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 경영진이나 대주주(지배 주주)가 의도적으로 자기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키우려는 ‘꼼수’도 방지할 수 있다. 경영진과 대주주가 개인 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사들여놓고 주주총회에서 자기 주식처럼 지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면 이런 우회적인 지분 확대를 막을 수 있다. 보유가 아니더라도 자사주를 우호 그룹에 매각해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자기 돈을 투자하지 않고 지배주주의 지분을 확대하는 사례가 없지 않았다. 이런 경우 자사주 매입에 영향력이 큰 지배주주와 이런 의사 결정권 밖의 소액주주 간 이해가 충돌한다. 이런 불균형을 막자는 취지다.
자본시장연구원 조사를 보면 미국 같은 데서는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대부분 소각한다. 그 결과 주가가 오르면 소액주주는 약간의 배당보다 더 큰 금전적 이익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사주 소각 기업이 2%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보유 자사주를 취득 목적과 달리 처분해도 현행 법규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주가치 제고 차원에서 자사주를 사들인다고 공시하고도 얼마든지 달리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폐단을 제도로 막자는 것이다.[반대] '자사주 소각=주가 상승' 미입증 가설…투기자본·행동주의펀드 먹잇감 돼자사주를 소각하게 하면 주가가 오른다는 주장부터가 탁상의 이론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의 보유 자사주는 31조5000억원가량이다. 유가증권시장 전체로는 52조2638억원에 달한다. 기업들이 강제 매각 등 자사주 정책의 큰 변화나 규제 강화에 대비해 이 물량을 주식시장에 내다 팔 경우 주가가 하락해 소액주주는 엄청난 손해를 본다. 이를 팔지 않더라도 자사주 소각은 일시적으로 단기 효과를 낼뿐 주가는 소각 이전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발행주식 감소로 EPS가 상승하지만, 소각한 금액만큼 주식이 사라져 기업가치도 줄어든다.
경영권 방어 문제도 심각하다.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 기업에는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비한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다. 자사주가 유일한 방어 수단이다. 미국 대부분의 주와 일본 회사법 등에는 차등의결권 포이즌필(신주인수 선택권) 같은 대주주 및 경영진 보호제도가 있다. 외부 세력의 적대적 기업 인수 시도에 맞설 유일한 대응책마저 없애버리면 국내 기업을 우리 스스로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내모는 결과가 된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기업이 영업활동과 직접 관련도 없는 경영권 방어에 거액의 비용과 함께 심적 부담까지 안게 해서는 안 된다.
법제화되면 소급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일정 처분 기간을 줘도 이미 보유 중인 주식을 강제로 소각하라고 법제화할 경우 기업 재산을 박탈하는 소급 악법이 된다. 일정 시점부터의 자사주 소각이어도 주가를 하락시켜 기존 소액주주 재산권을 침해한다. 과거 과세 판례를 봐도 자사주는 기업의 재산일 뿐이다. 사고팔아 이익이 나면 과세해온 것이다. 사유재산은 국가가 보호할 의무가 있다. 부분적 문제를 보면서 자산 취득과 처분의 자유를 뺏는 것은 과잉 입법이고, 명백한 규제다.√ 생각하기 - 한국에선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보완책 병행, 하더라도 기업자율 유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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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