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디지털 경제와 팬데믹
서비스산업 중심 구조에서 새로운 팬데믹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비대면 소통을 위한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규제개혁이 필요
역사의 모든 팬데믹이 가난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농업으로 자급자족하던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축복이었다.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감소하자 살아남은 사람이 경작할 수 있는 농지는 1.5배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농경사회에서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양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산업혁명과 팬데믹흑사병은 끔찍했지만, 살아남은 농노들에게는 여러모로 유리했다. 농경지를 경작한 농민의 절대 수가 줄어들자 귀족들은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당시 탈곡 작업이나 쭉정이를 걸러내는 작업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가격은 1340년대 초에서 1370년대 초 사이 35%나 올랐다.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은 수백 년 동안 비정상적으로 높은 1인당 소득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 고임금, 저출산의 선순환을 시작할 수 있었다.서비스산업 중심 구조에서 새로운 팬데믹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비대면 소통을 위한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규제개혁이 필요
하지만 산업혁명 시기에 접어들자 근로자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 산업혁명은 본질적으로 기계적인 혁신이다. 이는 노동집약적에서 자본집약적 생산으로, 가내수공업에서 공장제 생산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초기 산업혁명가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병에 걸릴 위험을 줄여야 할 재무적 이유가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서도 기꺼이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발전한 것은 기술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윤리의식도 같이 높아졌다. 비위생적인 공장 환경에 대한 학계의 지적과 여론의 공감이 이어졌다. 결국 1802년 최초의 노동법으로 알려진 ‘견습공에 대한 건강과 윤리에 관한 법’이 제정된다.인플루엔자 팬데믹과 코로나19‘견습공에 대한 건강과 윤리에 관한 법’으로 인해 공장은 비교적 안전한 공간이 됐다. 1918~1919년 코로나19보다 훨씬 치명적이었던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었을 당시에도 제조업 근로자가 감소하지 않은 이유다. 당시 미국에서만 약 68만 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오늘날 인구 200만 명과 맞먹는 규모다. 그런데도 경제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1946년 경기 순환의 선구자인 웨슬리 클레어 미첼과 아서 반스는 당시의 경기하강은 예외적일 정도로 짧았고, 그 폭도 크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오늘날의 코로나19 팬데믹이 경제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과 크게 차이 나는 대목이다. 원인은 경제구조에 있었다. 당시엔 미국인 31%가 농장에서 일했고, 38%는 육체노동에 종사했다. 게다가 산업혁명으로 경제 자체가 급속히 팽창하던 시기라 인플루엔자가 무서워 문을 닫는 농장이나 공장이 없었다. 이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마찬가지였다. 제조업 실업률은 다른 산업군에 비해 낮은 수준을 지속해서 유지했다. 그 배경에는 로봇이 있다. 로봇이 제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제조 현장은 더 이상 노동력을 줄일 수 없는 상태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이 대면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20세기 초의 서비스업은 가사서비스업 혹은 개인서비스업이 대부분이었다. 부유한 가정의 보모나 유모가 대표적이다. 팬데믹은 외부 활동에 대한 두려움을 야기했고, 그 결과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일자리가 오히려 공고해졌다. 하지만 오늘날의 서비스업은 고도화돼 많은 고객이 다수의 서비스 전문가와 교류하는 형태여서 대면 소통이 수익성 창출의 핵심이다. 대면 소통이 전제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인구 비중이 높은 현재의 산업구조는 과거 어느 때보다 팬데믹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디지털 전환, 규제개혁 그리고 서비스업의 미래 팬데믹 위험과 높은 서비스산업 비중은 디지털 전환과 규제 완화가 필요한 이유가 된다. 경제는 다시 제조업 중심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제조현장에서는 더 정교한 로봇과 스마트팩토리가 노동 절약 기술로 생산성을 높여 노동을 위한 빈자리가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서비스업을 대체할 실행 가능한 대안이 없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서비스업의 위험을 낮추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이 고민돼야 한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소통과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특히 인구 밀도가 낮고 혜택이 적은 지방에서의 규제 완화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규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기업가정신에 훨씬 가혹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소득과 고용률이 낮은 지역일수록 더 쉽게 서비스업에 진입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줘야 한다. 디지털 기술과 규제 개혁은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된 세상 속 팬데믹의 위험에서 사람들을 지켜주는 방어막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