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액체 같은 기체, 기체 같은 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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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칭송을 받았고, 지금도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이것은 바로 ‘커피’다. 철학자 칸트는 말년에 커피에 푹 빠졌고, 베토벤은 아침 식사로 커피를 마셨으며, 작가 발자크는 빚을 갚기 위해 수많은 작품을 쓰면서 커피를 벗 삼았다. 이렇게 서구 세계를 사로잡았던 커피는 조선 말기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초기의 커피는 일부 특권층이나 예술가 같은 소수를 위한 음료였지만, 6·25전쟁을 계기로 미군 부대를 통해 인스턴트 커피가 퍼져나가면서 대중화됐다.
인스턴트 커피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처음 만들어졌는데, 원두를 갈아서 내리는 커피에 비해 맛과 향이 떨어지지만 간편함을 무기로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인스턴트 커피는 원두를 볶은 뒤 뜨거운 물로 추출해 커피 원액을 만들고, 이 원액을 영하 40도의 급속 동결기로 보내 얼린 상태에서 수분만 날리는 냉동 건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냉동 건조법은 성분의 파괴가 적고, 물을 부었을 때 복원력이 뛰어나 다양한 식품 저장에 사용된다.
커피는 향이나 맛도 좋지만 카페인으로 인한 각성 효과를 즐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카페인은 신경계를 자극해 피로를 줄여주고, 집중력을 높여주며, 졸음을 쫓아주는 효과가 있다. 또 위산 분비 촉진, 이뇨 작용 증진의 효과도 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카페인에 예민한 사람은 커피를 즐기고 싶어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 두려워 그럴 수 없다. 이런 사람에게는 디카페인 커피가 큰 위로가 된다. 디카페인 커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과학과 놀자] 디카페인 커피 일등공신은 이산화탄소](https://img.hankyung.com/photo/202302/AA.32567306.1.jpg)
이산화탄소가 카페인 추출 용매로 환영받는 이유는 이뿐이 아니다. 다른 추출 용매와 달리 독성이 없고, 추출되는 카페인과 쉽게 반응하지도 않으며, 불에 타지 않고, 가격이 저렴하다. 게다가 이산화탄소는 회수해 재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이런 특성을 갖는 초임계 이산화탄소는 카페인 추출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유용하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을 복원하는 연구에도 사용됐는데, 한지 표면에 발린 밀랍끼리 달라붙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록을 밀폐된 곳에 넣고 이산화탄소를 주입한 뒤 온도와 압력을 조절해 초임계 유체로 만들어 밀랍을 녹여 제거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산화탄소가 특정 온도와 압력 이상에서 디카페인 커피 제조나 <조선왕조실록> 보존에 사용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물질은 죄가 없다. 다만, 인간에 의해 과도하게 공기 중으로 방출된 것이 문제일 뿐,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늦지 않게 개발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죄 없는 이산화탄소가 더는 미움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 기억해주세요
![[과학과 놀자] 디카페인 커피 일등공신은 이산화탄소](https://img.hankyung.com/photo/202302/AA.32566534.1.jpg)
전화영 한성과학고 수석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