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마약의 중독성
마약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린다. 유명 연예인이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약했다는 소식부터 대량의 마약이 밀수입됐다거나 마약에 취한 운전자가 도로를 위험하게 달리다 검거됐다, 청소년이 마약 위험에 노출됐다는 소식까지. 마약이 연령,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점점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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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불리고 있지만 그 종류는 다양하다. 각각 중독성, 남용 피해, 작용 시간, 투여 방법 등이 다른데, 일단 법의 처벌 수위에 따라 크게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대마 등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마약’에는 아편, 모르핀, 헤로인, 코카인 같은 천연 마약과 메사돈, 염산페티딘 같은 합성 마약이 속한다. 또 흔히 ‘향정’이라고 줄여서 부르는 향정신성의약품은 본래 환자 치료 목적으로 사용됐으나 중독성이 있어 규제하는 약물로 필로폰(메스암페타민), LSD, 메스칼린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대마에는 대마초와 이를 압축한 해시시가 속해 있다.

마약을 투여하면 중추신경계가 흥분되거나 억제된다. 그 중심에는 사랑에 빠지거나 도박, 게임을 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있다. 도파민은 신경전달물질로 뉴런(뇌신경 세포)에서 분비되면 뉴런 사이의 공간인 시냅스를 지나 다른 뉴런으로 이동한다. 이때 분비된 뉴런이 적정량을 넘으면 도파민 운반체들이 시냅스에 있는 도파민을 제거해 알아서 적정량을 조절한다.

한데 마약은 이 조절 기능을 마비시킨다. 한 예로 코카인은 도파민 운반체의 활동을 방해해 지나치게 많은 양의 도파민이 시냅스에 그대로 잔류하게 한다. 그 결과 시냅스의 도파민 농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근처의 뉴런을 자극해 계속 흥분 신호가 전달된다. 이때 마약을 한 당사자는 기분이 좋아지는 도취감에 취하고 일상에서 느끼는 쾌감이 강렬해진다.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는 마약을 했을 때 변화하는 기분을 “평소에 느끼는 행복이 귓속말이라면 마약이 주는 쾌감은 귀에 확성기를 대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마약중독은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는 대상을 갈구하는 것과 다르다. 마약은 뇌 구조와 기능에 수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문제는 뇌는 한 번 변형되면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마약을 경험한 사람은 다시 마약을 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마약마다 중독 정도가 다른데, 필로폰은 코카인보다 중독성이 수십 배 높다. 모르핀을 100배 농축한 해로인 역시 중독성이 매우 높은 마약이다. 헤로인을 100배 농축한 펜타닐은 한 번이라도 투약하면 반드시 다시 찾을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팀은 생쥐 실험을 통해 마약중독 시 뇌의 변화를 관찰했다. 쥐에게 열흘간 필로폰을 먹인 뒤 뇌의 활동을 확인했는데, 컴퓨터 전자회로에 강한 전압이 흐르면 망가지듯 쥐의 뇌신경 세포 내에서 과도한 신호전달이 이뤄지다 결국 영구적인 손상이 나타났다. 마약으로 뇌가 손상된 쥐는 우울 증상을 보였고 필로폰 투약을 중단하자 극심한 금단 증상을 보였다. 오직 필로폰을 다시 줬을 때만 우울 증상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마약중독을 치료하는 방법은 없을까. 다행히 치료제가 있다. 대표적인 치료제 중 하나인 ‘나르칸’은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 제품으로 아편, 모르핀, 헤로인, 펜타닐 같은 아편유사제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한다. 마약 과다 복용에 따른 급성중독을 치료하는 응급 목적 약물로 가장 널리 쓰이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처방 없이도 구입할 수 있다.

뇌 구조를 바꿔 치료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 안토넬로 본치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충동, 절제를 관장하는 뇌의 신경세포를 빛으로 자극하면 마약중독을 제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코카인에 중독된 쥐의 뇌 전두엽 피질 부분에 광유전학 기술로 빛을 쪼이자 중독 증상이 사라졌다. 이 외에도 자기장으로 뇌의 신경회로를 자극하는 방법 등 손상된 뇌를 복구해 마약중독을 치료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난 중독 안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은 마약 앞에서 절대 유효하지 않다. 마약을 경험하면 뇌가 영구적으로 손상되기 때문에 의지가 아무리 강한 사람도 중독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특히 청소년의 뇌는 성인보다 민감하기 때문에 중독 피해가 더 크다. 마약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지금, 경각심을 높여야 하는 것은 물론, 주변의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때다.√ 기억해주세요
[과학과 놀자] 한두 번 경험하면 뇌 손상…신경 조절기능 마비돼
마약을 경험하면 뇌가 영구적으로 손상되기 때문에 의지가 아무리 강한 사람도 중독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특히 청소년은 뇌 손상 정도가 더 크다. 성장기인 10대의 뇌는 성인과 비교해 더욱 민감하기 때문에 중독 피해가 더 큰 것이다.

박영경 과학칼럼니스트·前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