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바이오로봇
인간 세포로 만든 바이오로봇이 개발됐다. 로봇처럼 스스로 움직이며, 치유 능력도 지닌 것으로 확인됐다. 순수 인간 세포로만 이뤄져 있다는 것은 인체 내에서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의미다. 환자가 자가세포를 이용해 바이오로봇을 생성하면 치료 중에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포가 어떻게 로봇처럼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기관 세포를 배양해 만들어진 앤스로봇.(왼쪽 사진) 섬모(노란색)는 앤스로봇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든다. 오른쪽 사진은 앤스로봇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 /Gizem Gumuskaya/Tufts University
인간의 기관 세포를 배양해 만들어진 앤스로봇.(왼쪽 사진) 섬모(노란색)는 앤스로봇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든다. 오른쪽 사진은 앤스로봇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 /Gizem Gumuskaya/Tufts University
로봇은 대개 금속 부품이나 전기 배선 같은 기계적인 부분으로 이뤄져 있어 동력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기존의 바이오로봇은 고분자 탄성 중합체에 금속을 증착한 뒤 금속 위에 세포를 배양해 근육조직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던 2021년, 미국 터프츠대와 하버드대 공동 연구팀은 동물세포로만 이뤄진 로봇을 개발했다. 세포의 특성을 이용해 세포가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도록 만든 것이다. 연구팀은 아프리카발톱개구리(Xenopus laevis)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로봇을 제작하고, ‘제노봇’이라 이름 붙였다.

제노봇은 개구리의 피부 세포와 심장 근육 세포를 이용해 만들었다. 피부 세포는 몸통 역할을, 수축·이완 운동을 하는 심장 세포는 엔진 역할을 하며 몸통 세포를 움직였다. 이후 연구팀은 세포 표면에 섬모를 추가해 움직임을 빠르게 할 수 있는 ‘제노봇 2.0’을 선보였다. 이는 손상을 입어도 원래 모습으로 회복되는 자가 치유 능력도 보여줬다.

이듬해 연구팀은 자가 복제가 가능한 ‘제노봇 3.0’을 공개하기도 했다. 자가 복제 능력은 상처 부위에 세포재생을 촉구해 치료를 도울 수 있다. 하지만 과학계에서는 제노봇의 자가번식 능력이 양서류의 특징으로 나온 결과라며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같은 연구팀이 인간 세포로 만든 ‘앤스로봇’을 개발했다. 그간 양서류 특징 논란을 한순간에 잠재울 수 있는 연구 결과였다. 연구팀은 이번에 개발한 앤스로봇이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손상된 조직을 스스로 치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름은 인류를 뜻하는 ‘앤스’와 ‘로봇’의 합성어다.

앤스로봇은 제노봇과 같이 섬모를 이용해 움직인다. 우리 몸의 기관 내벽은 털처럼 생긴 섬모로 덮여 있는데, 기관으로 세균·먼지 등이 유입되면 이 섬모가 움직이면서 이물질을 걸러낸다. 앤스로봇은 이런 섬모의 특징을 이용하기 위해 인간 기관 내벽에 있는 상피세포를 배양해 만들었다.

연구팀은 특정 조작을 통해 단일 상피세포가 다세포 구조로 성장하도록 설계했다. 이렇게 만든 앤스로봇의 크기는 30~500μm(마이크로미터, 100만 분의 1m)로 다양했으며, 이들은 세포 표면에 달린 섬모를 이용해 초속 5~50μm로 쉬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생존 기간은 최대 60일인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앤스로봇의 움직임을 통계적으로 조사한 결과, 모양과 섬모로 뒤덮인 정도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데, 구형이며 세포 전체가 섬모로 덮여 있는 부류와 찌그러진 모양에 특정 부분에만 섬모가 응집돼 있는 부류다. 세포 전체가 섬모로 덮여 있는 앤스로봇은 원을 그리면서 움직였으며, 섬모가 특정 부분에만 응집돼 있는 앤스로봇은 직선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발견됐다. 또 배열에 따라서도 움직임이 달라졌는데, 특정 배열에서 각 세포가 섬모를 이용해 헤엄치듯 움직이며 하나의 로봇 형태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앤스로봇이 단순히 움직이기만 하는 로봇이 아니라 상처 치유 가능성도 있음이 확인됐다. 상처를 낸 뉴런 샘플에 앤스로봇을 투입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손상된 틈이 3일에 걸쳐 복구되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앤스로봇이 상처 치유 능력을 지녔으며, 손상된 신경세포의 치료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앤스로봇의 능력이 충분히 검증된다면, 손상된 망막이나 척수를 치료하는 등 의학 분야에 다양한 곳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환자 개인의 세포를 채취해 원하는 모양과 움직임을 나타내도록 설계하면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치료할 수도 있다. 또 최대 두 달만 생존하기 때문에 치료가 끝나면 신체에 흡수돼 배출된다는 특징도 장점이다. 심지어 유전적인 조작도 없어 진화할 우려도 없다. 인간 세포를 이용한 첫 연구고, 아직 앤스로봇 작용에 대해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머지않아 부작용 없이 치료받을 날을 기대해도 좋다.√ 기억해주세요
[과학과 놀자] 인간 세포로 만든 로봇…척수 치료 등에 큰 도움 기대
앤스로봇은 제노봇과 같이 섬모를 이용해 움직인다. 우리 몸의 기관 내벽은 털처럼 생긴 섬모로 덮여 있는데, 기관으로 세균·먼지 등이 유입되면 이 섬모가 움직이면서 이물질을 걸러낸다. 앤스로봇은 이런 섬모의 특징을 이용하기 위해 인간 기관 내벽에 있는 상피세포를 배양해 만들었다. 앤스로봇 크기는 30~500μm(마이크로미터, 100만 분의 1m)로 다양했으며, 이들은 세포 표면에 달린 섬모를 이용해 초속 5~50μm로 쉬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생존 기간은 최대 60일인 것으로 확인됐다.

조혜인 과학칼럼니스트·前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