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디지털 경제와 규모의 경제

영리 목적의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 정책, 비영리사업 분야에서도 '규모의 경제'는 비즈니스 성공의 핵심 요인.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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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경제는 언제나 비즈니스 성공의 핵심이다. 디지털 시대에도 고정비용은 발생하지만, 전통 산업에 비해 적은 비용과 더 많은 수요자 확보로 규모의 경제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디지털 산업이 서비스업 중심으로 이뤄지는 탓이다. ‘사람’의 노력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서비스업의 경우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기란 쉽지 않다.웰니스 분야의 실패 원인디지털 기술과 하드웨어의 발전은 유전자 검사 분야의 획기적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스타트업 애리베일은 웰니스 사업으로 수백만 명이 건강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애리베일의 고객들은 유전자 검사를 받고, 생물학적으로 취약한 부분에 대한 정보를 받아 볼 수 있다. 또한 혈액검사와 장내 미생물 검사를 통해 건강코치로부터 식생활과 운동 등 다양한 조언을 받았다. 이들의 서비스는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현재의 건강은 물론, 미래의 질병을 미리 발견해 삶의 질을 높여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투자금 5000만 달러를 어렵지 않게 모았고, 2016년에는 ‘올해의 스타트업’으로 선정될 만큼 주목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연간 3500달러에 달하는 웰니스 프로그램 사용료는 사람들에게 너무 높은 가격이었다. 가격을 낮출 수도 없었다. 유전자 및 생리학적 테스트 비용과 건강코치 급여가 높았던 탓이다. 더 큰 문제는 고객 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더라도 재무구조가 개선될 가능성이 작다는 점이었다. 고객이 많아질수록 건강코치 채용 규모도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2018년에는 서비스 가격을 1200달러로 크게 낮추는 전략을 펼쳤음에도 고객은 2500명에 불과했다. 더 이상의 적자를 감수하면서 운영할 수 없던 애리베일은 2019년 4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애리베일의 실패는 ‘규모의 경제’를 구현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수요는 분명했지만, 고객들의 지불 의사는 애리베일과 큰 차이가 있었다. 규모의 경제를 얻기 위해서는 수요뿐만 아니라 이들이 어느 정도 선에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지에 대한 분석도 함께 이뤄져야 했다.생산량 늘릴수록 비용 줄어야규모의 경제는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평균비용이 가파르게 감소하는 현상이다. 스마트폰이 시장에 나오기 위해서는 사전에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설계와 개발을 위한 공학 공정, 금속과 플라스틱, 공장에서의 조립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선행 투자를 누구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초기 선행 투자가 이뤄지고 나면 추가로 생산되는 제품에 대해서는 처음처럼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애플이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에 아이폰을 더 많이 생산하라고 주문한다면 아이폰 하나를 생산하는 데 투입되는 비용은 계속 줄어든다. 그 결과 애플은 이익을 더 많이 남길 수 있고, 소비자는 큰 부담 없이 아이폰을 구입할 수 있다.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X를 통해 우주개발 사업을 하면서 재활용 로켓을 개발한 것도 같은 이유다. 로켓을 재활용하는 전략은 스페이스X가 위성 네트워크인 스타링크를 기존의 18분의 1 비용으로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비결이다. 재활용 로켓으로 규모의 경제를 구현한 것이다.

우버와 리프트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는 비용은 막대하다. 우수한 인력을 높은 연봉에 채용해야 하고, 운전자와 승객 양측의 데이터를 하나의 인터페이스에서 연결해야 한다. 게다가 상호 평가도 가능해야 하고, 불만을 토로할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일단 만들어 두면 승객이 탑승할 때마다 승차 공유의 평균비용은 점차 줄어드는 규모의 경제가 발생한다. 과거의 제조업이나 오늘날의 플랫폼 사업이나 비즈니스의 성공 방식은 동일하다.공공 프로젝트도 예외는 아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규모의 경제는 기업뿐만이 아니라 공공 정책과 비영리사업 분야에서도 성공의 핵심이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비용이 사회적 편익을 넘어선다면 다른 사업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옳다. 디지털 시대여서, 서비스업 비중이 커져서, 비영리사업이어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완벽을 추구할 필요도 없다. 일본의 반도체가 완벽함을 추구하다가 낮은 수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나라에 경쟁 우위를 뺏긴 것도 유사한 사례다. 시대와 분야를 막론하고 규모의 경제는 언제나 실패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요인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