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그래픽=이정희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이정희 한국경제신문 기자
비트코인 가격을 따라 움직이게 만든 금융상품인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11개가 지난 10일 미국 증시에 처음으로 상장됐습니다. 비트코인의 미래 가격을 반영하는 선물 ETF가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거래되고 있지만, 현물을 기초자산으로 한 ETF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첫 승인을 받은 겁니다. 이로써 세계 최대 자본시장인 미국 증시를 통해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습니다. “암호화폐가 제도권(시장)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암호화폐는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입니다. 나카모토 사토시(일종의 필명)란 사람이 2008년 11월 ‘개인 간(P2P) 전자 화폐 시스템’이란 글을 이메일로 뿌리면서 등장했는데요, 나카모토는 이 글에서 정부(중앙은행)의 화폐 발행 독점권을 비판합니다. 정부로선 화폐 발행량을 늘리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으로 사람들이 고통받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탈중앙화한 시스템을 만들고 거기에 맞는 전자화폐를 개발해 통용시키겠다고 선언합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이 이런 나카모토의 꿈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됩니다. 암호화폐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통화와 경쟁하며 과연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세계 각국이 대항마로 추진 중인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는 암호화폐와 어떻게 다른지 4·5면에서 살펴봤습니다.암호화폐, '투기의 온상' 오명 벗을지 관심
'디지털 금(金)' 공인받는 계기 마련했죠
비트코인 현물 상자지수펀드(ETF)가 미국 나스닥시장에 첫 상장된 지난 11일, 자산운용사 블랙록 관계자들이 거래시작 벨을 울리며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비트코인 현물 상자지수펀드(ETF)가 미국 나스닥시장에 첫 상장된 지난 11일, 자산운용사 블랙록 관계자들이 거래시작 벨을 울리며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암호화폐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15년이 흘렀습니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락하거나 거래와 관련한 큰 사건이 터질 때만 관심이 쏠린 터라 암호화폐의 개념이 가물거릴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살펴볼까요?

디지털 신용화폐, 발상은 훌륭하지만…

현재 통용되는 화폐 가운데 금화나 은화를 빼고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경우는 드뭅니다. 세계 각국의 법정화폐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 사회적 약속에 뿌리를 둔 신용화폐의 일종이죠. 이런 중앙은행이나 금융기관의 존재 없이도 안전하게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화폐는 과연 없을까요? 그러려면 일단 거래 당사자 외에는 거래 내용을 볼 수 없게 암호화해야 할 겁니다. 다음으로 이런 거래 정보를 담은 장부인 원장(ledger, 元帳)을 모든 거래 당사자가 보관하고, 새로운 거래가 발생하면 그 내용을 기록한 장부를 똑같이 업데이트하도록 하면 됩니다.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이 블록체인(blockchain)이고, 이를 기초로 암호화폐가 탄생한 것입니다.

요즘 ‘OO페이’ 등으로 간편하게 쓸 수 있는 디지털화폐가 많은데, 이렇게 어려운 개념의 암호화폐가 왜 필요할까요? 예를 하나 들어보죠. 우리는 몸이 아플 때 병원과 약국을 이용하며 많은 개인정보를 남기게 됩니다. 한편으론 편리하지만, 건강 관련 개인정보가 아무렇게나 유통되지 않을까 불안한 게 사실입니다. 개인이 자신의 건강 정보를 직접 소유·통제하고, 의료기관이 개인의 허락을 받아 그 정보를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관련한 암호화폐를 개발해 이런 데이터의 흐름과 이용을 원활하게 해준 사람에게 대가로 준다면 인기가 많을 겁니다. 암호화폐는 이와 같은 디지털 시대의 요구로 등장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암호화폐 자체가 투기의 온상처럼 된 점은 큰 문제입니다. 2009년 비트코인 한 개 가격은 0.0009달러에 불과했어요. 경품으로 비트코인을 받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이게 2021년 9월 우리 돈으로 8000만 원을 넘더니, 다시 200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가 이번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기대감에 6000만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시가총액 51조 원까지 상승했던 테라-루나 코인은 2022년 가치 유지에 대한 의문이 확산되며 가격이 거의 제로(0)가 되고 맙니다. FTX 같은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파산하면서 투자자들이 어마어마한 피해를 본 부작용도 적지 않았습니다.

안전한 거래, 수요 급팽창에 관심

하지만 이번 비트코인 현물 ETF의 상장 및 거래 승인으로 암호화폐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누구나 증권계좌를 통해 비트코인을 사고팔 수 있게 됐고,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거래를 승인함으로써 어느 정도 안전한 거래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의 말부터 달라졌습니다. 그는 2021년 비트코인 선물 ETF를 승인하고 현물 ETF는 불허하면서 “투자자들은 암호화폐 시장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으며, 마치 서부시대와 같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는데요, 이번엔 확 바뀌었습니다. 겐슬러 위원장은 “증권이 아닌 원자재 현물 ETF를 감독한 SEC의 경험을 비트코인 ETF 거래를 감독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할 것”이라고 했죠. 암호화폐에 대한 감독당국의 입장이 그만큼 너그러워졌고, 달라진 암호화폐의 위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암호화폐 수요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팽창할 겁니다. 미국 증권시장은 세계 증시 시가총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최대 자본시장이기 때문입니다. ETF로 좁혀보면 세계 ETF 거래량의 70%가량이 미국에서 이뤄집니다. 블랙록, 피델리티 등 전통적인 자본시장 참여자들이 이 ETF를 사고판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니 비트코인 ETF로 132조 원에 달하는 투자금이 몰려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겁니다. 2004년 금 ETF가 나온 뒤 금 관련 투자가 혁명적으로 바뀐 때가 있었는데요, 이번엔 암호화폐가 ‘디지털 금’으로 등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NIE 포인트1. 블록체인 기술과 그에 기반한 암호화폐의 구조에 대해 공부해보자.

2.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한 암호화폐 매매가 왜 위험성이 큰지 토론해보자.

3. ETF가 무엇이고, 비트코인 ETF는 어떻게 거래되는지 알아보자.화폐는 가치저장, 교환·매매 수단이어야
암호화폐 한계 분명하다는 지적도 많아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미국 증시에 상장됨에 따라 비트코인 시세가 급등했다. 서울 강남의 한 암호화폐 거래소 전광판을 한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 /뉴스1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미국 증시에 상장됨에 따라 비트코인 시세가 급등했다. 서울 강남의 한 암호화폐 거래소 전광판을 한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 /뉴스1
화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기능을 갖춰야 합니다. 교환과 거래·지급결제의 수단,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매기는 수단, 마지막으로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 비트코인 가치가 비싸지 않았을 때는 피자 가게에서 비트코인을 돈 대신 받았다는 뉴스도 나왔죠. 당시 피자값을 비트코인으로 지불한 게 어리석은 일 같지만, 실은 비트코인 창시자인 나카모토 사토시의 생각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비트코인이 진정한 화폐가 될 수 없는 이유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은 그런 나카모토의 이상(理想)에 한 걸음 다가간 걸까요? 당장은 부정적 평가가 많습니다. 이번에 전 세계적 관심을 모은 것은 비트코인이 법정화폐를 대체할 수 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세계 곳곳의 자금이 얼마나 몰려들까’ ‘비트코인 가치가 얼마까지 상승할까’ ‘한국에서도 비트코인 ETF를 매매할 수 있을까’ ‘다른 코인에 미리 투자해볼까’ 등에만 관심이 쏠렸죠. 앞으로 비트코인이 교환과 매매, 지급결제 수단으로서 각광받을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투자 대상으로서의 암호화폐만 주목받으면서 역설적으로 ‘비트코인은 화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코인이 제도권 금융을 대체한다기보다 제도권 금융이 코인을 흡수하는 모양새라는 얘기도 있고요.

통화정책 혼란 부를 암호화폐의 위험성

그런데 한편에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암호화폐가 법정화폐로 통용될 가능성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껴온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 국제경제기구에 속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작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서울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암호화폐가 법정화폐로 인정되면 금리로 물가를 잡기 어려워지는 데다 돈세탁과 범죄가 난무하고, 세금 거두기도 힘들어지는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죠. 작년 10월 말 기준으로 세계 암호화폐의 시장가치는 약 1조2800억 달러(약 1720조 원) 규모에 달합니다. 이는 세계 4대 중앙은행(미국·영국·일본·유럽연합) 통화량(M2 기준, 84조2500억 달러)의 1.5%를 차지합니다. 적지 않은 규모이고, 앞으로 더 커질 수 있지요. 이 때문에 통화량과 금리를 조절해 물가와 경기를 관리하던 기존 통화정책의 작동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는 겁니다.

중앙은행과 암호화폐 격전 불가피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암호화폐의 부상에 대응할 카드를 연구해왔는데요, 그게 바로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입니다. 중국 등지에서 진행한 CBDC 실험을 보면, 개인은 일단 주민번호에 연계된 모바일 지갑을 만듭니다. 그리고 보유한 현금을 CBDC로 환전해 이 지갑에 전송하고 사용합니다. 은행 계좌에 돈을 넣거나 신용카드 가입·등록 과정 없이 그냥 지폐나 동전을 스마트폰 속에 담아 쓰면 됩니다. 하지만 많은 점에서 암호화폐와 다릅니다. 먼저 암호화폐는 분산 원장 기술을 사용해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데 반해, CBDC는 기존 화폐처럼 중앙은행이 관리·감독합니다. 또 암호화폐는 그 자체의 수급에 따라 가치가 변화하지만, CBDC는 액면가가 고정돼 있지요. 암호화폐는 보유자 이름을 숨길 수 있어 돈세탁 등 부정행위에 동원될 수 있지만, CBDC는 모든 거래 기록이 남아 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과거 “CBDC가 생기면 암호화폐는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의회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물론 반론이 없지 않습니다. 달러화가 불태환 기축통화가 됐을 때 금이 사라지지 않았듯, CBDC가 나온다고 해서 비트코인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주장이 그것입니다. 특히 달러 등의 가치에 연동되게 만든 스테이블 코인이 더욱 발전한다면 이런 가능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암호화폐가 세계 각국의 통화 체제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NIE 포인트1. 달러화, 금,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을 비교해보자.

2. 통화정책 효과가 암호화폐로 왜 약화할 수 있는지 토론해보자.

3. 중앙은행디지털화폐 실험이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