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디지털 경제와 넛지
기업과 정부의 넛지 전략은 보다 나은 디지털 세상을 구현할 수 있어
‘넛지(nudge)’란 ‘팔꿈치로 쿡쿡 찌르다’라는 의미의 동사다. 넛지가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의미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의 2008년 저서 <넛지>가 인기를 얻으면서부터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행동과학은 실험실이 아니라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기업과 정부의 넛지 전략은 보다 나은 디지털 세상을 구현할 수 있어

영국에서는 폭동을 잠재우는 데 넛지를 활용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여름만 되면 폭동이 늘어났다. 공공 기물이 파손되고, 상점들은 약탈당했다. 게다가 한번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사회 폭동으로 이어졌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의 뇌는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한 아이들 사진을 보면 보호 본능이 작동해 반사회적 행동이 감소한다는 가설을 수립했다. ‘도시의 아기들’ 아이디어는 이렇게 탄생했다. 유독 폭동 피해가 심각했던 런던 그리니치 지역 상점의 셔터에 아기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주인공은 동네 아이들이었다. 사람들은 모호하거나 일반적인 것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사회 규범에 더 강하게 영향받기 때문이다. 캠페인이 시작되고 이듬해 반사회적 행동이 24% 감소했고, 4년 뒤에는 캠페인 시작 전보다 47.4%나 감소했다.탁월성과 간단함탁월한 아이디어는 결코 복잡하지 않다. 넛지가 알려주는 시사점이다. 소변기의 파리 그림도, 런던 상점 셔터의 아기 그림도 모두 간단한 아이디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휴대폰 심카드 판매 아이디어도 그중 하나다. 익숙하지 않은 브랜드지만 남아공에는 PEP마트가 유명하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대형매장으로, 휴대폰 심카드를 구입할 수 있다. 심카드는 한번 구입하면 몇 년씩 계속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남아공에서는 여러 네트워크의 심카드를 같이 사용한다. 심카드마다 혜택이 달라서다. 어떤 심카드를 사용하면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시내 전화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다른 심카드는 오후 8시 이후 국제 전화가 더 저렴하다. 마트는 판매할 때마다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많이 팔수록 이익이다.
PEP는 넛지를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안됐다. ‘품절 임박’이란 문구로 희소성을 강조하자는 의견부터 ‘심카드 구매 천만 돌파!’와 같은 수요 자극까지 등장했다. 단연 눈에 띄는 넛지는 각기 다른 통신사의 심카드 세 개를 한 묶음으로 판매하는 방안이었다. 기본 선택지 자체를 한 번에 세 개 구매하는 것으로 바꾸자는 아이디어였다. 심 카드 묶음 팩은 한 달 동안 34개 매장에서 시범 판매됐고, 같은 기간 묶음 판매하지 않은 매장과 비교할 때 16%나 더 많은 매출을 기록했다.디지털 경제와 자율규제디지털 경제도 넛지 덕분에 일상 곳곳에서 구현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우버 앱으로 호출한 차량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올라탄다.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이 운행하는 차량에 말이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운전자 평가라는 넛지 덕분이다. 아마존도, 이베이도, 에어비앤비도 판매자 평가를 활용해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