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디지털 경제와 원격수업
원격수업은 교육을 지원하는 수단일뿐 대면수업의 본질적인 가치 구현할 수 없어.
1997년 발간된 만화 <아치>에서는 모든 것이 원격으로 이뤄지는 학교가 등장한다. ‘서기 2021년 고등학교의 베티’ 편이다. 제트팩을 메고 날아다니는 베티에게 빨리 학교에 접속하라고 엄마가 소리친다. 베티는 아직 수업이 30초나 남았다고 대답하면서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1997년 예상하는 2021년의 학교는 이런 모습이었다. 불편한 진실2020년부터 거의 모든 나라에서 아치가 예상했던 원격수업이 구현됐다. 감염병에 대한 우려가 학생들을 집에 머물게 했다. 기술 덕분에 교육이 중단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수업의 질과 모니터로 교사를 만나는 학생들의 주의력이 학교에서와는 달랐다. 교사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물리적인 학교 공간에서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대학원생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학습에 대한 동기 부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우울감을 느꼈으며 스트레스가 상승했다. 팬데믹 이전만 하더라도 디지털 기술이 비효율적인 교육제도에 대한 해결책으로 간주됐지만, 현실에서 원격수업은 다양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원격수업의 문제원격수업으로 나타난 직접적인 문제는 접근성이다. 디지털 학습이 가능하려면 컴퓨터와 인터넷 접근성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미국 뉴욕시 공립학교의 3분의 1은 수업에 필요한 기술에 접근할 수 없었다. 원격 디지털 학습은 부유한 학생 및 학교와 그렇지 못한 집단의 격차를 고르게 해줄 것이라 약속했지만 현실에서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졌다.원격수업은 교육을 지원하는 수단일뿐 대면수업의 본질적인 가치 구현할 수 없어.
게다가 아이들이 온라인으로 학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끊임없이 옆에서 봐줘야 했다. 아이를 맡길 형편이 되는 부모는 외부의 도움을 받았지만, 대다수 가정은 불가능했다. 공간도 문제였다. 결국 인종적, 경제적 불평등이 고스란히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무엇보다 원격교육으로는 학교 수업이 의도한 본연의 가치를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학교는 교과목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지만, 다양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친구들과 교류하며 신발끈을 묶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선생님이 애국자가 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며, 수학의 곱셈 나눗셈을 배우기도 한다. 학교는 어느 하나의 기능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한때 에듀테크를 지지했다가 비판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래리 큐번 스탠퍼드대 교수는 교육이란 학생과 교사, 학생과 학생 등 학교 공동체의 모든 당사자 사이의 관계라고 정의했다. 이 같은 관계 속에서 정보가 지식이 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기술적 해결책은 이런 관계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많은 주요 대학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MOOC 운동이 실패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큐번은 학교 교육에서 보살핌이란 교사와 학생 간 관계를 정의한다고 부연한다. 교사는 학생을 보살피는 마음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이런 상호작용이 학교 교육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교육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설계된 시스템이지 학습을 위한 시스템이 아닌 탓에 학교를 그대로 구현해낼 수 없다. 디지털로 변환되지 않는 가치디지털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온라인 교육에 의한 정서적 격차다. 기억 속 좋은 선생님은 특정 과목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고, 나쁜 선생님 역시 전달하는 지식수준이 낮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나를 어떻게 한 인간으로 대하고, 그 과목에 관심을 갖게 해줬는지가 선생님에 대한 평가를 형성한다. 하지만 디지털 학습은 이런 정서적 관계를 고려하지 못한다.
정서적 관계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창의력 때문이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주어진 과제에 정형화된 방식으로 접근하는 탓에 삶의 가변성을 이해하는 능력을 기를 수 없다. 마이클 리치 하버드 의대 교수는 창조성과 공감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 의존하며 형성되는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디지털이 만능이 될 수 없다는 증거는 교육 분야에서도 존재한다. 오늘날 아날로그 세상에 존재하는 비효율을 디지털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가득하다. 물론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인공지능(AI)이 교사의 행정 부담을 낮춰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이 본질적인 부분까지 미칠 수는 없다. 디지털은 본질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임을 잊지 않을 때 본말이 전도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