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영구동토층
"지구온난화 시대는 끝났다. 끓는 지구(global boiling)의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 7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이 같은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올해 7월이 역사상 가장 더운 달이었다"는 분석을 발표한 뒤였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생태계 또한 바뀌고 있다.
캐나다에 위치한 영구동토층. 최근 지구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위키미디어
캐나다에 위치한 영구동토층. 최근 지구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위키미디어
최근 그 변화가 가장 눈에 띄는 곳이 ‘영구동토층’이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그 안에 묻혀 있던 비밀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영구동토층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1년 내내 얼어 있는 땅이다. 연중 기온이 물의 어는점(섭씨 0℃) 이하로 유지되는 곳으로, 수천 년에서 수만 년 동안 얼어붙어 그 두께만 해도 약 80~100m에 달한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지구의 온도가 오르면서 영원히 얼어 있을 것 같던 영구동토층이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게다가 얼음이 만들어질 당시에 같이 봉인되었던 생물들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영구동토층에서 4만6000년 동안 갇혀있다가 깨어난 선충류. 휴면 상태로 지내다 다시 깨어나 번식까지 성공했다.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
영구동토층에서 4만6000년 동안 갇혀있다가 깨어난 선충류. 휴면 상태로 지내다 다시 깨어나 번식까지 성공했다.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
올여름 과학자들의 큰 주목을 받은 것은 4만6000년 동안 영구동토층에 갇혀 있다가 부활한 1mm 미만의 작은 벌레다. 파나그롤라이무스 콜리마엔시스(Panagrolaimus kolymaensis)라는 이름의 이 벌레는 시베리아 지역의 영구동토층 표면 아래 40m 깊이에서 발견됐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진이 이 벌레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종의 선충류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시 말해 과거에 존재했지만 현재에는 없는 멸종된 생물이라는 것이다. 이 벌레가 있던 주변의 흙 나이를 토대로, 4만6000년 전에 묻혀 현재까지 갇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이 벌레를 실험실 접시에 놓은 뒤, 생명 활동에 필요한 영양소가 담긴 물을 주입했다. 시간이 흐르자 이 벌레는 신체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일부는 번식을 해 새로운 개체를 만들기도 했다. 즉 오래전 얼음에 갇히면서 깊은 잠에 빠진 상태였고, 이후에 다시 깨어나 생명 활동을 한 것이다.

연구진은 연구 결과를 ‘크립토바이오시스’로 설명했다. 크립토바이오시스는 미생물 중 일부가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체 활동을 잠시 멈추는 현상을 말한다. 몸의 활동을 최소한으로 낮춰 깊은 잠을 자는 것이다. 실제로 이 벌레의 유전자에 크립토바이오시스와 관련이 있는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벌레뿐 아니라 바이러스 또한 지구에 퍼질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종의 바이러스가 나타난다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어떻게 싸워 이겨내야 할지 알 수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나타났을 때처럼 전 세계가 또다시 감염병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영구동토층에서 언 상태로 존재하던 바이러스가 되살아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교 연구팀은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인류가 처음 보는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단세포동물인 아메바를 영구동토층의 흙과 얼음 등에서 채취한 시료에 넣고, 시간이 흐른 뒤 아메바의 몸에 감염된 바이러스를 확인했다. 그 결과 시료로부터 기인한 바이러스가 있었고, 7개 지역 시료에서 발견된 13종의 바이러스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종이었다. 이 바이러스 중 일부는 약 4만8000여 년 전 영구동토층에 갇혔으며, 심지어 현재 깨어난 뒤에도 다른 세포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현재 영구동토층은 매우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대 연구팀은 당초 예상보다 70년이나 빠르게 영구동토층이 녹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대로 지구온난화를 멈추지 못한다면 그 안에 갇혀 있던 기체와 바이러스, 미생물이 세상에 나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매장돼 있던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대기 중으로 유입돼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이어진다. 이것이 지구온난화 가속을 하루 빨리 멈추게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기억해주세요
[과학과 놀자] 온난화로 얼음층 녹아 수만 년 전 바이러스 퍼질 수도
현재 영구동토층은 매우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대 연구팀은 당초 예상보다 70년이나 빠르게 영구동토층이 녹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대로 지구온난화를 멈추지 못한다면, 그 안에 있는 기체와 바이러스, 미생물들이 세상에 나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매장돼 있던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대기 중으로 유입돼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이어진다. 이것이 지구온난화 가속을 하루 빨리 멈추게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