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하면서 주식, 암호화폐 같은 위험자산(risky asset)은 물론 안전자산(riskless asset)의 대명사인 금(金)값마저 치솟고 있습니다. 경제가 불안해지면 금에 수요가 몰리는 건 당연한데, 지금처럼 경기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우세할 때 금값이 강세를 띠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위험자산·안전자산을 가리지 않고 자산 가격이 모두 오르는 이른바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가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암호화폐는 비트코인 현물의 가격 움직임을 따르도록 만들어진 상장지수펀드(ETF)가 최근 미국 증시에 상장되면서 상승 탄력을 받았죠. 여기에 금리인하 기대감이 더해져 우리 돈으로 개당 1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작년 6월 이후 거의 세 배가 뛴 것입니다. 국제 금값도 지난 11일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선물거래 기준)에서 온스당 2184달러를 기록하는 등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자산시장의 요즘 분위기는 마치 주식 거래창의 모든 종목에 상승을 뜻하는 ‘빨간불’이 들어온 듯합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이 말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란 표현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더라도 경제 현상의 이면에는 논리적 이유와 배경이 분명히 있습니다. 4·5면에서 금리와 자산시장의 관계, 에브리싱 랠리의 원인, 금융 상식을 뒤집는 또 다른 기현상 등을 살펴보겠습니다.금리는 금융시장과 경제 활동의 '신호등'
경기 조절은 물론, 자산 가격에 큰 영향 모든 자산의 가격이 동시에 치솟는 ‘에브리싱 랠리’를 촉발한 계기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 시사입니다. 그렇다면 금리(金利)란 무엇이고, 어떻게 결정되며, 왜 이렇게 경제의 향방을 좌우하는지 이해를 다져볼 필요가 있겠죠?
금리는 ‘돈의 가격’
궁금증부터 풀어봅시다. 흔히 말하는 이자와 금리란 용어는 무엇이 다를까요? 이자는 교환할 수 있는 물품이라면 무엇이든 빌리는 데 따른 대가를 말합니다. 금리는 이 가운데서 금융자금을 빌려쓴 대가를 가리킵니다. 돈을 꿔주고 빌리는 가운데 결정되는 자금의 가격이죠. 한편으론 원금에 대한 이자의 비율, 즉 이자율과 같은 말입니다.
금리가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학파마다 다릅니다.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실물’ 측면을 중시합니다. 돈의 가격도 일반 상품처럼 수요와 공급이 결정한다고 봅니다. 투자(수요)와 저축(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수준에서 이자율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케인스학파는 이자율을 ‘화폐’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케인스는 재산을 현금이 아닌 채권과 같은 금융자산으로 보유할 경우, 그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 이자라고 봤습니다. 채권은 일정한 기간 약속한 금리에 돈을 빌리고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돌려주는 금융상품인데요, 채권의 표면에는 채권 액면가격에 대한 연간 이자 지급률이 표기돼 있습니다. 이 표면금리(coupon rate)가 이자율의 대표적 예입니다.
자금 배분, 경기 조절 등 역할
금리가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볼까요? 먼저 자금 배분 기능입니다. 금융이란 돈이 남아도는 곳에서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인데, 그 핵심 수단이 바로 금리입니다. 돈이 급하게 필요하면 금리를 더 줘야겠죠. 돈은 금리가 높은 쪽으로 쏠리게 돼 있습니다. 금리는 ‘금융을 촉진하는 엔진’인 것이지요.
다음으로 경기조절 기능입니다. 시중에 돈이 풍부할 때는 금리가 높지 않아요. 그런데 경기가 점점 좋아지는 신호를 보내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고 돈에 대한 수요도 동시에 증가합니다. 자연히 금리는 오릅니다. 경제가 호황을 넘어 과열 단계까지 나아가면 금리는 더 높아지고, 개인이나 기업 또는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기가 부담스러워집니다. 빚을 내 집을 사기도 어렵고, 소비가 꺾이며, 기업 투자는 뒤로 미뤄질 수 있죠. 금리는 이런 기능을 통해 경기과열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합니다.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조절해 시중금리를 움직이고, 결국 물가안정과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금융통화정책을 폅니다.
금리는 또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경제의 위기 상황을 미리 알려주기도 합니다.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만들 위험 요소가 생겨나면 금융회사들이 신규 대출을 꺼리고 기존 대출을 적극 회수하면서 금리는 오르게 됩니다.
금리는 자산 가격과 반대 움직임
금리는 물가나 자산 가격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주목할 부분은 서로 반대로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금리가 낮은 수준이라면 내구재·생필품·사치재 등의 소비, 부동산·원자재·주식 같은 자산 수요가 늘어나고 물가가 높아질 수 있어요. 상대적으로 돈의 가격이 싸기 때문입니다. 낮은 금리가 유독 자산 가격만 앙등시키면 이를 ‘자산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집값이 폭등하던 2000년대 초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집중된 시기 모두 엄청나게 풀린 돈의 힘이 주택과 원자재, 주식 등 자산 가격을 밀어 올렸죠.
높은 수준에 머물던 금리가 떨어질 조짐을 보여도 자산 가격이 꿈틀댈 수 있습니다. 금리가 낮아지면 경기가 활성화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안정성보다는 수익성에 대한 기대가 높은 자산, 즉 위험자산에 돈이 몰립니다. 주식, 심지어는 가격이 급등락하는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죠. 이를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가 강해진다고 표현합니다. 이때 안전자산인 금이나 달러 같은 기축통화(현금)에 대한 선호는 약해집니다. 위험자산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NIE 포인트1. 채권금리에는 표면금리 외에 시장금리도 있다. 차이점을 알아보자.
2. 채권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그 원리를 이해해보자.
3.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에는 어떤 자산들이 포함되는지 확인해보자.금리인하·달러 약세 기대가 부른 기현상
'에브리싱 랠리'가 만들 거품 주의해야죠 금리가 떨어지면 위험자산 선호가 강해져 통상 ‘주식>채권>금이나 현금’ 순으로 돈이 몰립니다.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개당 1억 원이 넘는 초강세를 보이는 데에는 금리인하 기대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는 금의 가격이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수요가 많은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상식 뛰어넘는 ‘에브리싱 랠리’
과거엔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가격이 대체로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사태가 처음 발생한 2020년 초, 금은 최고 안전자산으로 인정받으며 온스당 1500달러에서 8월 2000달러까지 상승했습니다. 반면 비트코인은 같은 해 2월 초 1180만 원에서 3월 중순 626만 원으로 뚝 떨어졌죠. 미국에서 비트코인의 선물거래가 시작된 2017년에도 그랬습니다. 그해 연초 개당 1000달러대이던 비트코인 가격은 연말에 무려 1만9000달러까지 폭등했습니다. 미국 빅테크들이 상장된 나스닥의 지수도 같은 기간 30% 가까이 올랐어요. 이때 금 가격은 반대로 떨어집니다.
지금은 양상이 전혀 다릅니다. 올 들어 나스닥지수는 연초 이후 지난 12일까지 10%가량 뛰었지요. 비트코인 가격은 같은 기간 64%나 올랐고요. 그런데 금값도 폭이 작긴 하지만 4.5% 상승했습니다. 부동산 자산 정도만 빼고 웬만한 자산 가격은 다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는 이처럼 상식을 뛰어넘고 있죠.
지정학적 위험 고조 등도 요인
금값과 암호화폐 가격이 각각 오르는 데엔 그럴 만한 사정이 있긴 합니다. 금의 경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과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 간 전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안보 불안 등 지정학적 위험이 커진 영향을 받았죠. 세계정세가 불안해지면 가장 안전한 자산인 금을 서로 보유하려 경쟁합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외환보유액 3000억 달러에 대해 동결 조치를 취하자, 중국·인도 등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금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비트코인은 올해 채굴량(공급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반감기가 예정된 데다,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뉴욕 증시 상장이라는 큰 호재가 가격을 밀어 올렸죠. 여기에 금리인하 기대가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금리인하로 돈의 가격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투자에 용감해지나 봅니다. 이런 요인들을 감안하더라도 에브리싱 랠리는 기현상이 아닐 수 없어요. 그래서 금리인하보다는 그로 인한 달러화 약세 전망에 주목하게 됩니다. 달러 가치가 약해질 것이란 예상에 금값도, 다른 자산의 가격도 모두 상승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금은 달러화의 ‘대체재’
금이나 달러나 모두 안전자산에 속하지만, 금이 조금 더 안전한 자산으로 분류됩니다. 그래서 대체재와 비슷한 면모를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중앙은행(Fed)이 양적완화 정책을 펼 때처럼 달러를 공중에서 뿌리다시피 하면 그 가치는 마구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이때 금(보유)은 확실한 피난처를 제공합니다. 금을 ‘최종 화폐’ 또는 ‘궁극적 화폐(currency of last resort)’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달러는 은행에 넣어두면 이자라도 생기는데, 금은 부스러기 하나 안 생깁니다.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땐 더욱 그렇습니다. 달러 가격이 뛰고, 금을 팔아 달러를 사려는 수요가 몰리면 금값은 더 떨어집니다. 역사적으로도 금값이 달러와 반대 그래프를 그린 경우가 많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른 미국 4위 대형 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2008년 후반 달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요, 이때 금값은 반대로 급락했지요.
세계 주요국들이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돈을 엄청나게 풀면서 2021년에도 여러 자산의 가격이 급등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침체된 소비를 살릴 수 있다는 기대를 안겨줬지만, 지금은 물가 상승세를 다시 자극할까 걱정입니다. 에브리싱 랠리가 거품까지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NIE 포인트1. 1944년 브레튼우즈체제 출범 이후 달러화 가치가 어떻게 변동해왔는지 살펴보자.
2. 금 투자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아보자.
3.금본위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있는 반면, 암호화폐가 현재의 법정통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