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밀란 쿤데라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지난해 고려대 재학생 커뮤니티 ‘고파스’가 선정한 ‘고대생 인생 책 톱5’에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가 1984년 발표한 이 작품은 영화 ‘프라하의 봄’ 원작이기도 하다.
일단 이 작품은 전통적인 소설 문법과 다소 차이가 있다. 소설 속의 ‘나’가 수시로 등장해 다양한 지식을 뽐내고, 등장인물을 평가하는가 하면,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다. ‘나’는 다름 아닌 금세기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밀란 쿤데라. 독특한 서술법과 작가의 깊고 넓은 경지가 내내 이어진다.진한 연애와 현실적 애환이 교차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 오가는 현대인의 자화상](https://img.hankyung.com/photo/202307/AA.33950103.1.jpg)
대칭적인 사항을 통해 세계를 다각도로 검토해볼 명제를 던진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우선 인생은 영원히 회귀하는 무거운 짐일까, 준비 없이 한 번 지나치는 가벼운 통로일까? 해답은 각자가 찾으면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실력 있는 외과의사이자 미남인 토마시는 부담 없는 연애에 몰두한다. 어느 날 한 사람만 깊이 사랑하는 테레자를 만나면서 그는 이전과 다른 상황에 부닥친다. 자유분방한 토마시와 순전한 테레자, 이 극점이 부딪치면서 일어나는 갈등이 소설 내내 이어진다.
프라하에서 제네바로 갔다가 다시 프라하로 돌아온 토마시가 오이디푸스를 예로든 신문 칼럼으로 곤경에 빠지면서 잡역부로 전락하고 끝내 농촌으로 가게 되는 여정. 이들을 위로하는 건 애완견 카레닌밖에 없다.
제네바와 파리, 뉴욕을 옮겨가며 체코인의 흔적을 지워가는 화가 사비나, 선의를 베풀기 위해 캄보디아 국경으로 가는 프란츠까지 밀란 쿤데라는 여러 사람을 통해 프라하의 봄을 투영하고 자신의 견해를 쏟아놓는다.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며.세계를 매료시킨 쿤데라의 지적 향연이 소설에서는 네 번의 죽음이 언급된다. 중병에 걸린 카레닌의 안락사와 트럭 사고로 함께 세상을 등지는 토마시와 테레자, 선의로 도와주려다 끝내 죽음을 맞는 프란츠까지. 총 6부로 구성된 이 소설에서 토마시와 테레자의 죽음은 중간 부분에 언급되지만, 마지막에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이란 우리는 마지막 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는 문장으로 암시만 한다. 밀란 쿤데라가 설계한 소설 미학의 틀을 살펴보는 것도 독서의 묘미다.
역청 바구니에 실려와 공주의 아들이 된 모세, 부모를 몰라본 죄로 스스로를 눈멀게 한 오이디푸스, 베토벤의 무거운 탄식 ‘그래야만 한다’, 구약성서 창조 질서에 대한 반발, 키치에 대한 독특하면서도 확고한 견해, 소설 내내 밀란 쿤데라의 지적 향연이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다른 나라의 침공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소설이다. 공산국가 소련에 점령당한 체코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자유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