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디지털 경제와 전문서비스업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전문서비스의 규칙화와 탈중개화,서비스의 해제 발생. 본질에 가까운 서비스 제공을 위한 기술 활용을 고민할 때.
Getty Images Bank
Getty Images Bank
전문서비스업에서의 갈등이 한창이다. 변호사, 의사, 세무사, 공인중개사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의 대상이 전문가인지, 전문협회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건 기존 전문 서비스를 이용할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술 발전은 이들 서비스를 변모시키고 있다 규칙화되는 전문가 업무오랜 기간 전문가들은 정해진 절차로 업무를 요약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 많은 부분이 표준화되고 있다. 수작업에서 절차화로 변모하자 규칙이 생겨나고, 탈중개화 경향이 두드러지며, 일의 분해가 가능해졌다. 사실 전문 서비스업에서 규칙화는 매우 중요하다. 변호사나 의사의 경우 그 일이 매우 복잡해져 기억에만 의지해 수행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상당한 압박이 동반되는 일이기에 중요한 규칙적 작업을 간과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완전히 규칙적인 업무와 완전히 불규칙한 부분으로 구분하는 일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불규칙해 보이는 일도 규칙적인 형식으로 요약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공지능(AI)의 발전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규칙화할 수 없는 영역은 전문가만 수행할 수 있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기계는 규칙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불규칙한 작업을 수행할 수도 있다. 전문 서비스 분야에서 규칙화가 가능해진다면, 지식과 전문성을 재사용해 동일한 서비스를 광범위한 수요자에게 반복해서 공급할 수 있다. 전문가는 동일한 서비스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이는 수요 측면의 사용과 재사용으로도 이어진다. 보다 저렴하게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탈중개화 재중개화중개인은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스스로 처리할 만큼 충분한 경험이나 기술, 지식이 없는 수요자에게 실용적 전문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인터넷의 등장 이후 중개인의 위치는 좁아지고 있다. 중개인들이 전통적으로 제공한 서비스가 과연 온라인 서비스보다 가치 있는지에 대한 문제에 봉착했다. 즉, 탈중개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전문가 역시 다르지 않다. 전문 서비스는 그간 라이선스를 갖지 않은 자에 의한 중개를 금지해왔다. 하지만 수요자가 값싸고 품질이 좋으며 더 편안한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받을 수 있다면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탈중개화 현상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많은 전문 영역이 중개 지위를 위협받아왔다. 세무사는 온라인 세무 신고 소프트웨어 때문에, 변호사는 AI 문서 검색 시스템 때문에, 의사는 진단 앱 때문에, 교사는 MOOC 때문에, 건축가는 온라인 CAD 시스템 때문에, 언론인은 블로거 때문에 최소한 일정 부분 중개인 지위를 잃어왔다. 과거 규정 준수 업무에 집중했던 세무사들이 이제는 세무 전략 수립 부문으로 이동하는 사례는 다른 전문직역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변화다. 서비스의 해체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게다가 높은 전문성으로 인해 분리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전문 서비스업도 부속 작업으로 나뉘고 있다. 한 덩어리였던 전문가 업무가 여러 영역으로 나뉘어 가장 저렴하게 수행 가능한 다른 사람 혹은 시스템에 위임할 수 있게 됐다. ‘건축 정보 모델링’이 대표적이다. 건축가는 이 시스템 덕분에 기술자의 업무를 여러 작업으로 구분해 다양한 전문가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특화가 시작됐다. ‘프로퍼블리카’가 탐사보도에 집중하는 이유다. 소송과 관련해서도 문서 검토 업무만 떼내 외주업체에 맡기기도 한다. 이처럼 변화의 물결은 점차 거세지고 있다. 전문지식은 보다 생산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공유될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변화 중 하나가 다품종 소량생산에서 다품종 대량생산으로의 전환이다. 그간 특화된 서비스를 개별 맞춤형으로 제공하던 전문 서비스업에서도 같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변화는 거부할 때 더 큰 압력으로 다가온다. 기술 활용으로 전문 서비스업의 본질을 강화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