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디지털 경제와 경제 체제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동일한 눈높이에서 고려할 때 경제주체의 경쟁이 사회적 이익으로 연결돼.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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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이 필요하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서구의 주주 자본주의나 중국을 중심으로 한 국가 자본주의 모두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두 경제 체제는 각자의 방식으로 국가의 번영을 가져다주었지만, 빈부 격차와 환경 파괴라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해관계자 ‘윈윈’에서 새로운 대안 찾아주주 자본주의와 국가 자본주의의 가장 큰 결함은 특정 주체가 다른 이해관계자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이다. 주주 자본주의에서는 주주의 목표가 유일한 초점이 되며, 국가 자본주의에서는 정부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완전히 상반된 형태의 경제 체제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두 체제 중 하나의 선택이 아닌 모두의 구조적 전환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해법의 실마리는 해운사 머스크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머스크는 1904년 덴마크의 작은 해안 마을 스벤보르에서 설립되었다. 발트해의 작은 항구에 물자를 들여오고 내보내던 사업이 이후 100년 동안 성장하면서 머스크는 세계 해상 화물의 15%를 담당하는 최대 해운사로 성장했다. 석유탐사, 여객 및 화물 수송, 컨테이너 제작 등이 대표 사업이다. 머스크 성장의 핵심은 신뢰였다. ‘지속적인 관리’와 ‘겸손’, ‘정직’, ‘직원’, ‘평판’이라는 다섯 가지 가치는 1세기 넘게 머스크를 끌어온 원동력이다. 그 덕분에 고객은 물론 정부와도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머스크는 이러한 가치가 덴마크를 넘어 머스크가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회에 전파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디지털 세상에서 말과 행동이 다를 수 없었다.

직원과 고객도 마찬가지다. 머스크를 자랑스러워하는 이들은 머스크가 주장하는 가치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를 요구했다. 변하지 않으면 핵심 가치가 위태로워지고, 소비자와 근로자는 등을 돌릴 것이 자명했다. 방법을 찾기 위해 머스크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머스크는 운송 회사였다. 컨테이너를 여기저기 옮기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것만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왜 운송하는지를 고민하자 답이 보였다.

덴마크에서 생산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바나나가 대표적이다. 바나나를 재배지에서 가져오면 그 과정에서 일자리가 생기고 기회가 창출됐다. 그뿐 아니라 냉동선으로 바나나를 가져올 경우 폐기율은 0.4%에 불과했다. 일반적인 공급망의 평균 폐기율이 40%임을 감안할 때 엄청난 음식물 쓰레기 절감에 기여하는 셈이었다. 결국 머스크의 존립 목적은 ‘세계 무역을 통한 번영과 음식물 쓰레기를 대폭 줄이는 것’이 되었다. 회사의 목적이 컨테이너 상자의 이동에서 양질의 일자리와 경제성장, 책임 있는 생산과 소비, 기후 행동과 같은 더 큰 목적으로 연결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목적이 분명해지자 석유의 시추, 수송, 판매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가 아니었다.

반면에 무역은 탄소 배출량 목표를 보완한다면 충분히 회사 목적에 부합하는 비즈니스였다. 이에 따라 친환경 연료로 대체하고 사업이 성장해도 탄소 배출량은 늘지 않도록 2050년까지 순 배출량 제로 목표를 세우고 노력 중이다. 무역이 소수의 다국적기업만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생계에 도움이 되도록 고객 대상도 추가했다. 2025년까지 중소기업 고객이 총매출의 10%를 차지하고, 협력 업체들이 여성 기업을 포함해 중소기업 10만 개와 대외무역이 가능하도록 돕기를 원했다. 비즈니스를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증대하기 위해 노력하자 투자자와 규제 기관 모두 머스크를 제외하고 계획을 세울 수 없었다. 소수 이익 독점 디지털 경제체제 바뀌어야디지털 경제가 부상하면서 실리콘밸리에는 “빠르게 움직이고 관습을 파괴하라”, “허락보다 용서를 구하라” 등의 구호가 만연했다. 그 결과 주주 이익은 극대화됐지만, 혜택은 소수 빅테크 기업 주주에게만 돌아갔다. 이는 소득 격차의 발판이 되었다. 하지만 머스크의 사례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동일하게 고려한다는 점에서 기존 주주 자본주의나 국가 자본주의와 구분된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경제주체의 노력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같은 높이에서 경쟁할 수 있는 체제가 필요하다. 주주 자본주의나 국가 자본주의 모두 신뢰를 잃었다는 점에서 디지털 기술이 중심이 된 세상이 지닌 큰 한계를 노출했다. “기술은 분명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이 있지만,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완전한 믿음과 확신 없이는 그 잠재력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애플의 CEO 팀 쿡의 이야기를 되새겨봐야 한다.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