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논술 강의노트
연세대 인문논술(2)
지난 시간 연세대학교 23학년도 기출문제 1-1번은 ‘설명’을 요구하는 문항이었습니다.연세대 인문논술(2)
[문제 1-1] 제시문 (나)를 바탕으로 기술에 대한 제시문 (가)와 제시문 (다)의 주장을 설명하시오.
설명은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함”을 뜻합니다. (나)를 바탕으로 설명하라는 요구는 각각의 제시문을 (나)의 설명과 개념으로 재해석해 풀어내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겠네요. 예를 들어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설명할 때 [정치적]인 관점으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존엄성과 권리, 시민의 주체성과 권력분배라는 개념을 동원해 풀어낼 거예요. 하지만 [경제적]인 관점으로 풀어낸다면 자유, 효율성, 장기성 등의 개념을 사용하겠지요 설명이라는 문제를 대할 때에는 기준 제시문이라는 프레임을 적극 사용해 대상을 새롭게 풀어내겠다고 생각해보면 본질적으로 출제 의도에 맞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가) 제시문은 ‘묵자’의 주장을 설명합니다. 묵자는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유용한 것을 만드는 기술이 훌륭하다고 주장하며, 기술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의로운 일에 써야 함을 역설합니다. 묵자의 ‘유용하지 않은 기술’을 풀어낸다면 (나) 제시문의 순수 기술 개념을 사용하면 될 것 같지요? 아래의 내용을 활용해봅시다.
(나) 반면에 그 자체로서는 수익성이 없지만, 원인을 발견하고 이치를 밝히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방대한 기술들이 있다. 순수하게 사물의 본성 그 자체를 제대로 알기 위해 사용되는 이러한 기술들은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과도 같은 지식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지식은 그 자체로서는 당장 눈에 띄게 큰 역할을 하지 못할지라도 가장 고귀한 원리의 원천을 담고 있기에 천지 만물의 모든 형체와 삼라만상의 오묘한 운행을 속속들이 밝혀준다. 이런 기술을 추구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 같은 인물을 한껏 지원했던 나라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예술적, 문화적 번영뿐만 아니라 경제적 풍요까지 누렸다.
한편 (다) 제시문은 미래의 충격에 대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기술 진보를 앞당기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과학기술의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기술 진보는 더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응되는 것을 (나)에서 찾아본다면 ‘언제나 우선 적응부터 하려고 덤비는 사람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입니다.
(나) 기술을 사용할 때 어떤 순수한 이론을 수립하려 하기보다는 언제나 우선 적응부터 하려고 덤비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으로 당장 이익과 성과를 얻으려고, 또한 자기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이런 종류의 일을 하더라도 결코 무익한 것은 아니라는 보증을 얻으려고, 나아가 그 업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높은 평가를 받아 자기 이름을 빛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시기하고 경쟁하다 보면 근시안적 이익만 가져다주는 자극적인 기술이 주목받게 된다. 기술의 사용 방식은 실로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지성의 계발에 도움이 되는 것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기술을 응용부터 하려는 사람들은 진리 탐구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는 이들이다. 이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면 관심도 두지 않고 손수 나서지도 않는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만 가져다주는 이런 기술의 남용은 오히려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도 해칠 것이다.
답안을 모아본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답안] 제시문 (나)는 자연의 원리와 사물의 본성에 가까운 순수한 이론을 수립함으로써 인간 지성의 계발에 일조하는 기술이야말로 참다운 기술 사용의 모범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바탕으로 할 때 제시문 (가)의 주장은 기술의 장기적 발전 원리에 대한 몰이해로 설명할 수 있다. 묵자는 인간에게 해악이 없고 유용한 것만을 진정한 기술로 단정하는데, 그 과정에서 순수하게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려 한 공수반의 기술까지 무가치한 것으로 매도한다. 아마도 그는 전쟁 상황에서 당장의 효과를 얻기 위해 유용한 기술에만 천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방대함을 간과하면 장기적 기술발전의 초석이 될 자연 원리나 특성 발견이 지체되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친 번영까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제시문 (다)는 ‘우선 적응부터 하려고 덤비는’ 사람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다)는 기술 진보가 일으킨 해악은 분명하지만, 다가올 미래충격에 대비해 인간과 사회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응용기술의 진보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를 참조하면 이러한 관점이 자연과 인간을 파괴해온 것인데, (다)는 여전히 그러한 해악을 경시하며 응용 기술의 발전을 주장한다. 기술의 잠재적 위험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기술이 무익한 것이 아니라는 증명을 얻기 위해 ‘자극적인’ 응용 기술을 고집하며 균형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663자)
위 문제에서는 기준 제시문 (나)가 (가)와 (다)의 응용 기술 옹호론을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바탕으로 한 설명의 결론이 비판적 평가의 색채를 띠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2번은 직접적으로 ‘평가’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있습니다. 평가는 가치나 수준을 매겨보는 행위입니다. 연세대 논술에서 가장 중요한 문항 유형이 바로 위와 같은 설명과 평가입니다. 특히 다면적인 평가는 연세대 논술의 핵심 유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 1-2] 아래 [지문 A]를 바탕으로 제시문 (가)와 제시문 (다)를 평가하시오.
지문 A는 기술의 양면성과 한계에 대해 지적합니다. 생태환경 고갈 등의 문제를 묵과하기가 어렵다는 지문 A의 논지를 바탕으로 할 때, (가)와 (다)는 아래 답안처럼 평가될 수 있습니다.
[답안] [지문 A]는 기술의 양면성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기술 발전은 인류의 풍요와 위상 변화를 가져왔으나 생태환경의 고갈과 파괴를 초래했다. 게다가 인간마저 새로운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는데, 문제는 이미 기술의 부작용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까지 치달았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에 둘 때 제시문 (가)의 한계는 분명하다. 묵자는 기술의 양면성을 인정하고 있는 데다가 인간에게 해악이 될 기술을 거부하며 옥석을 가리고자 한다. 이는 [지문 A]의 역사적 관점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이로운 기술도 장기적으로는 커다란 위험성을 함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묵자가 말한 ‘나무를 깎은’ 수레 기술이 바로 자연의 희생을 볼모로 얻어낸 운송과 산업 발달을 상징한다. 그의 견해는 산업혁명을 거쳐 생태적 위기에 내몰린 현재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러한 평가와 견줄 때 제시문 (다)에 대해서는 더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의 필자는 기술발전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나 기술의 악용 가능성 등 다양한 피해와 부작용을 역사적 관점에서 목도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해악을 과소평가하고 오히려 기술 진보를 앞당기자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응용 기술에 의한 문제 해결 가능성을 맹신함으로써 이미 기술이 통제 불가능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점을 무시한 것으로, 미래에 대한 예방이 아니라 충격을 앞당기자는 논리나 다름없다. (685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