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격동기 태국의 외교정책
영화 '왕과 나' 러브스토리 주인공
라마 4세, 실제로는 외교에 전념
열강의 식민 지배 피하는 성과 거뒀지만
라오스·캄보디아 지역 영토 내줘
라마 6세 땐 1차 대전 승전국 지위도
'패권 저울질' 성과엔 한계도 있어
어려서부터 여름도 겨울도 싫었다. 더울 때는 시원한 나라에서, 추울 때는 그 반대인 나라에서 지내는 게 꿈이었다.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가 여러 번 맞았다. 딱 한 분만 나를 격려해주셨다. “짜식, 돈 많이 벌어야겠구나.” 돈을 못 벌었다. 더 늦기 전에 꿈을 이뤄보겠다고 지난달 태국행 비행기를 탔다. 선택부터 시행착오였다. 그 나라는 따뜻한 나라가 아니라 더운 나라였다.영화 '왕과 나' 러브스토리 주인공
라마 4세, 실제로는 외교에 전념
열강의 식민 지배 피하는 성과 거뒀지만
라오스·캄보디아 지역 영토 내줘
라마 6세 땐 1차 대전 승전국 지위도
'패권 저울질' 성과엔 한계도 있어
태국에는 계절이 세 개 있다. 여름, 조금 더운 여름 그리고 아주 더운 여름이다. 다만 습도가 높지 않아 쪄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도 땀을 들이고 나면 뽀송뽀송까지는 아니더라도 끈적거리는 불쾌감은 느끼지 않는다. 누군가는 관광지 말고는 한 번도 세계의 주목을 받아보지 못한 나라라고 한다. 한 번 있다. 여러 차례 뮤지컬로 선보이다가 1956년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은 물론 오스카에서 5개 부문 수상 대박을 터뜨린 <왕과 나>다. 약간 태국 왕실 버전의 <사운드 오브 뮤직>인데, 영국 여성이 왕실에 교사로 취업한 사실을 빼면 죄다 허구다. 마치 왕과 가정교사가 고차원적인 플라토닉 러브를 나눈 것처럼 설정했지만, 당시 라마 4세는 통치자로서 외교 문제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가정교사의 얼굴이나 제대로 봤는지 의문이다.
태국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한 번도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절반만 사실이다. 직접 식민 통치를 받지 않는 대신 현재의 라오스와 캄보디아 그리고 미얀마 일부를 열강에 넘겼다. 그 시기 영국은 서쪽에서, 프랑스는 동쪽에서 태국의 영토를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선수를 쳐서 넘겨주고 대신 수도를 방어하고 서구식 근대화라도 앞당기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직접 국경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영국과 프랑스의 외교 전략도 작용을 했다. 이걸 외교적으로 문제를 잘 풀어 식민지를 면했다고 포장하는데, 태국 관변학자들만 동의하는 내용이다.
라마 4세보다 더 유명한 것이 그 아들인 라마 5세로, 그는 노예제를 폐지한 왕으로 유명하다(영화에도 왕세자로 나온다). 거기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왕비와 딸이 자신을 만나러 오다가 강에 빠져 죽게 되었는데, 이유가 황당하다. 당시 노예는 귀족의 몸에 손을 댈 수가 없어서 허우적대는 왕비와 공주를 멀뚱멀뚱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충격을 받아 노예제를 없앴다는 얘기인데, 이건 절반도 사실이 아니다.
태국에서 공식적으로 노예제가 사라진 건 1905년, 왕비가 익사한 것은 그보다 25년 전의 일이다. 게다가 1870년대 중반부터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해방 노예가 등장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역사를 이런 식으로 정신 승리로 푸는 게 바람직한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라마 5세는 태국 역사에서 대왕으로 불리며 현재도 존경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탁월했던 왕을 뽑으라면 라마 6세다. 영국 옥스퍼드대 유학생으로 법학과 역사를 전공했는데, 국제정치에 일찍 눈을 뜬 그의 혜안이 빛을 발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다. 처음에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전쟁 3년 차인 1916년 태국은 대뜸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다. 승전국 명단에 끼지 않으면 이후 논공행상에서 발언권과 이익이 없다는 것을 라마 6세가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45년 일제 패망을 앞두고 임시정부가 진공 작전을 시도한 것과 비슷하다. 아무리 시시해도 결산할 때는 전공(戰功)이 있어야 한다. 이 덕분에 태국은 191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승전 기념식에서 군대가 행진하는 영광을 누린다.
태국의 영토 침탈 시기는 우리의 구한말과 겹친다. 조선은 열강 중 누가 가장 강자인지를 계속 저울질했다. 처음에는 일본에 눈길을 줬다가 삼국 간섭으로 일본이 중국 산둥반도를 토해내자 실력이 별거 아니네 하며 이번에는 러시아에 구애했다. 잘못 짚었고 결국 일본에 먹힌 다음에는 미국에 손을 내밀었지만, 미국은 그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태국도 비슷하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으로 갈아타며 눈치를 봤다.
동(남)아시아의 서글픈 역사는 나라마다 장면만 다를 뿐 대체로 비슷하다. 현재 태국과 가장 친한 나라는 일본이다. 두 나라 모두 왕실이 있는 입헌군주국이라 심리적 친밀도가 높다. 그러나 국제관계는 역시 돈이다. 2012년 일본의 태국 투자액은 태국 전체 외국 투자액의 63%였다. 이쯤 되면 좋게 말해 경제 공동체, 나쁘게 보면 경제 식민지다. 태국의 빈부격차는 세계 최고이거나 최소한 2등이다. 그런데도 사회갈등이 심각하지 않은 것은 종교 때문이다. 국교는 없으나 인구의 95%가 불교다. 다음 생에 좋은 지위로 태어나려면 덕을 쌓고 험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계급투쟁을 원초적으로 차단해버린 태국 지배계급의 행운 혹은 안목이 돋보이지만 적당한 갈등이 사회의 성장 동력임을 생각할 때 나라 전체로는 불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