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러의 법칙

V-E+F=2. 초등학생도 계산할 수 있는 이 간단한 식 하나가 인류 문명의 가장 복잡한 기술들을 떠받치고 있다. 진정한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면서도 심오하다. 복잡하게 얽힌 구조물과 정교한 3D 그래픽, 기하학적 예술과 건축의 세계를 관통하는 질서는 단순한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다. 단 한 줄의 식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조용히 지탱하고 있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출처 : pixabay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출처 : pixabay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스마트폰을 들어보자. 그 모서리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며 개수를 세어보면, 당신은 18세기 수학자 오일러가 발견한 우주의 비밀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스마트폰은 직육면체 모양이다. 이제 그 면, 모서리, 꼭짓점의 개수를 차례로 세어보자. 면은 앞면, 뒷면, 위아래, 좌우로 총 6개다. 모서리는 12개, 꼭짓점은 8개다. 이제 면의 개수를 F, 모서리의 개수를 E, 꼭짓점의 개수를 V라고 했을 때, V−E+F의 값을 구해보자. 8−12+6=2가 된다.

이것이 바로 오일러의 정리이다. 놀랍게도 이 관계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면, 모서리, 꼭짓점으로 이루어진 모든 볼록한 다면체에서 성립한다. 정육면체든, 피라미드든, 심지어 울퉁불퉁한 감자 모양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1750년경,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한 가지 이상한 현상에 사로잡혔다. 그가 책상 위에 놓인 다양한 입체 모형을 하나씩 살펴보며 면, 모서리, 꼭짓점을 세어보는데 매번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었다. 정사면체든, 정육면체든, 심지어 복잡한 모양의 다면체든 상관없이 V-E+F는 항상 2였다.

처음에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다른 형태의 다면체를 가져와 계산해도 결과는 같았다. 정사면체(V=4, E=6, F=4), 정육면체(V=8, E=12, F=6), 정팔면체(V=6, E=12, F=8)... 심지어 울퉁불퉁한 모양으로 찌그러뜨린 다면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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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오일러는 전율을 느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형태와 크기, 심지어 정확한 각도와도 무관하게, 모든 볼록한 다면체가 하나의 동일한 수학적 법칙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우주에 새겨진 숨겨진 암호를 발견한 듯한 순간이었다.

이 발견이 혁명적 이유는 그 보편성에 있었다. 지금까지 수학자들은 개별적인 도형의 성질을 연구했지만, 오일러는 모든 입체 도형이 공유하는 근본적 구조를 포착한 것이었다. V-E+F=2라는 간단한 식 뒤에는 공간 자체의 본질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만약 정육면체에 터널을 하나 뚫어본다면 어떨까? 앞면에서 뒷면으로 관통하는 정사각형 터널을 만든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원래 정육면체에서는 V-E+F=8-12+6=2였지만, 터널이 뚫린 순간 이 값이 0으로 바뀐다. 터널을 만들면서 새로운 면들과 모서리, 꼭짓점이 추가되지만, 전체적인 오일러 특성수는 정확히 2만큼 감소한다. 구멍 하나가 생길 때마다 오일러 수는 2씩 줄어드는 것이다. 형태는 속일 수 있지만, 구멍의 개수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단순한 계산이 ‘정리’로 불리는 이유다. 예외 없는 보편성, 그것이 수학이 추구하는 진리의 모습이었다.

오일러가 발견한 그 신비로운 법칙은 25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일상 곳곳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있다. 당신이 지금 즐기고 있는 스마트폰 게임 속 3D 캐릭터, 넷플릭스에서 보는 화려한 영화 그래픽, 모든 것이 오일러의 V-E+F=2라는 공식 위에서 숨 쉬고 있다.

게임 개발자가 블렌더(Blender)나 유니티(Unity)에서 복잡한 캐릭터를 만들 때, 컴퓨터는 끊임없이 의심의 눈길을 던진다. 수만 개의 면과 모서리로 이루어진 메시 구조를 살펴보며 “이 구조가 정말 완전한가?”를 묻는다. 그 답은 바로 V-E+F 계산에 있다. 만약 이 값이 2가 아니라면, 어딘가에 구멍이 뚫렸거나 면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신호다. 마치 250년 전 오일러가 책상 위에서 한 그 계산을, 컴퓨터가 초당 수천 번씩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정경호 삼육고 수학교사
정경호 삼육고 수학교사
건축 분야에서는 더욱 극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나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빌바오 같은 건물을 보라. 그 상상을 초월하는 곡면들이 어떻게 안전하게 서 있을 수 있을까? 건축가들은 컴퓨터로 건물을 수천 개의 작은 면으로 쪼개어 분석한다. 이때 오일러의 정리는 전체 구조가 위상학적으로 안정한지 확인하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