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과민성장증후군'은 왜 생길까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혹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해 당장 화장실에 가야 할 만큼 난감한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대장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도 복통과 설사 등이 반복되는 질환을 '과민성장증후군'이라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의 약 10%가 과민성장증후군을 앓고 있다. 심한 사람의 경우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불편함을 겪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장내미생물에 영향을 주고, 장 보호세포의 수가 줄어들어 과민성장증후군 증상이 나타난다.  ⓒ Cell Metabolism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장내미생물에 영향을 주고, 장 보호세포의 수가 줄어들어 과민성장증후군 증상이 나타난다. ⓒ Cell Metabolism
과민성장증후군을 일으키는 명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내장기관의 과민성, 장의 운동성 변화, 유전적 요인, 장내 세균 불균형 등 여러 가지가 이유로 꼽히고 있다. 스트레스도 그중 하나다.

뇌에서 느끼는 정신적 긴장감과 부담감이 어떻게 멀리 떨어진 대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걸까. 이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 불리는 이론이다. 장과 뇌는 신경계, 호르몬, 면역체계 등을 통해 밀접하게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때 장내에 살고 있는 미생물이 이들의 중개 역할을 한다. 장내 미생물이 만드는 물질이 신호가 되어 뇌에 변화를 일으키고, 반대로 정신적 스트레스나 기분 변화가 장내 미생물에 영향을 미쳐 장의 활동이 바뀐다.

많은 과학자가 스트레스와 과민성장증후군의 관련성을 밝혀내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약학대학교 연구팀이 스트레스가 어떻게 장내 미생물에 영향을 주어 과민성장증후군 증상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냈다. 연구팀은 2주간 생쥐를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한 뒤 대장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했다. 그 결과, 스트레스를 받은 쥐에서는 바이러스, 세균 등 병원체로부터 대장을 보호하는 세포의 수가 줄어들었다. 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쥐에서는 이런 변화가 없었다.

이 변화는 교감신경으로 장내 미생물 군집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우리 몸에는 내부 장기를 조절하는 자율신경계가 있다.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나뉘며, 서로 반대되는 ‘길항작용’을 한다. 교감신경이 흥분을, 부교감신경은 이완을 담당한다. 연구팀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대장에 살고 있는 여러 세균 중 젖산균(락토바실루스)이 증식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젖산균은 인돌-3-아세트산(IAA)이라는 물질을 만드는데, IAA 수치가 높아지면 쥐의 장 줄기세포가 보호세포로 분화되지 못한다. 이로 인해 대장의 세포들이 손상에 취약해지고, 장의 기능에도 문제가 생겨 복통이나 설사 등의 과민성장증후군 증상이 나타난다.

연구팀은 쥐에게서 나타난 과정이 사람에게서도 비슷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대변을 분석한 결과, 우울증이 있는 사람의 대변에서 젖산균과 IAA가 더 많이 검출된 것이다. 연구팀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장내 미생물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과민성장증후군은 완치가 어렵지만 식단을 조절하면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호주 디킨대학교 연구팀은 과민성장증후군 환자 59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에게는 6주간 지중해식 식단을 먹게 하고, 다른 집단에게는 평소대로 식사하도록 했다. 그 결과, 지중해식 식단을 먹은 사람들의 83%가 과민성장증후군 증상을 덜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장과 뇌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개선할 수 있다면 과민성장증후군 증상도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생활 습관도 과민성장증후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홍콩 중문대학교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에서 평균연령 55세인 성인 6만4268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과민성장증후군을 앓지 않았는데, 이후 이 중 1.5%에 해당하는 961명이 과민성장증후군을 진단받았다. 연구팀은 이들을 대상으로 건강과 관련된 다섯 가지 생활 습관(금연, 최소 7시간 이상의 수면, 운동, 균형 잡힌 식단, 낮은 음주량)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 중 한 가지 습관만 갖고 있어도 과민성장증후군의 발병률이 21% 낮았다. 3~5가지 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발병률이 42%나 낮았다. 연구팀은 “이 중에서도 매일 밤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과민성장증후군 위험을 줄이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과민성장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장과 뇌가 우리 몸과 마음의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스트레스 관리와 올바른 생활 습관을 통해 증상을 줄여나가보자. √ 기억해주세요
[과학과 놀자] 스트레스 받으면 장내 미생물도 불안정해져
장과 뇌는 신경계, 호르몬, 면역체계 등을 통해 밀접하게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때 장내에 살고 있는 미생물이 이들의 중개 역할을 한다. 장내 미생물이 만드는 물질이 신호가 되어 뇌에 변화를 일으키고, 반대로 정신적 스트레스나 기분 변화가 장내 미생물에 영향을 미쳐 장의 활동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