 있다.
V-E+F=2. 초등학생도 계산할 수 있는 이 간단한 식 하나가 인류 문명의 가장 복잡한 기술들을 떠받치고 있다. 진정한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면서도 심오하다. 복잡하게 얽힌 구조물과 정교한 3D 그래픽, 기하학적 예술과 건축의 세계를 관통하는 질서는 단순한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다. 단 한 줄의 식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조용히 지탱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직육면체 모양이다. 이제 그 면, 모서리, 꼭짓점의 개수를 차례로 세어보자. 면은 앞면, 뒷면, 위아래, 좌우로 총 6개다. 모서리는 12개, 꼭짓점은 8개다. 이제 면의 개수를 F, 모서리의 개수를 E, 꼭짓점의 개수를 V라고 했을 때, V−E+F의 값을 구해보자. 8−12+6=2가 된다.
이것이 바로 오일러의 정리이다. 놀랍게도 이 관계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면, 모서리, 꼭짓점으로 이루어진 모든 볼록한 다면체에서 성립한다. 정육면체든, 피라미드든, 심지어 울퉁불퉁한 감자 모양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1750년경,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한 가지 이상한 현상에 사로잡혔다. 그가 책상 위에 놓인 다양한 입체 모형을 하나씩 살펴보며 면, 모서리, 꼭짓점을 세어보는데 매번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었다. 정사면체든, 정육면체든, 심지어 복잡한 모양의 다면체든 상관없이 V-E+F는 항상 2였다.
처음에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다른 형태의 다면체를 가져와 계산해도 결과는 같았다. 정사면체(V=4, E=6, F=4), 정육면체(V=8, E=12, F=6), 정팔면체(V=6, E=12, F=8)... 심지어 울퉁불퉁한 모양으로 찌그러뜨린 다면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재미있는 수학]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이 쓰러지지 않는 이유는?](https://img.hankyung.com/photo/202507/AA.41153541.1.jpg)
이 발견이 혁명적 이유는 그 보편성에 있었다. 지금까지 수학자들은 개별적인 도형의 성질을 연구했지만, 오일러는 모든 입체 도형이 공유하는 근본적 구조를 포착한 것이었다. V-E+F=2라는 간단한 식 뒤에는 공간 자체의 본질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만약 정육면체에 터널을 하나 뚫어본다면 어떨까? 앞면에서 뒷면으로 관통하는 정사각형 터널을 만든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원래 정육면체에서는 V-E+F=8-12+6=2였지만, 터널이 뚫린 순간 이 값이 0으로 바뀐다. 터널을 만들면서 새로운 면들과 모서리, 꼭짓점이 추가되지만, 전체적인 오일러 특성수는 정확히 2만큼 감소한다. 구멍 하나가 생길 때마다 오일러 수는 2씩 줄어드는 것이다. 형태는 속일 수 있지만, 구멍의 개수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단순한 계산이 ‘정리’로 불리는 이유다. 예외 없는 보편성, 그것이 수학이 추구하는 진리의 모습이었다.
오일러가 발견한 그 신비로운 법칙은 25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일상 곳곳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있다. 당신이 지금 즐기고 있는 스마트폰 게임 속 3D 캐릭터, 넷플릭스에서 보는 화려한 영화 그래픽, 모든 것이 오일러의 V-E+F=2라는 공식 위에서 숨 쉬고 있다.
게임 개발자가 블렌더(Blender)나 유니티(Unity)에서 복잡한 캐릭터를 만들 때, 컴퓨터는 끊임없이 의심의 눈길을 던진다. 수만 개의 면과 모서리로 이루어진 메시 구조를 살펴보며 “이 구조가 정말 완전한가?”를 묻는다. 그 답은 바로 V-E+F 계산에 있다. 만약 이 값이 2가 아니라면, 어딘가에 구멍이 뚫렸거나 면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신호다. 마치 250년 전 오일러가 책상 위에서 한 그 계산을, 컴퓨터가 초당 수천 번씩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