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천연수소 에너지 시대 열릴까
기후 위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청정연료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특히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는 수소 개발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그런데 자연의 수소를 청정연료로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속에서 무한히 꺼내서 말이다. 실제로 지구 곳곳에서는 천연수소 매장지가 속속들이 발견되고 있다. 과연 천연수소가 새로운 에너지 시대를 열 수 있을까.
맨틀 상부에는 철이 풍부한 감람석이 포함돼 있다. 감람석이 물과 산화반응을 일으키면 천연 수소가 발생한다. /ⓒ wikipedia
맨틀 상부에는 철이 풍부한 감람석이 포함돼 있다. 감람석이 물과 산화반응을 일으키면 천연 수소가 발생한다. /ⓒ wikipedia
천연수소의 발견은 1987년 말리에서 시작됐다. 말리 부라케부구에서는 한창 시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 시추공이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파낸 구멍에서 바람이 나와 슬쩍 들여다봤다. 그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는 <사이언스>를 통해 “불은 푸른 빛이었고, 검은 연기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폭발 상황을 전했다. 사고 발생 후 우물은 틀어막았고, 그곳은 저주받은 장소로 잊히는 듯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2007년, 석유 회사 페트로마(현 하이드로마)의 알리오우 디알로 회장은 “저주받은 곳을 축복의 장소로 바꾸고 싶다”며 우물이 포함된 부지를 사들였다. 실험 결과 우물에서 나온 가스의 98%가 수소였다. 이후 수소를 연소시키는 발전기를 설치해 마을에 전력을 공급했다. 어둡던 마을에는 빛이 들어왔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 천연 수소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이후 수많은 연구가 진행됐고, 2022년 10월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전 세계 땅속에 5조 톤에 이르는 천연 수소가 매장돼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는 수천 년 동안 급증하는 전 세계 에너지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양이다.

지구에 천연 수소가 가득할 거란 추측은 점점 증명되고 있다. 고농도 수소가 누출되거나 매장돼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023년 10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팀은 프랑스 로렌 석탄 분지에서 천연 수소 매장 후보지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무려 2억5000만 톤의 자연 발생 수소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외에 러시아, 나미비아, 미국 등지에서도 천연 수소 매장 후보지가 발견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는 천연 수소 매장지 발굴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른바 ‘천연 수소 골드러시’가 진행 중인 셈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에서는 2022년부터 한국석유공사가 천연 수소 탐사를 시작했다. 탐사 결과 자연 수소 측정장치를 활용해 전국 5개 지점에서 수소 발생을 확인했고, 현재 분석해 연구 중이다.

전 세계가 천연 수소에 주목하는 이유는 있다. 청정연료인 동시에 무한히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수소(H₂)는 석유, 석탄 등 다른 화석연료와 달리 탄소(C)를 포함하고 있지 않아 연소할 때 이산화탄소(CO₂)와 같은 온실가스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수소를 생산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다만 석유나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연소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발생이 불가피했다. 반면 천연 수소는 지질 활동을 통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다. 미국지질조사국 발표에 따르면 지구에 매장된 천연 수소는 약 5조 톤으로 추정된다. 이는 인류가 1만 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천연 수소는 자연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생성된다. 기반암의 방사성원소에서 나오는 방사선 에너지가 물 분자를 쪼개 만들어지고, 새로 노출된 암석 표면과 물이 접촉해 풍화작용이 일어날 때도 만들어진다. 유기물의 분해작용이 일어날 때도 천연 수소가 발생한다.

무엇보다 지구 깊은 곳에서 물과 암석이 반응하며 생성되는 경우가 많다. 지표면으로부터 지하 100km 깊이에는 맨틀 상부가 있는데, 여기에는 감람석이 풍부하다. 감람석은 철이 풍부한 암석으로, 고온고압 상태에서 물 분자를 만나면 산화반응을 일으킨다. 이 반응으로 광물 ‘사문석’이 만들어지며, 부산물로는 천연 수소가 생성된다. 이 때문에 천연 수소 상당수가 맨틀 상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부터 일어난 다양한 지각 현상 덕분에 상부 맨틀은 인류가 직접 채취할 수도 있다. 한 예로 강한 화산 분출이 일어날 때, 맨틀 윗부분이 뜯겨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를 맨틀 포획암이라 부른다. 발산 경계 일부에서도 노출된 맨틀을 확보할 수 있다. 이 경우 지표에 맨틀이 드러나 있어 암석을 긁어와 시료로 이용한다.

지난 2월에는 알바니아의 오피올라이트 암석 지대에 있는 크롬 광산에서 역대 최대량의 천연 수소가 방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연료 없이는 살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무한히 샘솟는 천연 수소 매장지를 여러곳에서 찾아낼지도 모른다.√ 기억해주세요
[과학과 놀자] 감람석과 물 반응으로 생성…"1만년 사용량 매장"
전 세계 땅속에 5조 톤에 이르는 천연 수소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에서 천연수소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성된다. 지구 깊은 곳에서 물과 암석이 반응하며 생성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표면으로부터 지하 100km 깊이에는 맨틀 상부가 있는데, 여기에는 감람석이 풍부하다. 감람석은 철이 풍부한 암석으로, 고온고압 상태에서 물 분자를 만나면 산화반응을 일으킨다. 이 반응으로 광물 ‘사문석’이 만들어지며, 부산물로는 천연 수소가 생성된다. 이 때문에 천연 수소 상당수가 맨틀 상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혜인 과학칼럼니스트·前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