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디지털 경제와 혁신

사회문제 해결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노력이 혁신의 진정한 모습.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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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파이가 증가하지 않았다. 2차 산업혁명과 오늘날 진행 중인 디지털 혁명의 차이다. 물론 많은 측면에서 혁신으로 새로운 시장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약 20년 동안 나타났던 새로운 혁신이 실제로는 낮은 경제성장률을 반전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효과가 그다지 획기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혁신이라는 환상사실 혁신이 경제성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증거는 없다. 인터넷 혁명이 시작된 지 약 30년이 지났지만, 경제의 저성장을 막지 못했다. 인터넷이 보급된 1990년대에도, 스마트폰이 전 지구에 확산된 2000년대에도, 인공지능이 보급되기 시작한 2010년대에도 마찬가지다. 인터넷과 인공지능 기술이 21세기의 경제성장을 견인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인터넷 보급 이후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를 보였고, 반전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는 그들의 책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에서 선진국에 관한 한, 인터넷의 출현으로 새로운 성장이 시작되었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기술혁명과 경제성장의 관계를 증명하는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2016년 세계은행이 발간한 <세계 개발 보고>에서도 인터넷이 경제에 미친 영향력에 관해서는 아직 결론 낼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혁신의 문제혁신이 경제성장률 상승에 기여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새로운 시장 창출과 무관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새로운 소비자를 창출하거나 새로운 영역을 개발하기보다 기존 시장에서 돈을 이전시키는 데 지나지 않은 것이다. <비즈니스의 미래> 저자이자 컨설턴트인 야마구치 슈는 이를 ‘상업적 혁신’이라고 표현한다. 기존 상품을 본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나 포장 등을 바꿔 고객이 느끼는 가치를 높이는 전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최근 20여 년 동안 사회에서 이뤄진 혁신은 대부분 돈 버는 시장에 도입돼 극히 일부 사람만 더 벌어들이는 시장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을 뿐,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오히려 격차가 확대되는 사회문제의 원흉이 됐다고 주장한다.

물론 구글이나 애플, 메타(옛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이 디지털 혁명을 이끈 주역은 존재한다. 이들은 분명 전에 없던 기술과 비즈니스 혁신으로 시장을 창출했지만, 사회 전체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국소적인 성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2000년대 이후에도 장기적인 경제성장률 저하가 개선되지 않았다. 한편, 기술혁신은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기보다 노동 수요를 줄여 소득 격차를 벌리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만약 혁신이 새로운 시장 창출로 총수요 증가에 기여했다면, 이를 충족하기 위한 추가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노동 수요가 증가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혁신이 총수요 확대가 아니라 노동생산성 상승에 기여한다면 오히려 노동력은 감소하게 된다. 지하철역에 있는 자동발매기나 고속도로 통행료를 자동으로 징수하는 하이패스가 대표적이다. 역에 자동발매기가 설치됐다고 해서 사람들의 출퇴근 횟수가 두 배가 되는 게 아니고, 고속도로 요금이 자동으로 징수된다고 해서 통행 횟수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혁신의 결과물이 사회 곳곳에 활용돼도 경제성장과 무관한 이유다. 혁신의 역할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혁신은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를 해결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혁신에 대한 요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과거 1차 및 2차 산업혁명 시기와는 많은 것이 다르다. 불안과 불편이 존재했던 당시에는 실업자마저 새로운 산업 발전을 위한 노동력이 될 수 있었지만 오늘날의 구조적 실업은 다르다. 제조 현장의 근로자, 데이터와 센서를 다루는 스마트팩토리 근로자 사이에는 쉽게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오늘날 세상에서 혁신이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면 오히려 성장할 수 없을지 모른다. 다시 본질로 돌아와야 한다, 혁신은 성장이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모든 것이 풍족한 오늘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는 미래주의나 성장을 위해 인간성을 희생해도 좋다는 성장주의는 더 이상 공감받을 수 없다. 사회문제 해결과 시장 창출을 동시에 달성하는 방안을 찾는 일,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진정한 혁신이라 정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