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각인현상
요제프 비트만(1842~1911)이 쓴 에서 솔로몬 왕은 마법 반지를 사용해 짐승, 새, 물고기, 벌레와 이야기한다. 그런데 나이팅게일 새가 솔로몬 왕에게 그의 아내 999명 가운데 한 명이 젊은 사내와 바람이 났다고 밀고했고, 이에 분노한 솔로몬 왕은 마법 반지를 집어던졌다. 그 후로 솔로몬 왕은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

1973년 니콜라스 틴베르헌과 카를 폰 프리슈, 콘라트 로렌츠는 동물 행동 연구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아마 이들은 마법 반지 없이도 몇몇 동물의 아름답고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특히 로렌츠는 dufj 과학 저술을 통해 자신이 관찰하고 경험한 동물의 아름답고 진실된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있다.

성공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로렌츠(1903~1989)는 오스트리아 알텐베르크의 대저택에서 온갖 동물을 키우며 유복한 시절을 보냈다. 알텐베르크에 있는 그의 집은 작은 노아의 방주 같아서 새뿐만 아니라 수족관 속의 갖가지 물고기부터 원숭이 같은 동물까지 있었다.

로렌츠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동물 행동에서 본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학계에서는 이런 로렌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파블로프나 스키너 같은 당대 동물 관련 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쥐와 비둘기 등을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동물에게는 타고난 행동(본능)이나 주관적 체험이 있을 수 없으며, 동물의 모든 행동은 학습된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렌츠는 자연에서 동물을 관찰함으로써 비교행동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했다. 특히 로렌츠의 각인(imprinting) 현상은 학습이론이나 정치학 등에서도 차용됐다.

각인은 학습의 일종으로 동물의 생활사 중 특정 기간, 즉 임계 기간(critical period)에 이루어지는 학습을 말한다. 로렌츠는 1937년 인공 부화시킨 기러기가 태어나 처음 접한 로렌츠를 엄마로 여기고 졸졸 따라다니는 행동을 관찰했다. 오리 거위 까마귀 등도 비슷한 행동을 보였는데, 그는 조류들이 태어난 뒤 일정 시간 내 접한 대상을 엄마로 인식하는 현상을 ‘각인’이라고 명명했다.

각인에 소요되는 임계 기간은 생물 종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거위는 부화 후 2일, 닭은 4~5일, 오리 종류는 6~7일이 지나면 더 이상 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보통 새는 생후 50일까지 각인 효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로렌츠의 선구적인 연구 이후 많은 종류의 각인이 발견되었다. 예를 들어 부화한 연어는 그들이 부화한 곳을 흐르는 담수의 독특한 냄새를 각인하는 것 같다. 그로 인해 바다에서 수년을 보낸 뒤에도 알을 낳을 때는 자신의 부화한 강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추측된다.

각인은 많은 어른 동물에게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많은 포유동물의 암컷은 해산 직후 새끼의 냄새를 각인하며, 그 후 암컷은 같은 종의 다른 새끼는 거부하는 현상을 보인다.

동물 행동에서 본능과 학습을 분리해 접근하고 분석하는 비교행동학의 창시자로 인정받는 로렌츠의 학문적 업적은 그가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한 뜨겁고 순수한 느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얻은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는 자기 집에서 무제한의 자유를 주며 동물을 길렀다. 물론 수많은 불편과 피해라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이를 보상하는 것은 학문적 성과만이 아니었다.

1983년 10월 오스트리아 과학아카데미는 로렌츠의 80세 탄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사람과 애완동물의 관계(the human-pet relationship)’라는 주제로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사람의 장난감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 ‘애완동물’이라는 용어 대신 인간에게 주는 여러 혜택을 존중해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의미가 담긴 ‘반려동물’로 부르도록 제안한 것이다.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는 로렌츠가 말하는 보상이 무엇인지 새삼 생각하게 한다.

√ 기억해주세요
[과학과 놀자] 거위는 태어나서 처음 접한 대상을 엄마로 인식
각인은 학습의 일종으로 동물의 생활사 중 특정 기간, 즉 임계 기간(critical period)에 이루어지는 학습을 말한다. 로렌츠는 1937년 인공 부화시킨 기러기가 태어나 처음 접한 로렌츠를 엄마로 여기고 졸졸 따라다니는 행동을 관찰했다. 오리 거위 까마귀 등도 비슷한 행동을 보였는데, 그는 조류들이 태어난 뒤 일정 시간 내 접한 대상을 엄마로 인식하는 현상을 ‘각인’이라고 명명했다.

임혁 경기고 교사