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로 전기요금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 전국 지역별 발전 규모(발전량)를 계산하고 송배전 비용을 따져 요금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전력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은 강원도와 경상남북도 등의 해변 지역인 반면, 전력 소비량이 압도적으로 높은 지역은 서울과 수도권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차등 요금제로 가면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발전지역 시·도에서는 가격이 내려가고, 이를 가져다 쓰는 서울 등지에서는 요금이 올라간다. 과다 사용처에 송전 비용을 전가하면서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전력 사용량까지 억제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라는 평가와 함께, 원가를 파악하기도 어려운 데다 중장기 전력 수급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화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에너지 정책인가.[찬성] 송전·'발전소 님비' 보상 재원 필요…전력 소비 억제, 데이터센터 분산 기대선진국에서는 전력산업을 ‘배달(delivery) 산업’이라고 많이 표현한다. 생산 못지않게 송전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는 발전소 건립 여부와 어떤 종류의 발전이냐에 과도하게 사회적 관심이 집중돼온 경향이 있다. 가령 원전이냐 화력발전이냐에 관심이 높다. 어느 지역에, 어떤 발전소를 설치하느냐로 늘 나라가 시끄럽지만 정작 생산한 전기를 어떻게 수요처로 보낼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부족하다. 실제로는 발전소의 전기를 배달하는 일, 즉 송전이 힘도 들고 비용도 많이 든다. 가려진 핵심은 ‘배달 산업’인 것이다.
초고압 철탑 건설에 따른 주변 지역 주민의 건강 훼손, 환경파괴 논란이 적지 않다. 이런 데서 갈등이 커지면서 송전 비용도 발전소 건설 못지않게 많이 든다. 이런 갈등은 결국 돈 문제, 즉 비용으로 수렴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책적으로 전기요금을 동결한 결과 한국전력은 거대한 빚더미에 억눌리는 빈사지경의 공룡이나 다름없다. 필요한 돈이 없어 기술 투자도 하지 못한 채 젊은 직원까지 명예퇴직으로 내보내는 실정이다. 재정에 의존하지 않고 한전의 부실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경영 정상화를 꾀하는 차원에서도 전력 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에 공공요금을 올리는 것에 대한 정책적 부담이 적지 않다. 따라서 지역별 차등화로 대도시 및 산업 지역 요금을 올리는 것은 유효한 방편이다.
결국 발전소와 거리가 먼 곳에 ‘추가 배달비’ 부과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최대의 전력 수요처가 서울 등 수도권이라는 점에서 과다 사용 지역에 부담을 더 지울 수밖에 없다. 이는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을 유도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과소비 지역의 공공요금 가산제도는 인구와 산업·경제의 서울 집중도 완화할 것이다.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데이터센터 등도 점차 수도권을 탈피해 전력 요금이 싼 지방으로 이전·확산할 수 있다.[반대] 대도시 겨냥 편법 요금 올리기…서울 병원 원정 환자, 진료비 더 내나말이 쉬워 배달비 청구일 뿐 배달 비용에 대한 원가계산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배달비로 따지자면 대도시나 공업단지 같은 지역은 오히려 적게 들 수 있다. 가령 수천 가구가 좁은 곳에 밀집된 대형 아파트의 경우 한전은 단지 입구까지만 전력을 배달해주면 각 가정이 알아서 전기 시설을 스스로 설치·도입해 쓴다. 한꺼번에 5000가구분 전력을 배달하니 비용이 더 싸다. 많은 공장이 있는 산업단지에도 대용량을 일거에 배달하니 배달 비용은 의외로 비싸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소수의 주택이 드물게 흩어져 있는 산간이나 어촌 도서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전봇대를 세우고 변전소를 만드느라 더 큰 비용이 든다.
지역별 차등화는 결국 전력 요금을 올리기 위한 꼼수일 뿐이다. 일괄적인 요금 인상이 부담스러우니 대도시를 겨냥해 선택적으로 올리겠다는 편법 논리다. 전력 문제를 요금 차원에서 보면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올리는 게 맞다. 인건비와 원료, 에너지의 국제가격이 올라 생산 원가가 더 들면 소비자에게 적절한 비용을 전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정상적 수요 공급과 가격체계를 무시한 채 기형적인 한전의 경영을 유지하려는 비정상적인 변죽 울리기일 뿐이다.
지역 차별 논리라면 서울의 대형 병원 치료비도 진료자 주소지에 따라 달리 받아야 한다. ‘5대 병원’을 비롯해 서울의 병원엔 환자가 넘쳐나고, 웬만한 지방 병원은 환자가 없어 병원 경영과 의료 발전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지역에서 굳이 서울로 이동해서 치료받으려는 경우에는 진료비를 더 받아 서울에 집중되는 것을 막자는 논리도 타당해진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동일한 의료수가제, 국가 주도 균일 공공 건강보험제도를 운용하는 터에 서울 대형 병원으로 집중도를 높인다는 이유로 지방 환자에게 치료비를 더 부과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같은 논리다. 지역별 차등제가 과소비를 개선한다는 보장도 없다.√ 생각하기- 업종·시간대별 차등 시행…고품질·안정 공급 '전력산업 구조개선' 중요 전력 요금은 시간대별·용도별로 달리 책정하는 방법도 있다. 국내에서도 농업용·교육용 등에 대한 요금 할인이 있다. 산업용에서도 할인제도가 있고, 정책적 배려로 사회적 약자(저소득층)에게는 값싼 요금을 적용하기도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시간대별 요금 차등제가 있다. 가령 영국에서는 요금이 싼 한밤중에 세탁기를 돌리는 서민 가정이 적지 않다. 원전은 보통 24시간 같은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사용량이 적은 자정~새벽 시간대에 남는 전기를 쓰는 지방자치단체의 가로등 요금은 싸다. 이런 논리로 보면 지역별 차등화도 합리적 계산을 전제로 도입해볼 만하다.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 생산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춰 다국적 데이터 기반 기업 등이 한국에 투자하게 하는 것이다. 산업의 고도화에 따라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도록 장기적 안목의 공급 계획을 잘 세우고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초고압 철탑 건설에 따른 주변 지역 주민의 건강 훼손, 환경파괴 논란이 적지 않다. 이런 데서 갈등이 커지면서 송전 비용도 발전소 건설 못지않게 많이 든다. 이런 갈등은 결국 돈 문제, 즉 비용으로 수렴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책적으로 전기요금을 동결한 결과 한국전력은 거대한 빚더미에 억눌리는 빈사지경의 공룡이나 다름없다. 필요한 돈이 없어 기술 투자도 하지 못한 채 젊은 직원까지 명예퇴직으로 내보내는 실정이다. 재정에 의존하지 않고 한전의 부실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경영 정상화를 꾀하는 차원에서도 전력 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에 공공요금을 올리는 것에 대한 정책적 부담이 적지 않다. 따라서 지역별 차등화로 대도시 및 산업 지역 요금을 올리는 것은 유효한 방편이다.
결국 발전소와 거리가 먼 곳에 ‘추가 배달비’ 부과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최대의 전력 수요처가 서울 등 수도권이라는 점에서 과다 사용 지역에 부담을 더 지울 수밖에 없다. 이는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을 유도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과소비 지역의 공공요금 가산제도는 인구와 산업·경제의 서울 집중도 완화할 것이다.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데이터센터 등도 점차 수도권을 탈피해 전력 요금이 싼 지방으로 이전·확산할 수 있다.[반대] 대도시 겨냥 편법 요금 올리기…서울 병원 원정 환자, 진료비 더 내나말이 쉬워 배달비 청구일 뿐 배달 비용에 대한 원가계산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배달비로 따지자면 대도시나 공업단지 같은 지역은 오히려 적게 들 수 있다. 가령 수천 가구가 좁은 곳에 밀집된 대형 아파트의 경우 한전은 단지 입구까지만 전력을 배달해주면 각 가정이 알아서 전기 시설을 스스로 설치·도입해 쓴다. 한꺼번에 5000가구분 전력을 배달하니 비용이 더 싸다. 많은 공장이 있는 산업단지에도 대용량을 일거에 배달하니 배달 비용은 의외로 비싸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소수의 주택이 드물게 흩어져 있는 산간이나 어촌 도서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전봇대를 세우고 변전소를 만드느라 더 큰 비용이 든다.
지역별 차등화는 결국 전력 요금을 올리기 위한 꼼수일 뿐이다. 일괄적인 요금 인상이 부담스러우니 대도시를 겨냥해 선택적으로 올리겠다는 편법 논리다. 전력 문제를 요금 차원에서 보면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올리는 게 맞다. 인건비와 원료, 에너지의 국제가격이 올라 생산 원가가 더 들면 소비자에게 적절한 비용을 전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정상적 수요 공급과 가격체계를 무시한 채 기형적인 한전의 경영을 유지하려는 비정상적인 변죽 울리기일 뿐이다.
지역 차별 논리라면 서울의 대형 병원 치료비도 진료자 주소지에 따라 달리 받아야 한다. ‘5대 병원’을 비롯해 서울의 병원엔 환자가 넘쳐나고, 웬만한 지방 병원은 환자가 없어 병원 경영과 의료 발전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지역에서 굳이 서울로 이동해서 치료받으려는 경우에는 진료비를 더 받아 서울에 집중되는 것을 막자는 논리도 타당해진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동일한 의료수가제, 국가 주도 균일 공공 건강보험제도를 운용하는 터에 서울 대형 병원으로 집중도를 높인다는 이유로 지방 환자에게 치료비를 더 부과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같은 논리다. 지역별 차등제가 과소비를 개선한다는 보장도 없다.√ 생각하기- 업종·시간대별 차등 시행…고품질·안정 공급 '전력산업 구조개선' 중요 전력 요금은 시간대별·용도별로 달리 책정하는 방법도 있다. 국내에서도 농업용·교육용 등에 대한 요금 할인이 있다. 산업용에서도 할인제도가 있고, 정책적 배려로 사회적 약자(저소득층)에게는 값싼 요금을 적용하기도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시간대별 요금 차등제가 있다. 가령 영국에서는 요금이 싼 한밤중에 세탁기를 돌리는 서민 가정이 적지 않다. 원전은 보통 24시간 같은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사용량이 적은 자정~새벽 시간대에 남는 전기를 쓰는 지방자치단체의 가로등 요금은 싸다. 이런 논리로 보면 지역별 차등화도 합리적 계산을 전제로 도입해볼 만하다.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 생산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춰 다국적 데이터 기반 기업 등이 한국에 투자하게 하는 것이다. 산업의 고도화에 따라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도록 장기적 안목의 공급 계획을 잘 세우고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