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디지털 경제와 연결
디지털을 활용한 다양한 연결은 '무엇을 모르는가'에 대한 인식을 통해 창의적인 해결책 도출 가능.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우민론(愚民論)을 주창했다. 대중은 어리석고, 어리석은 무리를 다루기 위한 방법은 권모술수가 유일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구성의 오류’도 비슷한 개념이다. 개별적인 것이 합쳐질 경우 전체의 모습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시각대로라면 한 사람, 한 사람은 똑똑한데 군중은 어리석을 수 있다는 것이다.디지털을 활용한 다양한 연결은 '무엇을 모르는가'에 대한 인식을 통해 창의적인 해결책 도출 가능.
현실에는 반대 사례도 존재한다. 한 명의 의사만으로는, 한 명의 난치병 환자만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치료법을, 이들이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면 찾아낼 수 있다. 온라인 의료 크라우드 소싱 플랫폼 ‘크라우드메드(CrowdMed)’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병의 증상이나 병력, 가족력 등의 정보와 수집한 관련 자료들, 의학적 사례를 정리해 올린다. 그러면 ‘의료탐정’ 집단이 진단을 제시하며 가장 가능성 있다고 생각하는 결론에 베팅한다.
의료탐정의 대다수는 의료계에서 활동하는 사람이지만, 의료계 밖에 있는 사람들도 참여한다. 크라우드메드는 축적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해 각 환자에게 가능성 있는 진단 목록을 제시한다. 세 가지 진단을 제시했을 때, 희소병의 정체에 대한 결정적 정보를 받은 사람은 무려 700명에 이르렀다. 크라우드메드를 이용하고자 하는 환자들은 대가로 299달러를 지불한다. 하지만 의료탐정이 제시한 진단이 환자를 담당하는 의사에게 입증받지 못하거나 의사가 다른 정확한 진단을 내릴 경우 환불받도록 설계돼 있다. 무슨 병인지 알 수 없어 불안한 환자 입장에서는 이들이 제시해주는 정보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크라우드메드의 설립자 자레드 헤이맨은 누구보다 절실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여동생은 무슨 병인지 알 수 없어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 18세 때 시작된 증상은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우울증까지 생겨 스스로 생을 마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나서야 의사들은 희귀병 중 하나임을 알아차렸고, 호르몬 대체 요법을 쓰자 3주 만에 대부분의 증상이 사라졌다. 동생의 사례를 크라우드메드 사이트의 첫 시험 사례로 제안했을 때 의료탐정들이 질환을 정확히 맞히는 데 3일이면 충분했다. 비전문가로 구성된 집단이지만, 연결되자 현명한 집단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비전문가 자원에서 정보 얻기
2010년 제1형 당뇨병의 치료법을 찾기 위한 아이디어 경연대회도 같은 맥락이었다. ‘벽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개방해 창의적인 접근법을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인슐린을 자체적으로 생성하지 못하는 제1형 당뇨병은 ‘소아 당뇨’로 알려졌지만 성인에게서도 발병한다. 호르몬 투여로 병을 견디지만 완치법을 찾지 못했다. 경연은 6주간 이어졌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부터 의견이 들어왔다. 12명의 우승자가 선정됐고, 이들 중에는 과학이나 의학 쪽 배경이 전혀 없는 사람도, 제1형 당뇨병을 앓는 의사와 교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제안은 의학계에서 간과해온 측면을 다루고 있었다. 실제 의료진과 결합해 협력할 수 있는 팀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경연에서 나온 의견을 연구가설로 세울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실제 7개 프로젝트가 하버드 의대에서 승인됐고, 이 가운데 5개 연구는 제1형 당뇨병과 전혀 관련돼 있지 않은 연구원이 이끌었다. 핵심은 ‘무엇을 모르는가’를 찾는 것이처럼 다양한 배경의 사람이 연결됐을 때 기존 전문가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의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을 모르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사람에게 당뇨병에 대한 의학적 지식은 없지만, 그의 아이들이 당뇨를 앓을 수 있다. 분명 당뇨병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연결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6세기에는 자신이 아는 정보가 원활하게 전달될 수단이 부재했을 것이다. 군중이 우매해진 이유다. 디지털 시대는 다르다. 다양한 경험과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되고,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전문가 의견을 같은 분야의 전문가만 검토하는 일은 ‘무엇을 모르는가’를 놓칠 수 있다. 진짜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면 비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해법을 위한 전문지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디지털 시대 전문가들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