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럭셔리
연말을 앞두고 특급 호텔들이 크리스마스 마케팅을 잇따라 강화하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가격이 지난해보다 더 뛰었다는 것이다. 서울신라호텔이 시즌 한정판으로 내놓은 ‘더 테이스트 오브 럭셔리’ 케이크에는 30만 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었다. 지금까지 이 호텔이 만든 케이크 중 가장 비싸다. 프랑스 디저트 와인 샤토 디켐을 사용했고, 값비싼 식자재로 유명한 블랙 트러플이 40g 들어가서 그렇다고 한다. 서울신라호텔 측은 “후식까지 럭셔리하게 즐기는 디저트 파인다이닝의 트렌드를 반영한 케이크”라고 했다.굳어지는 ‘작은 사치’ 트렌드웨스틴조선서울은 화려한 나뭇잎 장식을 넣은 크리스마스 케이크 ‘브라이트 화이트 트리’를 28만 원에 선보였다.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파르나스의 ‘메리고라운드’ 가격은 지난해보다 25% 오른 25만 원으로 책정됐다. 이 호텔 관계자는 “재료 준비 시간까지 합치면 하나를 완성하는 데 24시간이 소요되고, 작년에 비해 올해 케이크가 훨씬 정교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20만~30만 원을 넘는 케이크를 선뜻 구매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겠지만, 호텔들의 생각은 다르다. 스몰 럭셔리 트렌드의 확산을 근거로 들며 인기를 자신하고 있다.
스몰 럭셔리는 ‘작다(small)’와 ‘사치(luxury)’를 합친 말이다. 고가의 자동차, 의류, 가방 등에 비해 부담이 덜한 식료품, 화장품 등의 상품군에서 작은 사치로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 소비 방식을 말한다.
고급 호텔들이 디저트 상품값을 자신 있게 높이는 배경에는 고급 식음료에 대한 탄탄한 수요가 있다. 올여름 주요 호텔들이 빙수 가격을 일제히 올렸음에도 매일 ‘매진 행렬’을 이어간 것이 그 방증이라는 설명이다. 포시즌스호텔은 지난 5월 ‘제주 애플망고 가든 빙수’를 작년(9만6000원)보다 30% 이상 비싼 12만6000원에 내놨다. 서울신라호텔도 ‘애플망고 빙수’ 가격을 18% 인상해 9만8000원으로 매겼는데, 날마다 동이 났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특급 호텔들이 올해 선물용 케이크의 가격 책정에 고심하면서 치열한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며 “가격이 최고 30만 원보다 더 높아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원하는 제품엔 지갑 활짝” 가치소비 영향전통적으로 불황기 소비 패턴을 상징하는 단어는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였다. 경기침체가 깊어질수록 적은 비용으로 품위를 유지하고 심리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소비재가 잘 팔리는 현상으로, 대표적 품목이 립스틱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대중 사이에 이른바 ‘가치소비’가 확산하면서 이런 공식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가치소비란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제품은 가격에 관계없이 과감하게 구입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제품에는 지갑을 닫는 경향을 말한다. 호황기에는 과시적 소비, 불황기에는 절약형 소비가 뜬다는 구분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