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선배가 후배에게

외국어를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외고가 매력적인 선택지겠지만, 입시만을 생각한다면 많은 외국어 수업시간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대학 생글이 통신] 외고에 대한 막연한 환상, 입시에 도움 안돼
고등학교 입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고교 생활이 대학 입시와 직결되는 만큼 많은 중학생이 고교 입시에 신경 쓰고 있을 겁니다. 이미 고교에 진학했더라도 편입을 통해 학교를 옮길 수 있기에 다른 학교에서의 생활은 어떨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닌 제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외고에 대한 환상과 현실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환상은 ‘외고는 입시사관학교’라는 것입니다. 외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오면서 외고가 외국어는 가르치지 않고 입시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외고라면 오히려 저에겐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대입 성공을 도울 명성 높은 고등학교를 필요로 했으니까요. 하지만 입학 후 시간표를 받아들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영어과이던 저는 일주일에 영어 11시간, 독일어 4시간을 배워야 했습니다. 하루 7시간 수업한다고 보면 이틀이 넘게 외국어 수업만 들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국어와 수학, 사회는 각각 3시간에 불과했습니다.

세 과목을 모두 합쳐봤자 영어 수업 시간에 비길 수 없었습니다. 수업 시간이 많은 과목은 평균 내신등급에 영향을 더 많이 줍니다. 자연히 국어나 수학은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죠. 이게 서울대 수리면접이나 수능 수학에서 제 발목을 잡을 것 같아 정말 불안했습니다. 외국어를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외고가 매력적인 선택지겠지만, 입시만 생각한다면 많은 외국어 수업시간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한 반에 다양한 과(科)가 있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외고에서는 같은 외국어를 전공하는 친구끼리 한 반이 됩니다. 한 전공당 인원이 많지 않기에 제가 다닌 학교에는 한 반짜리 전공이 4개, 두 반짜리 전공이 3개 있었습니다. 편성될 수 있는 반이 하나밖에 없는 전공에서 반 친구들과 문제가 생긴다면 그 스트레스는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반이 2개인 전공도 총인원은 50명가량으로 적기 때문에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길 경우 학교생활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편견은 외고 교실이 드라마 처럼 살벌한 분위기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드라마를 보며 왠지 외고에는 수업시간에 필기한 내용도 공유하지 않는 새침떼기 아이, 남의 시험을 망치기 위해 노트를 훔치는 학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반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제가 본 외고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 외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필기 노트를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주고, 이성 친구도 사귀고, 야자 시간에 몰래 아이돌 영상을 보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지원 서울대 경제학부 22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